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킨다는 것에 대해서 2

by 근아

어제의 글에서 답하지 못한 두 개의 질문에 대한 생각을 이어서 적어보려 한다.


네 번째 질문, 가리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다섯 번째 질문, 가리킨다의 이면에는 어떤 본질이 존재할까.


내가 가리킨다.
이 짧은 문장은 단순한 동작을 넘어, 내 안에 자리한 생각의 방향과 의도를 응축한다. 어떤 사물을 가리키기 위해서는 먼저 시선이 머무는 곳이 있어야 하고, 그 시선은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대상, 현상, 감정, 생각으로 향한다.


즉, '가리킨다'는 것은 나의 내면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하나의 제스처이자, 나 자신을 외부 세계와 접속시키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그 과정을 다시 집어보려 한다. Pointing out.






첫째, 방향이 설정된다.
내가 바라보는 곳과 내가 바라볼 곳이 정해진다. 위, 아래, 오른쪽, 왼쪽, 뒤, 앞, 겉, 안,.... 이것은 나의 시선을 움직이게 한다. 이는 더 넓게는 내 마음속의 방향도 바꾸어 놓는다. 미래를 바라보는지, 과거를 되돌아보는지, 현재의 내 안을 들여다보는지.


가리킨다는 것은 단지 손끝이 가는 방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층위에서, 내가 지금 어디를 보고자 하는지, 어떤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려는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행위다. 즉, 그것은 물리적인 방향을 넘어, 정신의 방향, 가치의 방향, 존재의 방향이 설정되는 것이다. 나의 시선이 위를 향할 때 나는 어떤 이상을 꿈꾸고 있는지 묻고, 뒤를 돌아볼 때 나는 어떤 과거와 연결되어 있는지 되묻게 된다.


방향을 정하는 일은, 결국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나아가고자 하는지를 자문하는 일이다.



둘째, 집중이 생긴다.
내가 가리키던, 누군가가 가리키던, 그것과는 상관없이... 그 방향을 바라보면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에 집중한다. 그 사물에, 그 현상에, 그 마음에 나의 시선이 머무르게 된다. 자연스럽게 단 1초의 순간이라도, 찰나의 집중이 이루어진다.


집중은 가리킴이 만들어내는 두 번째 파장이다.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 순간, 그 대상은 수많은 것들 속에서 하나로 분리되어 내 의식 안에 자리 잡는다. 그 짧은 찰나, 온 신경이 한 점에 모인다. 그것은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이다. 존재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계속 변화하지만, 우리가 그것을 바라볼 때 비로소 형태를 갖는다.


가리킴은 대상에게 존재의 무게를 부여하고, 집중은 그것을 현실의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된다.



셋째, 관심, 호기심이 생기게 된다.
두 번째까지는 내 몸이, 내 생각이, 자동반사적으로 이루어지는 반응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의 시선이 함께 그곳을 가리키면, 이제 나의 생각이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그렇게, 관심, 호기심이 생기게 된다. 가리킨다는 행위는 감각적인 반응으로 시작되지만, 그 뒤를 따라오는 것은 생각의 확장이다.


내가 계속해서 그곳을 바라보는 동안,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형상이 아니다. 그것은 '왜 저기에 있는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묻게 되는 존재가 된다. 관심은 나의 내면과 외부 세계가 만나는 지점이며, 호기심은 그 만남을 지속시키는 동력이다. 이 호기심이 없다면, 우리는 사물들 사이를 스쳐 지나갈 뿐이며, 어떤 것도 우리에게 남지 않는다.


그러나 이 호기심이 있을 때, 사소한 것도 사유의 재료가 된다.



넷째, 나만의 중요성, 가치, 의미가 부여된다.
이제는 나의 것이 되면서, 나의 동반자가 된다. 나의 기억이 되고, 나의 사상이 되고, 나의 가치가 되고, 나의 사상이 되고, 나의 명제가 되고, 나의 철학이 되고, 나의 삶이 되고, 나의 미래가 된다. 가리킨다는 행위가 반복되고, 그에 집중하고 관심을 기울인 대상은 어느 순간 나의 내면에 스며든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그 대상을 단순한 외부의 '무엇'으로 보지 않고, 나의 사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이제 나의 언어로 말해지고, 나의 사고에 영향을 주며, 나의 가치관을 구성한다. 어떤 대상을 가리키고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그것을 나의 존재에 편입시키는 과정이며,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이처럼 수많은 '나의 동반자'로 채워진다. 내가 가리켰던 모든 것들이 내 안에 살아 숨 쉬게 된다.



다섯째, 나만의 연결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나는 세상을 인식하고, 무엇에 가치를 두고, 어떻게 연결하는지 알게 되고, 체화하게 되고, 습관이 되고, 삶이 된다. 나는 끊임없는 연결을 원한다. 세상과 연결되고, 타인과 연결되고, 그리고 나 자신과 연결되기를.


가리킨다는 행위는 그 모든 연결의 시작점이다. 무엇을 가리키느냐에 따라 나의 삶이 닿는 곳이 달라지고, 그 선택이 반복될수록 그것은 하나의 삶의 방식, 삶의 철학으로 자리 잡는다.


가리킨다는 것은 결국, 연결을 창조하는 손끝의 철학이다.



여섯째, 이제 이면을 바라본다.
내가 가리킨 곳의 반대편, 누군가가 가리킨 곳의 반대편에는 내가 있고, 누군가가 있다. 그 시작점이 있다.

가리킨다는 것은 결코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다. 내가 무언가를 가리킬 때, 동시에 그 반대편 어딘가에는 누군가의 시선이 그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시선은 종종 나를 향하고 있다.

어떤 대상을 가리킴으로써 사실은 나 스스로를 지시하고, 드러내고, 응시하게 된다. 그 손끝의 반대편에는 나의 존재, 나의 시작, 나의 진심이 숨어 있다. 가리킨다는 것은 결국, 외부를 통해 내면을 돌아보는 행위이며, 타인을 통해 나 자신을 발견하는 방식이다. 그 반대편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리킨다는 행위의 본질에 다다르게 된다.






가리킨다는 것에 대해서.

이 글을 쓰며, 나는 처음 조던피터슨의 글로 시작하였다. 독자분들 모두 그의 글에 먼저 집중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쓰며 독자의 관심을 --> 가리킨다의 방향으로 --> '나의 삶'의 방향으로 --> '나의 사유'의 방향으로, 그 시선을 돌리게 함으로써, -->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근아 작가'를 가리키고 있다.


이렇게 나는, 나의 이야기를 쓴다.


이제, 손가락으로 가리킨다는 의미에 나의 이야기가 첨가되었다.

이 글을 독자분들이 읽고 나가시면서, 조던피터슨만 기억하거나, 가리키다의 의미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함께 따라가길 바란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Pointing out.

보이는 것은 그리하여 단순한 표지가 아닌, 나의 존재가 세상과 만나는 ‘지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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