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근아 Feb 03. 2024

아파트 살 돈으로 호주에 왔다

메이페이퍼 ㅣ 나는 호주에서 5살이다 ㅣ 16

벽돌집을 렌트해서 살고 있다.


호주에 온 지 5년.

하우스 사는 게 (buy) 로망이었지만,

동시에 하우스에 사는 게 (live) 두려웠다.


5년 동안 아파트에서 두 번, 타운 하우스에서 한 번씩 살아봤다. 그리고, 마지막 아파트 렌트 계약이 끝날 무렵, ‘호주에 왔으니 한 번쯤은 하우스에서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실험정신적인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임대 과정을 거친 후,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벽돌집으로 2023년 3월, 이사를 했다.


이제 이 집에서 거의 1년째 살고 있으니, 이 집의 사계절을 경험해봤다고 할 수 있다.


처음 이곳으로 들어올 때의 마음은 ‘살다가 정 못살겠으면 다시 아파트로 가든가’였는데, 지금은 ‘다시는 아파트에 못 살 것 같아'의 마음으로 바뀌었다. 하우스 사랑은 이 집으로 이사 온 첫날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신랑과 나는 이미 집주인에게 이 집을 나중에 사고 싶다고까지 말해 놓은 상태다.


사실 난 깔끔하게 정돈된 모던한 집을 좋아한다. 벽돌집을 떠올리면 내가 어렸을 적 자주 가던 이모집이 생각난다. 왠지 오래되고 불편하고 추웠던 경험으로, 벽돌집에 대한 생각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더군다나, 이 호주의 벽돌집은 몇 가지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 집이었기에 이사를 감행하는 것이 조금은 무리수를 두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루를 살고, 한 달을 살고, 1년을 살면서, 그 많던 단점들은 이제 나에게 이 집이 없으면 안되는, 더 치명적인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 벽돌집이 다른 집과 확연하게 다른 이유가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벽돌집에 대한 선입견과 이 집으로 들어오기전 보이던 단점들 모두를 이집만의 유니트함으로 만들어버린 이 집의 매력을 기록해볼까 한다.




이 벽돌집은 날씨에 민감하고 융통성이 있다. 더운 날에는 시원했고, 추운 날에는 따뜻했다.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올 때면, 벽돌집이 ‘집의 안락함’이라는 것을 내 품에 툭 던져주는 기분이다.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걸어온 나에게는 에어컨 같은 차가운 시원함을 선물하고, 으스스한 호주의 겨울날에 덜덜 떨다 들어오면, 집안에 아무도 없음에도 따뜻한 온기로 나를 맞아줬다.


처음 호주로 왔을 때는, 온돌이 없다는 것이 참으로 불편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한국 조상들의 지혜는 진짜 대단하다’였다. 하지만, 이 벽돌집을 살면서 서양집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은 바로 사라졌다. 온돌이 없음에도 집은 따뜻하고 시원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좌식생활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 바닥의 차가움은 그저 카펫으로 차단하고 슬리퍼를 신으면 그만이었다.


또한 이 벽돌집은 살아 움직인다. 날씨에 따라 집안 곳곳에 있는 오래된 나무가 수분을 흡수했다가 내뱉으면서 나무문이 팽창했다 줄었다 하고, 마룻바닥의 홈이 좁아졌다 벌어졌다 한다. 방마다 바람구멍이 있어서 자동 공기순환이 된다. 가끔은 그곳으로 벌레가 들어오기도 하지만, 그 또한 자연이다.


이 벽돌집은 조용하다. 모든 소음을 흡수하는 듯하다. 방문만 닫으며, 아들이 시끄럽게 틀어놓은 텔레비전 소리도 맞은편, 고3 누나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장댓비가 퍼부어도 우리는 비가 왔는지 전혀 모른다. 가벽을 세워 확장하여 만든 거실로 가야 빗소리가 그대로 전달되면서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럴 때는 조용한 대화가 불가능하다. 목소리의 볼륨을 높여야 한다. 이만큼의 소음을 벽돌집은 모두 흡수한다.


