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그림이 있다.
나의 침대옆에 올려놓은 그림 두 점.
아들이 9살때 그린 그림이다.
내가 좋아하는 파란 하늘과 구름
푸른 바다와 거대 고래
아들은 처음 그림을 그릴 때,
어떤 그림을 그릴지 몰라 속상해했고,
어떠한 계획을 잡고 그려야 할지 울먹울먹 했고,
색 하나를 고르면서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첫 번째 붓터치 하나를 시작할 때, 실수의 두려움에 힘겨워했다.
하지만, 막상 그림을 시작하고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대범한 색과 거친 붓터치로 순식간에 그림을 완성했다.
그래서인지 새와 고래의 움직임이 더욱 생동감 있게 살아있는 듯 보인다.
이 모든 과정을 알기에,
나에겐 더 특별하고 소중한 그림이다.
요즘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 도전하고자 하는 일들이 이와 닮아 있다. 좋아하는 일들이기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뚜렷한 계획 없이 막연하게 느껴지고, 하나하나 해나갈 때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되면, 끝도 없는 고민의 시간이 이어지곤 한다.
그러니, 그럴 때면 나는 종종 포기를 한다. 처음에는 작업 자체를 여러 번 포기하고 뒤로 미뤄두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 자신을 포기한다. 고민만 하며 고집부릴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작업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모든 여정 속에 처음 한 번의 붓질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를 일깨워준다. 그렇게 조금씩 완성해 가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중이다. 나의 여정이 끝나면 파란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가 그려질지, 깊고 푸른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거대한 고래일지 나도 모르겠다. 그저 나는 나를 포기했다. 나의 감각만 따를 뿐이다. 한번의 붓질이 다음번의 붓터치를 이어주듯이, 이 글을 쓰며, 문자 하나가 다음 문장을 가져오듯이, 흘러가는 대로, 흘러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