반(半) 픽션 <슈퍼맨은 없다_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는 진짜 이유>
1. 이름 : J
- 직업 : 가사노동자
- 자녀(연령) : 남아 1(11세), 여아 1(9세)
- 기타 : 지혜의 사촌언니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했던 아들 주형의 초등학교 입학식을 마친 날. 생각보다 밝은 주형의 얼굴에 한시름 놓는 지혜였다. 학교라는 곳을 이 작은 아이가 벌써 들어가도 되는 것일까, 잘 해낼 수 있을까, 친구는, 식사는, 등하교는. 별의별 사사로운 걱정까지 끌어모으는 것도 모자라 어딘가서 사서 하던 지혜였다. 하지만 정작 주형은 온전히 준비되어 있었던 듯하다. 준비가 안 된 것은, 지혜뿐이었다.
교실이 얼마나 큰지, 친구들은 몇 명인지, 선생님은 어떻게 생겼는지, 약간은 들뜬상태로 흥분해 묘사하는 주형을 흐뭇하게 보던 지혜의 얼굴은 주형의 마지막 한마디에 싸늘하게 굳었다.
"엄마, 근데 우리 반에 되게 말썽쟁이가 한 명 있는 거 같아요."
지혜는 말썽쟁이라는 표현에 얇게 덮어두었던 걱정이 다시금 불쑥 치솟아 올랐지만 주형의 앞에서는 티 내지 않고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요청했다. 말썽쟁이란 게 어떤 친구란 거야?라고 최대한 자신의 검은 의도를 숨기며.
"우리가 다 앉아있는데, 교실문을 열고 막 나가고, 소리도 쳤어요. 그리고 그 친구 옆에는 다른 선생님이 같이 앉아 있었어요."
교실 문을 들락거리며 소리친 이야기까지 듣던 지혜는 보통 말썽쟁이가 아니네, 싶어 주형의 학교 생활에 지장이 있진 않을까 다소 이기적인 마음을 가졌다가 '다른 선생님이 같이 앉아 있었다'는 대목에 이르자 아차, 싶었다. 발달장애아구나, 싶어 최대한 주형이 잘 알아듣도록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바라야겠다 생각하며 말했다.
"아, 그렇구나. 주형아 근데, 엄마가 봤을 땐 말이야. 그 친구는 조금 다른 친구인 거 같아. 그러니까 어떻게 다르냐면......."
어찌 설명할지 조금은 고민하며 주절대던 지혜의 말을 끊고 주형은 간식을 먹으며 무심하게 말했다.
"알아요, 선생님이 다 설명해 주셨어요. 저희보다 조금 느린 친구라고. 저도 알아요."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하는 주형 앞에 지혜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 주형이 3반이죠? 그 반에 발달장애 친구 있다던데? 맞아요?
- 아, 네. 맞아요. 주형이가 안 그래도 저번에 입학실날 얘기해 주더라고요. 어떻게 아셨어요?
- 아니 내가 첫째애 때문에 학부모회 임원하고 있어서, 주워 들었어요. 주형이랑 주형이 엄마는 괜찮아요?
- 뭐, 저희가 괜찮고 안 괜찮고 할 게 있나요.
- 그래도, 학업분위기가 좀 그럴 수도 있잖아. 요즘 그런 친구들 때문에 말도 많고.
도대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를 주형의 유치원 친구 엄마의 문자에 지혜는 점점 심술이 차올랐다. 어쩌란 거지, 발달장애 친구가 같은 반에 있다고 싫다는 반응을 기대하는 건가. 아니면, 자기 아이 반은 '그런 친구'가 없어서 다행이란 말을 듣고 싶은 걸까. 이 쪽도 저 쪽도 심술이 나긴 마찬가지였다.
사실 지혜는 발달장애에 완전히 무지하진 않았다. 주형에게 발달장애아를 '아픈 친구'가 아닌 '다른 친구'라고 자연스레 명명했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지혜는 연령대가 비슷해 어릴 적부터 친가족처럼 지냈던 사촌들이 있었다. 그 시절의 육아가 대부분 그러했듯 방학이 되면 사촌들을 긁어모아 계절마다 계곡이나 바닷가, 눈썰매장으로 몰려 가며 놀았고 딱히 갈 곳이 없다면 시골 할머니집에 모여 일주일 정도의 기나긴 공동육아의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각자의 성장으로 점차 교류가 없어졌지만, 그래도 가장 친했던 이모네의 사촌들과는 최근까지도 명절 연휴의 끝자락에 잠시간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었던 것이다. 그중 지혜가 가장 따르던 제일 큰 언니, J의 첫째 아이인 준우가 발달장애아였다.
친조카는 아니었지만, 친언니처럼 따랐던 J의 첫 아이였기에 조카 준우를 정말 예뻐했던 지혜였다. 언니와 형부를 반반 섞어 닮은 듯한 얼굴과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작은 손과 발은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혜는 적은 월급을 털어 옷가지들과 신발을 조카에게 갖다 바치며 한껏 사랑을 표현했다. 누가 사촌조카에게 그렇게까지 돈을 쓰냐, 주변에서 의아해했지만 지혜는 좀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조카는 무럭무럭 잘 자라는 듯했다. 잘 기고, 잘 걷고, 잘 웃었다. 지혜가 자신의 결혼으로 J집으로의 왕래가 뜸해지기 전까지, 준우는 아주 잘 자라는 듯했다.