이 벽돌집은 오래된 집이다. 열쇠도 어느 중세시대에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옛것이다, 여기저기 남아있는 옛 흔적들이 나에게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며칠 전 찍은 주차공간의 창문. 어느 시골 헛간 같다. 하지만 난 이런 분위기가 좋다. 어렸을 적 보던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신랑은 항상 그곳에 캠핑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 휴식을 취한다. 처음 귀신 나올 것 같다고 질색을 했던 내가, 요즘엔 그곳에 그림 그리는 공간을 만들어 볼까 고민 중이다.


이 벽돌집은 집주인이 직접 관리하는 집이다. 며칠 전 거실과 다이닝룸 사이에 있는 슬라이드 문이 고장 나서 부동산에 연락하니, 집주인이 와서 직접 고쳐주고 갔다. 나의 예상으로는 집 짓는 기술을 가진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는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왔지만, 볼보 외제차를 타고 나타났다. 왠지 그의 과거가 보이는 듯했다. 성실하게 일해서 이제는 부를 누리고 있는 모습. 실제 그는 굉장히 성실했다.


한 시간 넘게 혼자 끙끙거리면서도, 정성을 들여 슬라이드 문을 고쳐주고 갔다. 그가 작업하는 동안, 나는 이 집을 너무 사랑한다 그에게 얘기했다. 그리고 이 때문인지. 며칠 후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이 달의 세입자에 선정됐다며 상장을 받아가란다. 그리고 50불의 상품권과 와인도 선물 받았다. 자신의 집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에게도 느껴졌나 보다. 상장과 선물을 받고 돌아오면서 그에게 이 집의 의미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이 집을 더욱더 사랑해주고 있다. 잘 보존해주고 싶다.


이 벽돌집은 담장이 낮다. 다른 집과 달리 우리 집은 밖에서 훤히 보인다. 처음에는 너무 공개된 기분에 임시로 담을 만들어볼까 했지만, 그러지 않길 잘했다. 나는 창문밖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창문을 바로보고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산책하고, 아이들이 등하교를 한다. 그들의 여유로움과 즐거움이 나에게도 전해진다. 창문이 그림의 액자이고, 영화의 스크린처럼 창밖은 나에게 호주의 삶을 보여준다.


이 벽돌집은 곤충, 벌레와 같이 산다. 이것이 나의 가장 큰 걱정거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아파트에 살 때보다 더, 하우스에는 벌레가 없다. 곤충벌레들은 자연에서 살고, 인간들은 집에서 살고 그 영역이 나눠진 기분이다. 곤충, 벌레들이 집으로 들어올 때는 사람들이 그들을 자극시키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칡흙 같은 밤에 내가 켜놓은 불빛은 나방들을 불러들이고, 쓰레기통 안의 아이스크림 포장지(?)는 수십 마리의 개미를 줄짓게 한다.


주먹만 한 헌츠맨 거미는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벌레들을 잡아주고, 정원에서 햇빛을 쐬고 있는 아기 도마뱀들은 나의 친구가 되어준다.  




이 집의 매력을 쓰다 보니 7가지로 정리가 됐다. 이 외에도 사소한 매력들이 또 여러개 포함되겠지만, 이 모든 매력들을 한나로 합쳐 정리한다면,


이 벽돌집은 자연 속에 있는 집이다.


나를 자연 속으로 들어오게 하고, 나에게 자연을 주고, 나에게 자연과 이웃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벽돌이 한 장 한 장 쌓여

집이 완성되는 것처럼,


난 이 집에서

나의 글을 쌓아가고,

그림을 쌓아가고,

독서를 쌓아가고,

사랑을 쌓아가고 있다.

내 마음의 벽돌집도 함께 쌓아가고 있다.


그 벽돌집은 점점 모습을 드러내면서

튼튼하면서 유연하고,

계속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외부로의 소음을 차단해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준다.

또한,

자연,이웃과 소통하고,

시원함과 온기를 전해주는

너그러운 여유를 보여준다.

매일 나에게 선물과 상장을 주며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계속 표현해주고 있다.


내 안의 벽돌집이 다 지어지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