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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속 편지글이 나에게 말한다

by 근아

내가 좋아해서 여러 번 반복해 읽는 책이 여럿 있다.

그 매력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모두 '편지글'이라는 점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빈센트 반 고흐: A Life in Letters』.


그리고, 완벽한 편지의 형태를 띠고 있지는 않지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이 책들은 모두 편지 형식으로 쓰였고, 나는 그 안에서 유독 마음이 끌리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편지글의 책을 읽다보면, 마치 누군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초대받아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소설이나 에세이보다 다듬어지지 않은, 좀 더 감정의 생명력이 살아 있다고 해야 할까. 사랑과 고뇌, 창작의 기쁨과 슬픔, 삶에 대한 성찰이 편지 한 장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독자로서 나는 그들의 대화 속에 들어가 그들의 깊은 내면과 닿는 듯한 감동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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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요즘 읽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 A Life in Letters』 덕분이었다. 화가로서 고흐의 열정과 고민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이 책은 그의 진지한 내면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 600여 통에는 한 인간이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 그리고 그가 겪은 모든 노력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흐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의 자연과 삶, 사람들에 대한 깊은 사랑이 나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So you see that I'm pushing ahead with a vengeance, those things aren't so very easy, and require time and moreover quite a bit of patience.

그러니까 내가 있는 힘껏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걸 알겠지. 이런 일들은 그리 쉽게 되지 않고, 시간과 무엇보다 꽤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거든.
There are laws of propostion, of light and shadow, of perspective, that one must knew in order to able to draw anything at all. If one lacks that knowledge, it will always remain a fruitless struggle and one will never give birth to anything.

사물을 그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법칙들이 있어. 비례의 법칙, 빛과 그림자의 법칙, 원근법의 법칙이 그것이지. 이 지식을 갖추지 못하면, 언제나 헛된 싸움에 그치고 결코 아무것도 창조해 낼 수 없을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는 사랑에 빠진 한 청년의 감정의 소용돌이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베르테르의 편지는 그 기쁨과 고통,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복잡한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그의 감정에 함께 웃고, 함께 아파하며 그의 세계에 점점 더 스며든다. 하지만 그 깊은 감정의 바탕에는 괴테의 삶에 대한 깊은 사유가 숨어 있어, 나는 그것이 나에게 더욱 강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그 모든 일이 어떻게 끝날 것이며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겸허한 마음으로 인식한 사람, 여유 있게 사는 시민 하나하나가 그들의 조그마한 정원을 손질하여 낙원으로 꾸밀 줄 알고, 불행한 사람마저 그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거리면서도 끈기 있게 스스로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이 햇빛을 다만 1분이라도 더 오래 쳐다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그렇지, 그런 사람은 말없이 자기 자신 속에서 스스로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아무리 제약을 받고 있더라도, 항상 마음속에서 자유라는 즐거운 감정을 간직하고 있다. 자기가 원하면 언제라도 감옥 같은 이 세상을 벗어날 수 있다는 그런 자유의 감각 말이다. - 괴테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릴케의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통찰이 빛난다. 예술과 삶을 대하는 그의 진지한 태도, 그리고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는 젊은 시인에게 전하는 조언은 방황하던 내게도 그대로 다가왔다. 편지를 통해 전달되는 릴케의 사유는 나에게도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그가 남긴 글에 대한 깊은 공감이 일었다. 나는 그에게 다시 답장을 보내고, 그로부터 또 다른 답을 얻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당신의 회의도 당신이 그것을 훈련한다면 하나의 좋은 특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적인 것이 되고, 비판력이 되어야 합니다. (중략) 논거를 요구하십시오. 그때그때 신중하게, 철저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파괴자였던 회의가 당신의 가장 훌륭한 일꾼의 하나가 될 날이, 아마도 당신의 삶을 구축하는 모든 자 가운데 가장 현명한 자가 될 날이 올 것입니다. - 릴케




또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도 내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나다.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는 아니지만, 그가 자신에게 쓴 글들은 마치 자시 자신의 내면을 향한 편지처럼 다가왔다. 철학자로서, 황제로서의 고민과 성찰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네가 이루고자 하는 모든 것들은 너의 방식대로 하면 저 멀리 돌고 돌아서 언젠가는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 그것들을 부정하지 말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기만 한다면, 즉 모든 과거를 그대로 인정하고, 미래를 섭리에 맡기는 가운데, 오직 현재만을 경건과 정의로써 대한다면, 그 즉시 너의 것이 될 수 있다. 그런 태도를 경건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이 너에게 준 운명을 받아들여서 사랑하기 때문이고, 정의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 없이 진실하게 말하고 행동하며,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법을 지킬뿐만 아니라 그 일의 경중을 가려서 적정한 정도를 지키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다룬 편지글들은 나에게 진실된 감정과 사유의 교감을 전달하며, 각기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살아간 이들의 내면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게 했다. 편지글을 통해 나는 그들의 진솔한 목소리와 깊은 사유를 들으며, 삶과 예술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결국, 편지글은 나에게 시간을 넘어서는 연결의 감동을 준다. 그들은 과거의 인물이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내가 앞으로 <엄빠의 유산 프로젝트>에서 쓰게 될 편지글들도, 이런 나의 감정과 사유가 몇백 년 후의 세대들까지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남길 아주 작은 흔적일지라도, 그들의 마음과 깊이 연결될 수 있다면, 그 또한 위대한 의미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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