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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남이 Dec 26. 2023

아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사랑

성탄절 서울 아파트 화재 사건을 추모하며

내 인생을 크게 둘로 나눈다면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기 전과 후가 아닐까. 그만큼 결혼 후의 삶은 내게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중에서도 두 명의 아이들을 만난 건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아내에게는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아이들이 나를 닮아 그런지 몰라도 녀석들에게 조금 더 특별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단순히 사랑의 감정보다 더 큰 무언가가 있다고 할까. 남녀 간의 사랑과는 또 다른 차원의 사랑을 경험하며 삶의 이유와 의미를 재정립하고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말처럼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이 울타리는 감히 어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다. 허울 없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흔히들 말하는 "가족은 건들지 말자"라는 말의 의미도 같은 맥락일 테다. 그 덕에 가족을 이끌어 나가는 아버지들이 얼마나 대단한 분들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평범했던 남자들도 아빠들이 되고 나면 어떤 때는 슈퍼맨으로 또 어떤 때는 영웅으로도 변신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오직 아빠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의 원천은 바로 '가족'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아이들이 가장 기다린다는 성탄절 새벽, 한 가정에서 비극이 일어났다. 아랫집에서 난 불로 구조를 기다렸으나 여의치 않자 아빠는 엄마와 두 살배기 첫째 아이를 먼저 대피시켰다. 그리고는 7개월 된 둘째 아이를 안고 4층에서 뛰어내렸다. 아빠는 숨졌고, 아이는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다. 아이들이 연기에 질식되지 않게 하기 위한 아빠의 판단은 정확했고, 엄마와 첫째 아이도 무사했다. 아빠는 자신의 몸이 땅에 부딪히는 순간까지 아이를 지켰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새끼를 안고 놓지 않았던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가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남자'나 '청년'의 이름으로는 할 수 없는 오직 '아빠'의 이름이기에 가능했던 책임과 희생이었다.

 


서른두 살 평범한 가장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하며 애도했다. 자녀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줄 수 있는 그 사랑은 부모가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은혜이다. 남겨진 아내와 두 아이들에게 이날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슈퍼맨이자 영웅이었다. 아버지 품에 안겨 있던 7개월 아기는 자신을 지켜준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소중한 몸을 끝까지 움켜쥐고 놓지 않았던 아빠의 넓은 품과 손아귀의 힘을 기억하겠지. 그 사랑의 힘이 전달되어 삶의 어떠한 순간에도 아이를 지켜주고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존재 자체로 귀한 아이들이 부디 아픔 없이 자라나길 기도한다.



아버지의 숭고한 사랑과 희생에 경의를 표하며, 남겨진 가족에게도 위로가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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