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큐브란 06
1.
나의 삶을 찾겠다고 시작한 지 10개월이 되어간다.
나의 일상과 나의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시작했고,
제대로 된 인풋을 위해 철학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독서 모임에 합류했고,
호주의 생활을 본격적으로 즐기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영어 수업과 아트 수업을 등록했고,
우연한 기회로 시작된 영어 수업시간 속 감정 코칭과 소통 코칭을 통해 나를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이 모든 과정의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됨을 깨달으면서 나의 생각들을 차분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2.
나를 찾는 과정을 위해서는,
나의 과거를 들춰야 했고,
나의 창피함을 견뎌야 했고,
나에게 없는 용기도 만들어야 했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고통도 참아야 했고,
지독한 혼자만의 시간을 오랜 기간 보내야 했다.
3.
나에게 장식된 것을 걷어내고,
내가 척척척하던 것을 걷어내고,
나와 관련된 모든 관계들을 정리하고,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감정들을 추스르고,
모든 상황에서 나의 주장, 나의 고집도 내려놓으니,
나에게 남은 건 이제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 하얀 도화지뿐인 것이다.
4.
다시 나의 삶의 처음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나의 삶을 찾은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다시 그려나가는 것이다.
이제 내가 원하는 색과 모양으로 나를 다시 그려갈 수 있다.
과거의 흔적들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이야기를 쓸 여백이 생겼다.
이제 내가 만들어갈 모든 것은 진짜 내 모습을 담은 작품이 될 것이다.
매일 새로운 색을 더하며, 나의 여정을 완성해 나갈 것이다.
5.
능히 굽어질 수 있어야 온전하다.
능히 구부릴 수 있어야 곧을 수 있다.
능히 패일 수 있어야 채울 수 있다.
낡고 해져야 비로소 새로울 수 있다.
줄어들면 곧 얻게 되고 많은 것을 탐하게 되면 도리어 스스로 미혹된다.
그러한 까닭에 성인은 혼융일체(混融一體)하여 천하를 위하여 길을 찾는다.
명성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밝다고 한다.
스스로를 옳다고 하지 않으므로 시비를 분명하게 분별한다.
스스로 뽐내지 않으므로 공을 이룬다.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므로 장구할 수 있다.
성인은 명성에 집착하여 다투지 않는 까닭에 천하에 그와 다투는 것이 없다.
옛날에 굽어져야 온전해진다는 말이 있는데, 이 어찌 헛된 말이겠는가?
사람으로 하여금 원만하게 함으로써 대도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도덕경 노자>
6.
첫 번째 주, 큐브를 그리기 시작하며 그 속에 담긴 무수한 의미를 탐구했다. 큐브가 빛을 받아 드리우는 그림자의 이야기 속에서, 나 스스로가 빛이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에도 이르렀다. 새벽 4시,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있다. 하얀 도화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나의 빛을 조명 삼아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 생각해보는 중이다.
나의 감정을 모두 담아낼 것이며,
나의 불안과 희망을 그대로 드러낼 것이며,
내면의 갈등을 숨기지 않을 것이며,
순수한 나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것이며,
진실의 순간들을 담아낼 것이며,
나를 장식하지 않을 것이며,
나의 생각을 꾸미지 않을 것이며,
나의 말에 진심을 담을 것이기에,
하얀 도화지 위에 펼쳐질 나의 큐브는,
모든 빛과 그림자를 품은,
독특한 화려함이 담긴
나만의 보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