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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Dec 27. 2024

다시, 멜번으로 가는 기차에 탔다.

호주, 멜번행 기차 안에서 글을 쓰고 있다. 

8개월이라는 시간의 흐름뒤에 다시 찾아가는 멜번이다.


지난번 여행도 즉흥적이었는데, 이번에는 더욱 즉흥적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이 연말과 신년을 맞아 친구들과 친구의 사촌집에 7박 8일 동안 놀러 간다고 한다. 신랑은 이미 한국에 가 있어서 시드니 집에는 나와 아들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겨울방학, 호주의 여름 연말에 우리 둘이서 무엇을 하지? 

멀리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가자니... 둘이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집에 있자니? 그건 더욱 엄두가 나지 않는다.

새로운 도전은 두렵지만, 정체된 일상은 더욱 두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멜번으로의 여정을 선택했다. 딸에게 그녀만의 독립적인 시간과 공간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이 여행은 마치 운명처럼 자연스럽게 결정되었다. 이런 계획에 전혀 두렵지 않은 이유는 지난번 여행에서 남겨두고 온 아쉬움 때문이다. 과거의 미완성된 이야기가 나를 다시 부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사실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멜번에 가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는 내가 스스로에게 한 약속의 실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불안 대신 기대감과 설레임을 가득 안고 가는 중이다.


이번에도 무계획이다. 기차와 호텔만 겨우 잡아놓은 상태다. 언젠가부터 여행 전에 이것저것 미리 검색하고 떠나는 스타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저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예술을, 호텔 수영장에서 고요를, 그리고 친구(?)와의 만남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것이다.' 이렇게만 정해 놓고 무작정 출발했다. 그렇다고 무계획이라 불안하지는 않다. 계획되지 않은 여정이 주는 불안감 대신, 무한한 가능성이 주는 해방감을 느낀다.






지난번 여행에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이번에는 브런치가 아닌 다른 오프라인으로 글을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을 미리 준비했다. Obsidian이라는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이곳에서 몇 주간 글을 써오고 있기에 이 프로그램에 모든 자료들이 모여 있다.


아이패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모든 생각을 글로 옮기는 중이다. 마치 시간을 붙잡아두려는 듯이, 순간의 감정들을 글자로 포착하고 있다. 지난번 여행에서 "11시간 동안 글을 쓰겠어!" 다짐해놓고 인터넷이 되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좌절감이, 이제는 새로운 도전의 씨앗이 되었다. 디지털 시대의 역설적인 순간이었다. 온라인의 부재가 오히려 새로운 창작의 길을 열어준 기분이다. 그때의 그 다짐을 이번에 실행해보려 한다. 11시간이라는 시간위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을지, 설렘 가득한 실험을 시작했다.


11시간 후,


중간중간 휴식 시간이 여러 번 있었음에도, 아들의 끊임없는 쫑알거림이 있었음에도, 멜버른에 도착할 때까지 10개의 글을 시작했다. 각각의 글은 마치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 - 제각각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드는 생각은 ‘기차 안에서의 에피소드만으로도 이렇게 다양한 글을 여러 개 쓸 수 있다니.’ 나의 글들은 모두 기차 안 승객들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이며, 동시에 나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 되었다. 그들을 자세히 관찰하며 나 나름의 생각을 펼쳐나갔고, 그들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은 순간들이었다. 낯선 이들의 일상적인 순간들이 내 글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순간적으로 알랭 드 보통의 여행 책이 생각났다. 그도 이런 순간들을 포착했을까. 아마도 그도 이처럼 낯선 '공항이라는 공간' 안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깊이를 발견했을 것이다.




"여행자는 관찰자이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주변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평소에는 지나쳤을 작은 세부사항들에 주목하게 된다. 우리는 낯선 곳에서 일상의 평범한 순간들이 얼마나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발견한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중에서





기차가 연착이 되어 집을 떠난지 15시간만에 호텔에 도착했다. 





[ 다음편에서 이어집니다. ]


2024, 12, 26 - 2025, 01, 02 멜번여행 기록












https://brunch.co.kr/@maypaperkunah/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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