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브안을 살펴보다 01
[ 지난 글들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
정육면체, 즉 큐브를 나 자신이라고 생각해 보면, 큐브의 겉면에는 나의 아트 작품이 드러나고, 나의 글이 적혀있을 것이다. 이 겉면은 나의 창작물이 세상과 연결되는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반면, 큐브의 안쪽은 나의 내면세계를 담아낸 공간이다. 그 안에는 나의 창작 과정이 깃들어 있고, 깊은 생각과 감정, 그리고 영감의 원천이 숨어 있다.
좀 더 설명하자면, 겉면이 외부와 소통하는 내 작품과 글이라면, 안쪽은 그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나의 본질과 감정들이 흐르는 공간이다. 그곳은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나의 작품과 글이 탄생하는 핵심적인 장소이며,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과 생각이 자유롭게 흘러 다니는 세계일 것이다. 큐브의 안쪽은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끝없는 가능성의 공간이기도 하다.
내 작업실은 작은 직사각형의 공간이다. 이곳을 큐브의 내부라 생각하고, 나의 창작 과정을 더 효과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공간으로 분리해 보기로 했다.
먼저 거실에서 새로운 책상을 들여와 한쪽은 글을 쓰는 공간으로, 다른 한쪽은 그림을 그리는 공간으로 꾸며보았다. 이 책상들을 큐브의 겉면과 맞닿아 있는 이면에 위치시킨다는 생각으로 공간을 구분하니, 글과 그림, 두 가지 창작 활동이 서로 거울을 보듯 마주하며 자리하게 되었다. 덕분에 각각의 작업에 몰입할 수 있는 명확한 경계가 생긴 듯했고, 글과 그림이 서로를 반사하며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된 듯했다.
신기하고 놀라운 일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내 안에 잠들어 있던 'inner child'가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기쁨에 차서 폴짝폴짝 뛰는 모습이 느껴졌다. 내 안에서 벌어지는 생각이지만, 마치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그 아이의 생명력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어린 시절의 천진난만한 순수함으로 돌아간 듯, 오랫동안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던 자유로운 창의성이 다시 솟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작업실의 공간을 둘로 나눴을 뿐인데, 그저 나 자신에게 허락된 이 자유로운 공간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내 안의 아이는 그 마음을 나에게 전하며 두 가지의 새로운 영감을 속삭여주었다. 나는 내면의 아이와 다시 연결된 기쁨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 작은 아이가 전해준 영감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하루를 보냈다.
더 나아가서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소로의 일기의 첫 번째 글에서 나온 '즐거운 고독'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강렬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오늘 하루는, 작은 공간이지만 나에게 모든 자유가 허락된 무한의 공간 안에서 오롯이 나 혼자, 내가 사랑하는 글과 그림에 몰입하여 보낸 시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충만했다.
10월 22일 Solitude (즐거운 고독)
"이제 무엇을 할 거니?" 그가 물었다.
"일기는 쓰고 있니? "
그렇다. 오늘 나는 처음 일기를 썼다.
혼자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나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로마 황제의 방처럼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곳에서는 혼자라는 생각을 할 수 없다. 다락방으로 올라간다. 이곳에선 거미조차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다. 마루를 쓸지 않아도, 재목을 나르지 않아도 좋다. 독일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진실이란 나를 더 나아지게 하는 모든 것이다. "
- 소로의 일기 중에서
나는 큐브 안을 들여다보는 과정 속에서, 실제 내 안의 inner child를 찾았고, 그녀의 생명력을 다시 느끼게 되었고, 그녀와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24시간 안에 이루어진 일들이다. 나를 들여다보며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했고, 그것을 작은 시도로 실험해 본 것이 하루 만에 바로 눈에 띄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나의 삶에 단순한 큐브의 개념을 적용시켰을 뿐인데, 나의 일상뿐만 아니라 나의 생각들, 심지어 내 안의 inner child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건, 뜻밖의 성공이었다.
내가 그토록 찾던 진실성이, 처음 읽었던 철학책의 첫 글에 담겨 있었다니! 이 글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그토록 애를 쓰며 10개월을 보낸 듯하다. 의미 있는 여정이었다. 이제 나는 그 진실성을 지닌 내면의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나 스스로를 내려놓으려 한다. 그녀는 솔직하고, 순수하고, 맑으며, 어린이이처럼 천진난만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도전적이고 창의적이다.
나는 나의 내면세계를 담아내는 큐브의 안쪽 공간을 그녀에게 맡기기로 했다.
소로의 말처럼, 나를 더 나아지게 하는 모든 것—나에게는 큐브 내부에서 일어나는 창조 과정이 바로 그 진실된 것이었다. 나를 나로서 진실되게 하는 것이었다. 나의 큐브 안은 그녀에 의해 그렇게 채워질 것이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