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하며 성장하는 디자이너
사실 난 간식을 그리 즐겨 먹지 않는다.
오전엔 커피하나로 충분하다. 가끔 카페에 가면, 커피와 크로와상으로 하나의 메뉴가 늘어나긴 하지만, 일단은 커피다. 그리곤, 오후 2-3시쯤 점심 겸 저녁을 먹는다. 하루 한끼를 먹는셈이다. 잠들기 전 3-4시간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그럼에도 저녁에 가끔씩 출출해지면 먹는 것이 있다면 이것이다.
다른 호주과자들보다 짜지 않고, 좀 더 건강한듯한 느낌이 드는 곡물과자 Grain Waves다.
제품 광고를 보면,
"Great for keeping me fuelled up"
"Good afternoon snack"
"Perfect for when you are on the go"
인정!
나는 이 과자를 오후간식으로 잠깐의 에너지를 채우고, 허기를 달래는데 이용한다.
누군가는 '과자대신 밥을 먹어!'라고 하겠지만,
이건,
사실...
미니버전 25g의 스낵이다. 손바닥전체보다 작은 사이즈의 패키지다. 여기에는 딸랑 5-6개의 정도의 스낵만 들어있을 뿐이다. 딱 배고플 때 꼬르륵 소리만 없애주는 정도이다. 소식(小食)을 하는 나에겐 딱 적당하게 먹을 수 있는 양이기도 하다.
원래는 7배의 양(170g)이 들어있는 과자인데, 아이들의 런치박스에 넣기 위해, 따로 만들어진 패키지 박스에 들어있는 미니 스낵 한 봉지이다. 이러한 미니 버전은 이 과자뿐만 아니라, 런치박스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제품, 요거트 같은 제품까지 포함해서, 다양한 제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미니버전의 간식을 보면서, 나는, 디자이너로서 패키지 디자인에 눈이 먼저 가는 게 사실이다. 키즈들을 타깃으로 만들어진 디자인이기 때문에 아기자기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나에게 더 흥미롭기도 하다.
하지만, 스낵그림을 그리면서 깨달은 건, 이런저런 디자인을 살펴보는 것보다 나의 관심에 먼저 들어온 건, 작고 크고 사이즈에 따라, 패키지 용도에 따라 달라지는 디자인의 변화였다. 분명 똑같은 제품이고, 똑같은 디자인인데, 버려진 내용이 어떤 것이 무언가를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는 반대로 어떠한 부분이 중요해지는 지에 대한 관점이기도 하다.
먼저, 틀린 그림 찾기 게임을 하면 된다. 기본에서 작은 사이즈로 갈 때는 정사각형으로 모양으로 바뀌면서 맨 아래쪽의 정보가 사라졌다. 기본에서 박스 디자인으로 옮겨질 때는 다섯 개의 Pack이 들어있다는 내용이 강조되면서 호주의 지도가 사라졌다. 또한 비닐의 패키지에서 종이박스로 패키징으로 바뀌면서, 색상이 바뀌었다. 사실 재료가 바뀌었으니, 인쇄의 방법도 달라졌을 것이다. 로고의 색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 잠깐 딴 길로 샌다면, 과연 어떠한 로고의 색상이 진짜일까라는 의심을 품어 본다. 분명 기본 패키지의 것이 오리지널이겠지만, 박스패키지만을 본사람에게는 좀 더 진하고 오렌지 빛을 가진 로고의 색상이 오리지널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관점은, 나는 무엇을 관찰했고, 나의 기준으로 무엇을 가져오고, 무엇을 생략했냐 하는 관점이다. 물론 나의 일러스트 또한 용도에 따라 그 정보들이 달라질 것이다. 오늘의 용도는 디자인을 카피를 하면서 자세하게 관찰해 보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스쳐가는 시선으로 디자인을 볼 때와, 그림을 그리면서 꼼꼼하게 살펴보는 건 나에게 습득되는 정도가 다르다. 이렇게 디테일하게 관찰하며 따라 그리다 보면, 이제는 사진을 보지 않고도, 이 스낵을 언제 어디서는 휘리릭 그릴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내가 사물을 관찰하고, 습득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물론, 그림을 그리면서, 위와 같은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는 이점도 생겨난다. 언젠가 어떤 분이 이러셨다. "근아 작가님 머릿속에 한번 들어가 보고 싶어요." 나의 머릿속은 이러하다. 디자이너의 머릿속에서 이러한 생각들을 하며, 끊임없는 관찰을 하고, 이어지는 생각을 깊이 생각해 보고, 그림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머릿속의 과정들은 모두 이미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에 정확한 단어의 사용은 없다. 그저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것이고, 이미지로 느끼는 것이다. 디테일하게 동시에 큰 그림으로 모두를 살피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깨달음은, 나의 글도 이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용도에 따라 나의 생각이 담기는 내용이 달라지고, 강조할 것들이 달라지고, 글의 방식과 문체도 다르게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모두 똑같은 나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내가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던, 글을 쓰던, 디자인을 하던, 모두 '나'라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세상을 배우고,
나를 키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