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페이퍼 ㅣ 나는 호주에서 5살이다 ㅣ 09
요즘 아들은 거의 대부분 영어만을 사용하여 말을 한다. 그렇기에 나는 가끔, 아니 자주. ‘아들이 지금 한국말을 유창하게 한다면 어떨까’ 그런 상상을 하곤 한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안타깝고, 슬프다. 호주에 온 것이 후회될 때도 있다.
매주 일요일, 나는 4살의 아들의 말로 지은 동시들을 브런치북에 3편씩 소개하고 있다. 그 글들을 준비하며 동시집을 뒤적일 때마다, “맞아 이런 말도 했는데. 맞아. 이런 말도 할 수 있었는데.” 추억에 잠긴다. 그리고 또 안타까움을 느낀다.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말
엄마!
나 별 같지요?
나는 별이에요.
별은 하늘에 있지요?
나는 하늘에서 자러 내려온 별이에요.
그때가 시작이었다. 잠들기 전 아들은 내 귀에 대고 뜬금없이 저런 말을 속삭였다. 응? 뭐라고? 내가 들었음에도 믿기지 않은 아들의 말. 이런 사랑스러운 말을 진짜 내 아들이 해준 거라고? (저 말들은 100% 아들의 말이다. 전혀 동시로 꾸미지도 않고, 삭제된 것도 첨가된 것도 없다. 난 제목만을 붙인 것뿐이다.)
이 말을 들은 후로, 나는 한국나이 4살 아들의 쫑알쫑알 아기말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날도 깜깜한 방 안에서 불도 켜지 않은 채, 그 말을 잃을까 봐 부랴부랴 핸드폰 노트에 적어놨었다. 그렇게 1년 동안 기록한 글을 동시로 바꾼 후, 동시집으로 발간한 것이었다.
한국말을 이렇게 빨리 잊을지는 몰랐다. 분명 한 달 전에도 알고 있었고, 자주 사용하던 ‘숫자 읽기’도 이젠 한참을 생각해야 할 정도다. Nine? 여섯? 아홉? 분명 한 달 전에 알아듣던 말인데, 이젠 고개를 꺄웃거리며 이해를 못 하는 단어가 수두룩하다.
영어의 사용이 많은 날은 더 그러하다.
영어는 100% 흡수, 바로 저장인데.
한국어는 1% 흡수, 바로 기억에서 사라진다.
한국말이 귀옆 머리카락에 붙어있다가, 휙하니 돌아서면 바로 떨어지는 게 보일정도다. “불편한 것은 하지 않으려 한다.” 딱 그 말이 맞다. 그에게 한국말은 그다지 필요치 않다. 그에겐 영어가 편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아들에게 한국어로 말하고, 아들은 영어로 대답한다. 언젠가 다른 모자가 이런 대화를 할 때, 어떻게 그게 가능해? 그랬었다. 하지만 가능하다. 하지만, 깊은 대화는 불가능하다.
지금 아들은 한국나이로 11살이다. 호주에 오기 전에 할 수 있던 말, 4살 말의 10% 정도밖에 하지 못한다. 그러니 지금은 4살보다 더 못한 수준이다. 이제 막 말이 트인 아이처럼, 매일매일 집에서 사용하는 일상의 한국말만 겨우 하는 느낌이다. 요 며칠 더 그러한 느낌이다.
발음도 어눌하고, 어미도 틀리고,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말한다.
누나는 중학교 1학년때 호주로 왔고, 지금까지 꾸준하게 한국 드라마나 한국 예능들을 즐겨보기에 - 영어가 더 편할때가 있다고 하지만 - 딸의 한국말은 아직 건강하다. 하지만, 아들은 한국나이 5살 (만 3살 6개월 때) 호주로 왔다. 한글 쓰는 것은 배우지 못하고 왔기에, 현재 1년째 토요일마다 한글학교에 가서 한글을 배우고 있다.
