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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Dec 28. 2024

내가 선택한 멜버른의 호텔 _ 01

VERIU QVM(Queen Victoria Market) HOTEL

나는 계획적인 사람이었다. 

무계획으로 멜버른에 왔다고 했지만, 내가 호텔을 선택하는 데에는 분명한 기준과 논리가 있었음을 이곳에 와서 깨닫게 되었다. 단지 본능적으로 선택한 것처럼 보였던 과정도, 결국은 지난 경험과 앞으로의 기대가 만들어낸 결과였던 것이다. 그 까다로운 호텔 선택의 기준은 이러했다. 




첫째, 수영장이 있어야 했다. 


지난 여행에서 아들이 수영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외출 전 새벽같이 일어나 모닝수영을 즐기고 아침을 먹던 그의 모습은 지난 여행 일상의 일부였다. 아들은 외부 관광보다 하루 종일 호텔 수영장에서 보내는 시간을 더 원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고,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도록 돕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주요 활동은 자연스럽게 '수영'으로 정해졌고, 호텔 선택의 첫 번째 기준 역시 수영장이 되었다.


첫째 날, 우리의 첫 활동은 예상대로 수영이었다. 10살 아이에게 ‘적합한 깊이와 따뜻한 히터, 그리고 호텔 이용객만을 위한 프라이빗한 공간이 있는 수영장’은 내가 생각했던 보다 그에게 그리고 나에게 더 큰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일단, 안전에 대한 안심이 주는 편안함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상상했던 고요 속의 수영, 물속에서 행복하게 웃는 아들을 바라보며 느낀 것은, 이 시간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자 의미라는 점이었다. 빠르게 이동하며 많은 것을 경험하는 여행 대신, 한 곳에서 여유롭게 머물며 좋아하는 활동을 반복하는 느린 여행은 휴식 이상의 가치를 선물했다.


오늘도 우리는 하루종일 수영을 즐길 예정이다. 



수영장만큼이나 중요한 또 다른 조건이 있었다.


둘째, 나만의 모닝 루틴을 위한 공간이 필요했다.


지난 여행에서 깨달은 건, 새벽에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였다. 첫날, 이른 새벽에 홀로 깨어 조용히 글을 쓰려했지만, 방 안의 조명을 켜면 가족들을 깨울까 염려했고, 근처의 카페는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어둠 속에서 노트북만 켜놓고 작업을 해야 했었다. 그 답답한 마음에 호텔 안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겨우 24시간 오픈하는 수영장 안의 테이블을 찾아 앉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새벽에도 나만의 시간을 편안하게 보낼 공간이 필요했다. 그런 조건을 갖춘 호텔을 찾기 시작했다. 로비 옆 넓은 오피스 겸 카페 공간이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나만를 위한 작은 은신처 같은 곳이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오피스 공간으로 내려가니 4시 반. 이른 시간이라 24시간 운영된다는 리셉션에도 직원은 보이지 않았고, G층 전체가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아늑함은 덜했지만, 조용하게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과 세련된 멜버른의 디자인 공간 속에서 그리고, 멜버른의 고요한 새벽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만나는 나의 시간을 맞이했다. 이곳의 차분한 매력이었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브런치 글을 쓰고, 책출간과 관련된 웹디자인 수정을 하고 있는 중이다. 





셋째, 작은 키친이 있는 아파트형 호텔이어야 했다. 


수시로 먹을 것을 찾는 아들을 위해, 작은 키친은 필수였다. 여행이라는 특별한 상황 속에서 그의 에너지는 끊임없이 충전되어야 했다.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아들은 다섯 끼, 아니 여섯 끼를 기본으로 이것저것 챙겨 먹었다. 그의 이러한 식습관은 여행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작은 키친은 여행 중에도 집과 같은 안정감을 제공하는 곳이자, 우리가 함께 음식을 준비하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순간들을 만들어주는 공간이었다. 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즉각 채워줄 수 있다는 점은 여행의 자유로움과 유연함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아들과 단둘이 떠난 이 여행에서, 이 작은 공간이 이번 여행의 필수 조건이 된 이유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호텔 선택에는 다른 여러가지 기준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다음 이야기로 미루려 한다. 사실, 이 세 가지 조건은 여행에서 경험한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시작에 불과했다. 그 가치들은 여행의 각 순간에 숨어 있었고, 그 안에서 새롭게 펼쳐질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세 가지 조건들이 만들어낸 특별한 경험에 집중하고자 한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maypaperkunah/534



https://www.kunahjung.com/ 

Kunah Jung 아티스트 정근아 & the Me 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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