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근아 Aug 10. 2024

다시 시작 - 주방 창문

설거지를 하려고 싱크대 앞에 서있다. 작은 창문을 통해 뒷마당의 자연이 마치 무대처럼 펼쳐진다. 서쪽 하늘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매일 저녁이 되면 다양한 빛깔로 물든 석양이 창문을 가득 채우는데, 그 순간 창문은 단순한 유리가 아닌, 그날의 하늘과 시간을 함께 담아낸 캔버스 같다. 눈앞에 펼쳐진 석양은 마치 자연이 붓을 들고 직접 그려낸 예술 작품처럼, 매일 새로운 색과 빛의 이야기을 나에게 전해준다.



하지만, 밝은 빛이 찾아오면, 어둠에 가려진 사실이 내 앞에 보이는 듯하다. 자연으로 둘러싸인 집임에도 불구하고, 주방 창문의 한 구석으로 회색빛 빈 공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 눈길이 그곳에 머물게 되면, 그 공간은 생기를 잃은, 죽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매일 그 공간을 바라보며, 아무런 변화도 없이 정지된 듯한 그곳의 침묵은 마치 시간을 잃어버린 예전의 나를 반영하는 듯하다. 그 빈자리는 창밖의 생동하는 자연과는 대조적으로, 모든 색과 온기가 사라진 채로, 나에게 끝없는 무채색의 생각들을 드리워주며, 마음속 깊은 곳에 묵직한 공허감을 남긴다.


그 회색 공간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 나는 그곳을 자연의 색으로 채우기로 했다. 지난 화요일, 나는 가드닝 원예 상점에 들러 다양한 식물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이번에는 예전부터 익숙했던 꽃들 대신, 나에게 낯선 호주의 독특한 매력을 담고 있는.식물들만을 일부러 골라왔다. 그들 하나하나가 이곳의 자연을 담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고른 식물들이다. 또한, 주방 창문 앞에 실내 식물 두 개를 배치해, 매일 시선이 닿는 곳마다 다양한 자연의 색이 담기도록 했다.


아직 회색의 공간이 남아 있지만, 그곳은 이제 또 다른 호주의 생명력과 색으로 채워질 준비를 하고 있다. 조금씩 변해가는 이 공간은 마치 나의 호흡을 되찾는 것처럼, 삭막했던 공간이 이제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작은 정원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 공간이 다시 주방의 창문에 담기고 있다.








이전 16화 침묵 속의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