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약속한 날이 되었고 F가 집에서 나갔다.
이제 서류, 동거 모든 게 완벽하게 정리되었고 나하고는 결혼 전과 동일하게 다시 '남'이 되었다.
속이 시원했다.
몇 차례의 이해에도 불구하고 연속으로 신뢰를 깨버린 상황에 나는 손톱만큼의 미련도 F에 대한 걱정,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이들이라는 연결고리가 있긴 하지만, 다시는 보고 싶지도 않았고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부모님과 아이들에게는 F가 미국 장기 출장을 간 것으로 얘기를 한 덕분에 자연스럽게 이별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아이들이 충격에 받지 않고 이별하도록 노력한 보람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당장, 다섯 식구만의 행복 플랜을 실행하기 위해 집에 있는 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집안 곳곳에 있던 F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들을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나씩 하나씩 버렸다.
결혼사진은 벌써 다 버렸었지만, 아이들하고 같이 찍은 사진은 아직 남아 있었던 상태였다.
그리고 F의 옷가지가 빠진 자리 덕분에 짐을 많이 줄일 수 있었고 방 하나에 킹사이즈 두 개를 합친 대형 침대를 사서 넣었다.
이 날부터 나는 아이들과 셋이 자고 있고
잠들기 전 서로의 이야기를 하면서 공감도 하고 응원, 조언도 하며 서로가 하루의 끝을 보듬어 주고 있다.
학교에서 있었던 단순한 일들부터 각자의 비밀 이야기까지, 어두운 방 안에서 같은 침대에 누워서 그런지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가 술술 나왔고 서로의 마음을 터놓는 일이 지속되었다.
이 시간은 서로가 교감할 수 있는 따뜻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이혼,
헤어짐에 대해 아이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가장 컸는데, 부모님의 보살핌, 나의 노력? 덕분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고 여전히 행복해하는 모습에 나는 우리 다섯 식구가 다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내 삶이 모든 게 다시 완벽해지는 느낌이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속에 있는 고민은 언젠간 이혼 사실을 알려야 될 텐데, 그 시기는 언제 해야 될지,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얘기를 해줘야 될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 답을 못 찾고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같은 어른이니깐, 언제나 그렇듯 나의 판단을 존중해 주고 이해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차라리, 아이들이 한 살이라도 더 어렸을 불륜을 처음 안 시점에 얘기를 했었어야 됐었나?라는 생각과
이제 곧 사춘기가 올 텐데 혹시나 말하기 전에 알게 돼서 충격을 더 받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이 가끔 머릿속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사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알릴 자신이 없었다. 아이들이 받을 충격에 대한 걱정이 너무 컸기에 시간이 지나서 컸을 때 알게 해 주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이제는 혹시나 아이들이 왜 속이고 숨겼냐며 원망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간혹, 아이들이 엄마 F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 엄마는 우리 가정을 버린 사람이니깐 우리도 엄마에 대한 얘기를 하지 말자라고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아이들이 엄마를 미워하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있나 보다.
어차피 정답이 없는 이 고민은 하면 할수록 더 길을 잃어가고
'지금은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게만 하자.'라는 결론을 내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