J의 둘째가 태어나며 실로 오랜만에 그들의 집을 방문했을 때였다. 모두들 갓 태어난 새로운 생명에 눈을 돌릴 때, 지혜는 자신의 첫사랑 준우를 찾았다. 준우는 여전히 건강해 보였다. 잘 걷고, 잘 뛰었다.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다 준우 이제 말해?라는 아무렇지 않은 질문을 던졌을 때 맞닥뜨렸던 언니와 형부의 반응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지혜였다. 보통의 연령기에서, 보통의 아이들이 겪어나가는 것들 중 하나를 대수롭지 않게 물었던 것이었지만, 지혜는 당시 아주 잘못된 질문을 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J는 말없이 애써 웃고 있었고, 형부는 약간의 화를 내며 대답했다.
"처제가 아직 애를 안 낳아서 잘 모르나 본데, 아직 준우 나이에 말 못 하는 애들도 많아. 나도 어릴 때 거의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에 말했었다고 엄마가 그러더라고."
지혜는 약간 머쓱해져 아, 그렇구나.라고 대답하고선 혼자서 신나게 주방을 돌아다니는 준우를 향했다. 준우는 지혜를 본 둥 만 둥 주방을 누볐다. 귀여운 얼굴 얼마나 달라졌나 조금이라도 보려는 지혜를 계속해 못 본 체했다. 애들이 이렇게 자기 일에 집중을 하는구나, 싶어 마냥 귀엽다가도 도통 자신을 쳐다보지 않는 준우가 괜찮은 건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지혜도 그것이 발달장애의 신호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내가 그때 말해줬더라면, 그때 언니에게 준우가 조금 다른 것 같다고 귀띔이라도 해줬더라면. 준우는 지금보다는 더 좋은 상태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자책하던 지혜였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뭐라고 그들에게 아이를 좀 더 자세히 보면 어떻겠느냐 말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했다. 아이는 전적으로 부모의 가르침에서 자라나기에 제삼자가 함부로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준우는 가족 모두의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5살이 되어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언니와 형부는 준우를 병원으로 데려가 발달장애판정을 받았고, 언니는 일을 그만두고서 준우의 치료를 위해 전국의 유명하다는 센터를 찾아다니며 온전히 그의 시간을 아들에게만 쏟았다.
졸지에 기러기가족이 된 형부는 둘째 딸을 혼자 오롯이 돌보며, 점차로 상해 가는 얼굴로 명절마다 모습을 비추더니 2년 전부터는 아예 발길을 끊어버렸다. 그러다 준우가 조금 커서야 언니만이 준우와 함께 조심스레 등장했는데 집의 구석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준우를 보호하며 다른 가족들과는 많은 말을 섞지 않았다. 이모 역시 딸과 손자의 아픔을 애써 잊으려는 듯 그들에게는 큰 시선을 주지 않았고, 마치 없는 이들 대하듯 다른 가족들만을 향해 대화를 나누었다.
지혜 역시 오랜만에 마주한 언니와 준우를 어찌 대할지 몰랐다. 괜찮냐고 묻는 것이 알량한 동정심으로 느낄까 걱정되었고, 모른 체하는 것은 더 이상할 노릇이었다. 그저 피곤하진 않냐, 운동은 하냐, 별로 궁금하지 않은 질문들만 빙 둘러 묻곤 할 뿐이었다.
엄마는 태연한 듯 보이는 이모가 아주 가끔, 꾹꾹 눌러 참았던 속내를 한 번에 터뜨릴 때가 있다고 했다. 준우의 처지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그 누구의 잘못으로 돌리고만 싶어 하는 듯 울분을 터뜨린다고 했다. 사위가 조금만 더 빨리 손자를 병원에 데려갔더라면 괜찮았을 일이라고 그를 탓하면서도, 할머니로서 자기가 좀 더 신경 쓰지 못해서 그리 된 건 아닌지 자책하기도 한다 했다. 말미엔 딸인 J가 너무 빨리 육아휴직을 끝내고 돌아간 탓일지도 모른다고 어디에서든 이유를 찾고 싶어 하는 절절함을 눈뜨고는 못 볼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그 모든 게 다 무슨 소용일까. 준우의 아픔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님을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안다. 하지만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 보다야 내 잘못일지언정 이유가 있다면 좀 더 마음이 나을 것이란 그들의 아픔을 지혜는 어렴풋 짐작만 할 뿐이었다. 아주 이기적 이게도, 내 아들 주형은 건강해서 다행이다,라는 위안마저 얻는 것이었다.
사실 그 못난 마음을 J에게 드러낸 때가 있었다. 지혜는 아직도 두고두고 당시의 일을 후회한다.
주형이 두세 살이었을 무렵, J가 준우의 증상을 파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창 그의 차도에 예민했을 때였다. 유독 수줍음 많은 주형이 지혜의 등 뒤에 숨어있는데, J가 지혜에게 다가와 주형이 사람의 눈을 잘 맞추는지 유심히 보라 일렀고, 지혜는 그의 조언이 돌연 너무나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안 그래도 내성적인 주형의 성격이 답답하던 차에 마치 내 자식이 그의 자식처럼 발달장애일 수 있다고 여기는 듯 해 열이 올랐던 것이다. 그 바람에 지혜는 상대의 아픔은 생각지 않고 날 선 말을 뱉어버렸다.
"주형이는 눈 잘 맞춰. 어린이집에서도 주형이가 똘똘한 편이라고 면담 때 들었는걸. 말도 잘해."
J와 지혜는 그렇게 멀어졌다. 해마다 준우의 생일 선물을 챙겨주던 지혜도, 주형에게 준우의 옷가지와 장난감을 살뜰히 물려주던 J도, 이제 더 이상 없었다. 그들은 엄연한 타인이었고, 타인의 고통은 제아무리 노력해 보았자 자신의 보잘것없는 고통보다도 작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주형의 '느린 친구' 발언에 잠시간 잊고 지냈던 첫 조카 준우를 가슴 아프게 떠올려보며 밀려오는 죄책감을 어찌할 줄 모르는 지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