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머는 [...]를,
시계는 [...]를 가리킨다.

by 근아

< 내가 가리키는 것 - 두번째 이야기 : 시간 >


주방에는 타이머와 시계가 나란히 놓여있다.


모두 시간을 담당하는 기계이지만, 하는 일은 다르다.

기능이 시간을 바라보는 방식, 나아가는 방향을 갈라놓는다.


타이머.

시간을 설정한다. 알람이 울릴 그때를 향해 간다.

설정된 숫자에서 0으로—시간은 줄어들고, 결국 소리를 낸다.

타이머는 유한하다.

한 번의 설정, 하나의 목표, 하나의 끝.

하지만 동시에 무한하다.

마음대로 시작점을 바꿀 수 있고, 반복도 가능하다.

매번 같은 시간도, 전혀 다른 시간도 허락하는 존재이다.

그래서일까, 타이머는 나의 의지를 담은 시간이다.

내가 시간의 양을 정하고,

내가 임의로 멈출 수 있는 시간.



시계.
자연의 시간을 담고 있다.

매일 아침이 있고, 밤이 찾아온다.

무한의 흐름이 존재한다.
하지만, 12시간의 틀 안에서 똑같은 숫자를 반복한다.

시간은 순환하는 듯하지만, 하루는 분명 유한하다.
반복되는 흐름 속의 유일한 현재를 보여준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멈추지 않는다.

멈춘다 해도, 건전지를 넣고, 제시간을 찾아 다시 시작된다.





서로 다른 시간의 결을 품은 두 기계는, 나의 하루를 함께 만들어 간다.


타이머는 '곧 도착할 시간'을, 시계는 '지금 이 순간'을 가리킨다.

타이머는 ‘시작과 끝’을, 시계는 ‘순환과 반복’을 가리킨다.

타이머는 ‘측정’을, 시계는 ‘흐름’을 가리킨다.

타이머는 ‘실행’을, 시계는 ‘성찰’을 가리킨다.

타이머는 ‘긴장’을, 시계는 ‘평온’을 가리킨다.

타이머는 '집중'을, 시계는 '확장'를 가리킨다.

타이머는 '유한'을', 시계는 '무한'을 가리킨다.

타이머는 '돌아감'을, 시계는 '나아감'을 가리킨다.

타이머는 '제자리'를, 시계는 '자유'를 가리킨다.

타이머는 '퇴보'를, 시계는 '발전'을 가리킨다.

타이머는 ‘기다림’을, 시계는 ‘지나감’을 가리킨다.

타이머는 ‘해야 할 일’을, 시계는 ‘살고 있는 삶’을 가리킨다.

타이머는 '단기 목표'를, 시계는 '내 인생 전체'를 가리킨다.

타이머는 '인위적 리듬'을, 시계는 '자연스러움 흐름'을 가리킨다.

타이머는 ‘과녁을 향한 시선’을, 시계는 ‘전체 풍경을 보는 관조’을 가리킨다.


타이머는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나’를,

시계는 ‘내면의 시간에 귀 기울이는 나’를 가리킨다.


타이머는 ‘해야만 하는 일들에 쫓기는 나’를,

시계는 ‘하고 싶은 일들을 묵묵히 기다리는 나’를 가리킨다.


타이머는 ‘성과를 향해 달리는 나’를,

시계는 ‘과정을 받아들이는 나’를 가리킨다.


타이머는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야만 하는 나’를,

시계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를 가리킨다.


타이머는 ‘멈추기를 두려워하는 나’를,

시계는 ‘멈춤 속에서 숨을 고르는 나’를 가리킨다.


타이머는 ‘속도에 예민한 나’를,

시계는 ‘리듬에 초민감한 나’를 가리킨다.


타이머는 ‘끊임없이 계획을 수정하는 나’를,

시계는 ‘흐름을 따라 방향을 찾는 나’를 가리킨다.


타이머는 '유한한 몸을 가진 나'를,

시계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위대한 나'를 가리킨다.






- 다음 편에서 [시간]의 두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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