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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낸다 _ 꿈은 버리지 않았다

by 근아

내가 삶에서 많은 것을 비워내고,

내가 소중히 여겼던 것들을 내려놓고,

나를 태워버렸다는 표현까지 쓰면서도,

끝내 고집스럽게 놓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의 꿈이었다.


그 꿈은 나에게 단순한 희망이나 이상이 아니라, 나를 지탱하고 이끌어 주는 내면의 등불 같은 존재였다. 나는 언제나 꿈을 꾸었고, 그 꿈은 나와 함께 자라왔다.


그렇다면,

나의 꿈은 과연 언제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나는 그 꿈을 이루었을까?


어릴 적, 나의 첫 번째 꿈은 패션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다. 엄마가 거실에서 손바느질로 옷을 수선하시던 모습을 지켜보며, 아빠가 동대문 원단시장에서 다양한 색감의 옷감을 만지고 고르시는 장면들이 나에게는 일상적이면서도 마치 꿈의 씨앗을 심어주는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그 막연했던 꿈은 다채로운 옷감, 섬세한 디자인 스케치, 화려한 런웨이 같은 것들로 가득한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항상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좀 더 구체화된 나의 꿈은 내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도, 나를 다시 의상학과로 편입하게 했고, 결국에 나는 유명 디자이너의 부띠끄에서 4년 동안 일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의 꿈이 현실이 되는 새로운 세계의 경험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패션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길로 나는 미술을 시작했고, 그 길은 나를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로 자연스럽게 나의 꿈을 이끌었다. 나는 미술을 깊이 사랑했고, 그곳에서 나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날을 고대했다. 예중고에서 예술을 공부하며 보낸 그 시간들은 단순한 학업이 아닌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그 시절은 나의 삶에서 가장 찬란하고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루 종일 예술과 미술에 몰두하며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경험은 나에게 더 큰 예술적 꿈을 키워주었다.


중학교 시절엔, 많은 학교 친구들이 유학을 가기 시작했을 때, 나도 유학이라는 새로운 꿈을 마음속 깊이 품기 시작했다. 더 넓은 세상에서 경험하고 싶다는 열망은 나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비록 그 꿈은 즉시 실현되지 않았지만, 나는 언젠가 유학을 떠나리라는 믿음은 놓지 않았다. 마침내 45세에 호주 디자인 대학원에 입학함으로써 오랜 꿈을 실현시켰다. 유학은 단순히 지리적인 이동을 넘어 나의 삶의 전환점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새로운 차원의 경험과 성장을 겪었고, 그동안의 갈망을 채울 수 있었다.


디자인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나의 꿈은 또다시 변모했다. 나는 북디자인과 동화작가, 그리고 일러스트 작가라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경험과 배움을 바탕으로, 나는 이제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내 손으로 쓰고, 내가 상상하는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꿈은 내가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며 키운 나만의 소박한 꿈이었다. 18년이나 된 꿈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꿈속에서 살고 있다. 대학원 졸업 후, 나는 첫 번째 북디자인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중이며, 동시에 영어튜터 다니엘이 쓴 동화를 위한 일러스트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매일같이 나는 글을 쓰며 나의 문장력을 가꾸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구하는 과정 속에서 나를 끊임없이 꿈의 한가운데로 데려다 놓는 중이다.




지금 나의 삶에서 내가 비워낸 자리를 채운 것은 바로 나의 꿈이다. 아니, 어쩌면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 없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비워졌을 것이다. 꿈을 위해 무언가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더 큰 목적을 위한 준비 과정인 듯하다. 나는 나의 꿈을 위해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았고, 그 결과로 나의 꿈은 내가 비워낸 자리를 하나씩 채워가며 나를 더욱 단단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


어렸을 적, 막연하게 품었던 하나의 꿈이 점차 다른 꿈을 낳고, 그 꿈들이 나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꿈은 나의 삶에서 포기할 수 없는 중심이자, 내가 결코 놓지 못할 끈이었다. 꿈은 언제나 나를 이끌었고, 지금도 나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나의 꿈을 소중히 가슴에 품는다. 때로는 조용히 나를 감싸고, 때로는 나를 앞으로 이끌어주는 그 꿈을 , 나는 신중하고 섬세한 마음으로 꿈을 돌본다. 꿈은 나에게 단순한 미래의 목표는 아니다. 나의 삶 속에서 피어나고 자라나는 살아있는 생명력이고 나의 길을 결정짓는 본질적인 힘이기에, 나는 그 꿈을 귀하게 여기는 중이다.


나는 언제나 꿈을 꾸었고,

그 꿈은 나와 함께 자라왔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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