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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Jun 20. 2024

호주에 와서 알게 된 사실 _ 01


엄마, 한국, 1986



내가 초등 4학년이 되었을 때, 엄마는 오빠와 내가 플룻을 배웠으면 했다. 수소문하여 찾아낸 실력있는 플룻 선생님과의 상담을 위해, 오빠와 나는 대치동에서 여의도까지 1시간의 지루한 이동을 해야했다. 상담 후, 난 더 관심이 없어졌다. 아니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 난 플룻보다 미술을 하고 싶어." 그 한마디에 엄마는 또 정보력을 동원하여, 괜찮은 미술학원을 찾아냈다. 나는 그날로 대치동에서 압구정동까지 매일 그 미술학원을 다녔다. 그 당시 그림그리는 것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어서, 왕복 1시간의 시간도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같은 동네에 살던 단짝친구와 차안에서 쌓은 추억도 많다. 


그렇게 그림그리기를 사랑하게 되었고, 내가 그곳이 예중 입시전문 미술학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또 엄마에게 내 마음을 전했다. "엄마, 나도 예*학교 가고 싶어." 나는 그림만 하루종일 그릴 수 있는 학교가 있다는 것에 흥분해 있었다. 


하지만, 입시반으로 반을 옮기면서, 그렇게 좋아했던 미술공부는, 의무가 되어버렸다. 학교를 끝내자마자 나는 미술학원에서 하루종일 있어야 했고, 집에 와서는 국어와 수학 과외를 해야했고, 가끔 미술학원에서 치루는 시험에서는 항상 100점을 맞아야 했다. 하나를 틀릴때마다 50cm 자로 손바닥을 맞아야 했기 때문에 난 그 수치심이 싫어서 필사적으로 공부를 했다.  


그렇게 혹독한 훈련으로, 난 예*학교에 입학했고, 그때부터는 예술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했고, 예고에 들어가서는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던 대학에 갈 수 없었다. 아빠의 명령으로 재수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미술에 흥미를 잃었다. 그리고, 패션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나홀로 몰래 편입을 준비했고, 패션디자이너가 되었다. 



엄마, 호주, 2024


그림을 다시 시작했다. 동화를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내가 그렇게나 좋아했던 그림을 다시 그리고 있다. 30년동안 찾지 않았던 그림을 다시 시작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고 예중, 예고를 다니며 즐거웠던 순간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내가 노력했던 그 순간들이 이제 나에게 보답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행복하다. 





딸, 한국, 2011



딸은 유치원 방과후 수업에서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때가 5살. 초등학생이 되면서는 동네 발레학원에서 발레를 이어나갔는데, 발레 선생님이 각종 콩쿨을 언급하며 개인 레슨을 제안했고, 콩쿨에 나가니 몇십만원되는 의상제작비를 요구했다. 멋모르고 시작된 콩쿨인생. 어느 순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에 그 발레학원을 그만뒀다. 


춤 추는 것을 좋아하는 딸아이에게 내가 대안으로 제시한 방법은 백화점 문화센터의 발레수업이었다. 그리고 딸은 꽤 오랬동안 즐겁게 발레를 배웠다. 내가 기억하기론, 동화속 내용들을 한시간동안 표현해보는 그런 수업이었던 것 같다. 놀이로 발레를 즐긴 것이다.


딸이 초등 2-3학년이 되었을때, 발레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 했다. 이제 문화센터의 수업은 유치해진 것이다. 전통 발레를 배워보고 싶어했다. 그 당시 판교에 살고 있었기에, 나도 엄마처럼 수소문을 해서 분당의 발레학원 하나를 찾아냈다. 유니버설 발레 아카데미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많은 이들이 예술 중학교를 가기위해 준비하는 곳이었다. 나는 딸아이를 예술 중학교를 보낼 마음이 없었음에도 그곳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 배울려면 제대로 배워는게 낫지. 그런 생각이었다. 


그리고, 초등 5학년때 유니버설 호두까기 발레공연에 아이들이 등장하는 씬에 딸아이도 함께 발레공연의 경험을 쌓기도 했다. 이러던 중, 초등 6학년이 올라가면서, 같이 발레를 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예중을 위한 입시를 시작했고, 딸아이만 덩그라니 남겨지는 순간이 있었다. '이 아이도 예중을 보내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던 것 같다. 내가 경험한것을 똑같이 물려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지금까지 재미나게 즐긴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딸아이에게 물어봤다. 예중에 가고 싶어? 잘 모르겠다 했다. 그럼 안가는게 맞다. 그 정도의 열정으로는 예술학교에서 버틸 수가 없으니까. 딸아이에게는 발레가 아닌 다른 무언가의 더 멋진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딸아이에게 더 많은, 더 다양한 기회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날로 나는 호주 이민을 결정했다. 





딸, 호주, 2019 - 2024


호주로 넘어와서, 어느정도 학교에 적응했을 무렵, 딸아이는 발레를 취미로 다시 시작하고 싶다 했다. 같은 반 친구가 다니는 댄스 아카데미에 발레 수업이 있다면서 나에게 알아봐 달라했다.


학원에 등록한 그날 부터, 그러니까 중학교 1학년부터 지금 고3까지 6년동안, 딸 아이는 발레를 취미로 즐기고 있다. 수업은 일주일에 1번. 2-3시간.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첫해, 6개월이 지난 시점, 연말 발레 공연을 관람하면서 나는 그 발레학원에 400-50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다양한 댄스를 배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 모두 댄스를 진짜 즐기고 있다는 것을 그 공연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끼, 열정은 그들의 미소에서 바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댄스를 좋아하는 구나. 정말로 댄스를 즐기고 있구나 싶었다. 


공연 중간, 내가 울컥하는 순간도 있었다. 조금 몸이 불편한 친구들이 함께 공연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조금은 느리고, 자주 동작은 틀렸지만, 그 모습 자체가 아름다웠다. 그들의 미소는 더 활짝 피어난 함박 웃음이었다. 


딸아이는 호주에서, 매년 연말공연을 위해, 다양한 동화속 이야기를 발레로 표현하고 있다. 어렸을 적 문화센터에서 경험했던 그런 과정이었다. 작년 발레공연은 미녀와 야수였다. 그 공연을 준비하며, 딸아이가 흥분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동안은  '발레를 좋아하는데, 내가 못하게 한건가?' 살짝 걱정도 되면서 혼자만의 고민도 하곤 했었다. 하지만 매년, 나의 판단이 옳았음을 확인하고 있다. 호주의 발레수업이 딸아이에게는 딱 맞는 수업이었다. 


딸아이는 동화속 이야기를 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던 거였다. 이제야 딸아이가 왜 발레를 좋아했는지 이해가 됐다. 그리고, 호주에서 그런 즐거움을 이어가고 있음에 감사했다. 딸아이가 평생 발레를 즐길 곳을 찾았음에,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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