아들의 한국말을 지키지 못하다니. 하지만, 나는 집에서 한국말만 써왔다. 나의 영어선생님들이 항상 아들과 영어 연습을 하라고 하지만, 내가 아니면 아들은 한국말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내가 영어실력이 늦게 향상된다 해도 그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 노력과는 별개로. 한국어를 잊어버리는 속도는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잠깐 방심한 사이, 아들은 영어를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있고, 우리는 대화가 불가능해지지 시작했다. 그것도 호주발음으로 말을 하면 내가 아는 쉬운 단어도 들리지 않는다. (참고로 there는 “데", here는 “히" 이런 식이다.)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 내 책임 같아서, 엄마로서 아들에게 미안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기분이라 맘이 불편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의 상황상, 어떠한 이유로 이런 결과가 왔는지 이제는 모든 것이 큰 그림으로 보이며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 있을 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맞다. 방심했었다. ‘에이.. 아닐 거야’ 하는 순간. 그때가 생각을 고쳐먹었어야 했던 때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나의 말을 이해하는 못하는 아들에게 영어로 천천히 설명해준다. '에이..설마' 라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 다시 한국어로도 설명해준다. '제발...'이라는 바람을 덧붙인다.
동시집을 또다시 뒤적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동시집이 언젠가는 아들의 한글공부 책이 될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순간! 아들이 옆으로 다가왔다. 기회다!
자기 전에 너가 쓴 동시집 읽어볼래?
네가 했던 말인데, 네가 할 줄 알아야지.
자기 전에 동시 세 개만 세 번씩 읽어봐.
그리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아들의 목소리
엄마!
응?
나. 별.같.지.요?
아들은 시를 읽고 있다.
나는. 별.이에요.
너 지금 엄마랑 똑같은 시를 읽고 있어!?!!
별.은. 하늘.에. 있지요?
엄마 완전 소름~~.
나는. 하늘.에서. 자러. 내려온. 별.이에요.
그럼 넌 별이지. 반짝반짝 빛나는 별.
두 번째 동시를 골라서 읽기 시작한다. (제목은 엄마 글노트에 낙서)
이.건. 구름.이고,
이건 구름이고
이건. 바…...람.이고,
이건 바람이고
이건. 별.이야.
이건 별이야.
내가. ….바다도. 그.려.줄.게요.
내가. 바다도. 그려줄게요.
이제. 사..진. 쭉.어.주.세.요.
이제. 사진. 찍!어. 주세요.
생각보다 한글 문장을 술술? 읽어나가서 놀랬다. 이제 겨우 받침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문장을 읽을 수 있구나!! 무한 칭찬을 퍼부어주고 아들이 4살 때, 이 말을 했을 때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엄마가 글을 쓰고 있었어.
그때 네가 와서 엄마한테 그림을 그려줬거든?
그리고 저런 말도 쫑알쫑알해 주고.
네가 사진 찍으라고 해서
엄마가 그 그림을 사진으로 찍은 거야.
그래서 그 그림이 거기 있는 거지.
아들이 조용하다.
듣고 있어?
그래도 조용하다.
숨이 가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들이 울고 있다.
당황스럽다.
내가 뭘 잘못했나?
아들을 달래주고 이유를 물어보니,
엄마가 고맙단다.
이렇게 다 기록해 줘서.
동시집으로 만들어줘서.
고맙단다.
한국어로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내가 물어보니 그렇단다.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눈에 눈물이 가득이다.
훌쩍훌쩍 콧물을 잠옷에 닦는다.
울컥한다. 귀여웠다.
그는 그의 말을 다시 찾은 느낌이었을까.
나는 맘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그 느낌을 계속 갖고 있길...
엄마의 노력과 사랑을 기억해 주길...
다시 그의 한국말을 찾을 수 있길...
그 말들을 소중하게 간직해 주길 …
사실, 나는,
내가 나이가 들어 영어를 못하게 되었을 때, 아들과 대화를 못할까 봐 두렵다. 그러하기에 나의 바람을 직접 그에게 말하지는 못했지만, 아마 그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엄마를 위해 한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이 글도
한글로 읽을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아들의 4살 말로 지은 동시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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