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가 집에서 나가기 전, 그동안 아이들을 케어해 주시던 F의 모친을 보내드리고 부모님을 집으로 모셨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실 뿐 아니라, 어렸을 때 나를 행복하게 키워주신 부모님께서 아이들을 잘 돌 봐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아이들도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변화에 잘 적응할 것이라고 믿었다.
부모님 또한, 은퇴 후 지방으로 귀농을 하신 지 3년차로 도시에 대한 그리움, 외로움 등을 느끼시던 시기여서 흔쾌히 집으로 들어오셨다.
그렇게 이삿날이 되고 F의 짐을 빼기도 전에 부모님 이삿짐이 집으로 오게 되었고, 내 눈치를 보며 한 동안 쥐 죽은 듯이 지내던 F가 짜증 섞인 표정과 말투로 부모님을 대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런 것까지 가지고 오시면 어떻게 해요."
"이 냄새나는 건 당장 버리세요."
부모님은 별다른 말씀을 못하시고 아직도 며느리로 알고 있는 F 눈치만 살피고 계셨다.
나는 부모님께 그런 말들과 표정을 짓는 F에게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미국이고 뭐고 당장 불륜 사실을 얘기하고 싶었지만, 아이들 생각에 화를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냥 조용히 F를 불러서 표정 그런 식으로 하면 나도 가만히 안 있겠다고 얘기만 할 뿐이었다.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F의 밑낯, 바닥까지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F의 모친께서 타지에서 아이들을 봐주시기 위해 집에 오신 순간부터 불편함 없도록 전폭적인 지지를 했을 뿐 아니라, 주말이나 여유시간이 생기는 대로 문화생활을 즐기실 수 있도록 했다.
그런 점이 좋으셨는지, 항상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셨고, 어딜 가서 든 사위 자랑을 빼놓지 않고 하셨을 정도였다. F가 불륜을 하고 이혼을 하고 난 후에도 나는 어른에 대한 예의와 그동안 아이들을 케어해 주신 감사함에 최대한 예의를 지켰었는데 F가 우리 부모님을 대하는 모습을 보니, 인간으로서 어른에 대한 공경이 없는 것인지 나에 대한 불만을 부모님께 표현하는 것인지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사실 그 순간 F를 향해 화를 내면서 불륜사실을 밝히고 당장 내쫓고 싶었으나, 아이들이 이혼사실을 알고 받게 될 충격에 F에게 화도 제대로 못 냈던 나 자신에게 더욱 화가 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부모님 이사를 끝내고 6명의 동거가 시작됐다.
어머니의 요리 솜씨는 여전히 훌륭하여 아이들이 매일매일 맛있다며 좋아했고,
독서가 취미이신 아버지를 따라서 아이들이 함께 책을 읽는 모습은 사랑스럽고 보기 좋았다.
이렇게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게 되어서 한동안 들뜬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좋은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다만, 부모님은 이사 오는 날 F의 눈치를 시작으로 매 순간순간 눈치를 보고 계신 게 느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장 F를 내보내지 않았던 것이 후회되기도 한다.)
F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부모님은 안방에 들어가셔서 생활을 하셨다.
F는 자기감정대로 기분이 안 좋거나 우울할 땐 울면서 엄마(시어머니)에게 사는 게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있었고 나에게 한 번씩 지금 이렇게 계속 살면 안 되냐고 어이없는 제안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나의 결정을 단 한 순간도 바꾸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F가 없는 다섯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에 대해서만 고민할 뿐, 내 인생에 F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방 하나에 큰 침대를 사서 아이들 사춘기? 가 올 때까지 셋이 같이 자야겠다.'
'부모님 모시고 그동안 못 다닌 여행도 다녀야겠다.'
'아버지 취미가 독서니깐, 아이들과 함께 책 보는 시간을 늘려야겠다.'
그렇게 나는 내가 챙겨야 할 부모님, 아이들까지 다섯 식구만의 행복한 생활을 상상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