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호주에 온 이유
며칠 전, 시드니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그 빗소리를 들은 초등 5학년 아들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와! 비 온다!!! 나가야겠다."
내가 말릴 새도 없이 아들은 앞마당으로 뛰쳐나갔다.
그 빗속에서 빙글빙글 돌며 한없이 좋아하는 모습이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 자연이 아들을 호주, 이곳으로 이끌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정말 그랬던 것 같다. 8년 전 한국, 미세먼지가 지독하게 심하던 겨울날이었다. 아들과 함께 외출도 못 하고 집에만 꼼짝없이 갇혀 있던 그 며칠 동안 나는 호주행을 결심했다. 호주로 가기로 마음먹은 첫 번째 이유가 바로 호주의 파랗고 광활한 하늘이었다. 하늘의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한 곳, 그곳이 그리웠다.
그리고 호주에 온 지 6년째, 요즘 아들의 성장 과정을 보며 아이가 자연의 한 부분으로 자라나고 있음을 자주 느끼는 중이다. 인간이 아닌 자연의 일부, 자연의 한 생명체로 말이다.
자연과 하나 되어가는 걸까?
웅장한 자연이 우리 아이를 따뜻하게 품어주고 있는 걸까?
자연이 나보다 더 본능적으로, 아이가 본연의 모습대로 자라도록 이끌어주고 있는 건 아닐까?
아들은 걷기 시작할 때부터 맨발로 걷는 것을 좋아했고, 자연 속에서의 캠핑을 무척 좋아했다. 아직 만 3살의 아기였지만, 그 작은 아이에게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반면에, 그즈음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적응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당시에는 단순히 분리불안 때문이라 생각하며, 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자연스레 적응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그 때를 기다렸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때를 다시 떠올려 보면, 아들은 단순히 적응이 어려웠던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속도가 있는 아이였다. 또한, 유치원이라는 단체생활의 공간이 그에게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한국에 있었다면 ADHD 판정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불안하고, 산만하고, 느린 아이라고 불리며 말이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의 아들은 달랐다. 그래서 나는 결국, 이곳 호주를 선택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호주에 와서도 적응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만 4살에 처음 보는 '외국' 아이들과 지내기 시작했고,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긴 적응 기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현재 만 11살이 되어가는 아들는 요즘 스스로의 자아를 찾아가는 중이다. 엄마인 나는 때때로 놀라기도 한다. 이 아이는 겉으로는 변한 듯 보이지만, 본질적인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 아이는 그냥, 이 아이였다.
결국, 아들은 언제나 그 자체로 존재해 오고 있음을 실감하는 중이다. 자연처럼, 순수한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내가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이 아이의 본성을 해치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까지 하다.
아들은 결코 느리고 산만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만의 속도로 전진하는 중이었고, 다양한 것에 호기심과 관심이 많은, 섬세한 감각을 지닌 아이였다. 아들은 자신만의 리듬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그리고 그 모든 특성이 그의 예술적 감각으로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그의 예술적 성향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금, 아들은 자신 안의 빛을 온전히 뿜어내는 중이다.
자연 (自然):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
https://medium.com/@kunah.jung/a-child-raised-in-australian-nature-322a76bd754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