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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Jan 03. 2024

호주 여행,  웨딩케이크가 돌이라고?

메이페이퍼 ㅣ 나는 호주에서 5살이다 ㅣ 07

호기심에서 시작된 여행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이상했던 여행이었다.


이끌림에 의해 다녀온 여행이었다.


지도상으로는 50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2시간을 넘게 운전해서 가야 했고,

검색상으로는 30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4시간을 넘게 걸어서 다녀와야 했다.

네비상으로는 3.3km이라 나온 거리를 40분 넘게 운전해서 나와야 했다.


이상한 나라에 다녀온 엘리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토토로를 찾았던 메이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새해의 첫날, 우리 가족은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마냥 외출을 기다렸다. 어디든 오케이였다.


Wedding Cake Rock! 거기 갈까?  

그래! 


만장일치 일사천리로 목적지는 정해졌다. 그곳은 가족 단톡방에 신랑이 올려놨던 여행지였다.


뭐? 케이크가 rock이라고?

아들이 물어온다.

나도 갑자기 그곳이 궁금했다.


구글맵으로 검색을 하니, 경로시간이 안 나온다. 에런가?

애플맵으로 다시 검색해 보니 2시간이라 한다.

참 이상한 계산이다.


그곳보다 더 멀리 있는 곳, 울릉공까지가 1시간 반인데,

웨딩케이크 바위까지가 2시간이라니.

우리 집과 울릉공 중간에 있으면,

50분이면 충분히 가는 거리 아닌가?

신랑도 나도 의심했다.

새해라 차가 막히나??


그때 의심을 더 했어야 했다.

아니, 그때 의심하지 않고 출발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출발한 지 한 시간쯤 지나고,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를 조금 달리다 보니 “Royal National Park”의 팻말이 보였다. 우리가 저기를 가는 건가? 정보도 없이, 이름하나에 이끌려 우리는 가고 있었다. ‘맞는 거 같아' 확인도 필요 없었다. 그냥 믿고 가고 있었다.


그리고 굽이굽이 고갯길이 시작되었다. 주변에 뜨문뜨문 보이던 집도 사라지고, 나무들만 무성한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한 곳을 지나는데만 한 시간이 소요됐다. ‘이러니 2시간이 걸리지’ 그제야 이해가 됐다.




로열국립공원에 도착해서 차를 세우고, 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스팔트의 길이 사라지니, 자연이 나타났다. 대자연이었다. 하지만, 푸르픈 울창한 산이 아니라, 내가 새벽에 읽었던, 책 내용에 있던 ‘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 검은 자연이 먼저였다.


Copyright 2023. 정근아 all rights reserved.


이 여행을 하기 전 새벽에, 나는 <소로의 일기>를 읽었었다. 이 여행은 소로가 날 이곳으로 이끈 건가 착각할 정도로, 그가 쓴 일기의 내용이 그대로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 대체로 자연스럽게 일어난 불은 숲에 이롭다. 불이 숲바닥을 쓸고 지나가면서 공기를 정화시켜 숲이 맑고 깨끗해진다. 이런 불은 자연의 싸리비로, 발육이 나쁜 잡목들을 없애 더 크고 튼튼한 나무들로 큰 숲을 이루게 해 준다. 작년에 불이 지나간 숲을 걷는다. 훨씬 걷기가 편안하고 즐겁다. 발에 거치적거리던 잔가지들과 죽어 썩은 나무들이 사라져 숲 바닥이 평탄하고 깨끗하다. 이렇게 해서 2-3년 안에 마을과 새와 인간에게 이로운 새로운 허클베리 숲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까맣게 탄 땅을 거닐다 힘차게 밀고 올라오는 풀과 나무의 파릇파릇한 새싹을 보면 절로 힘과 용기가 솟아난다.”


소로의 일기


소로는 도랑을 파서 불의 번짐을 막았다고 했는데, 우리가 걷고 있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검게 그을렸고, 왼쪽은 푸르렀다.



그의 말이 이해가 된다.

그가 살던 곳이 이해가 된다.

그가 살던 그 시대가 이해가 된다.


Copyright 2023. 정근아 all rights reserved.





우리의 목적지,

'웨딩케이크 바위'까지는 3.4km.


걸음을 재촉했다.

갈 길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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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 놓은 길을 제외하곤, 전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숲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인간의 보살핌이 없는데도, 솜씨 좋은 정원사가 미지의 세계를 꾸며놓은 듯, 식물들은 다채로웠고, 숲은 정갈했다. 같은 식물이 계속해서 반복되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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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순간을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느라 나는 가족에게 자꾸 뒤처져 걸었다, 어느새, 아들이 저 멀리서 나를 찾기 시작한다. “엄마! 엄마!"


‘미안 아들, 엄마는 갈 수가 없단다’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전혀 나를 그에게 데리고 가지 못했다.


나는 몇 발자국 걷다 또 멈추고, 또 멈추고. 10미터를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갈길이 멀어도 갈 수가 없었다. 한걸음 한걸음이 소중했다. 느린 여행이 되어버렸다. 결국 아들이 나를 찾아와 잔소리를 늘어놓고는, 내 뒤에 서서 나를 감시한다. 잠깐 멈춰 서면 “안돼" 아들은 나의 등을 밀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첫 번째 관람포인트에 겨우 다다랐다.  


그곳은 “발코니"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었다.


아~~ 이런 곳인 줄 알았으면 뛰어왔을 것이다.


Copyright 2023. 정근아 all rights reserved.


여기가 발코니.

이름이 참 이쁘다.


사진에 자연의 거대함이 담기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에 한참을 머물렀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저~~ 쪽 멀리 어딘가 인데, 우리 가족은 발코니에서 이미 넉을 잃고, 누구 하나 빨리 가자고 재촉하지 않았다. 각자의 방법으로 자연을 만끽하고 있었다.




나는 거대한 바닥에 자연이 그려놓은 그림에 꽂혀 있었고,

Copyright 2023. 정근아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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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은 돌고래나 고래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꽂혀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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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바위에 앉아 그녀를 휘감는 바람과 바다와 하늘에 꽂혀 있었고,

아들은 우리가 느끼는 이 모든 자연 위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2024년, 새해 첫날의 여행은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주1) 소로의 일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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