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아들과 도쿄 와세다대학교 돌아보기

중3아들과 도쿄여행

by BUSAN찌어이

중3아들은 다섯 살 무렵부터 5년 동안 하노이 한인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라는 베트남에 있었지만, 한인촌에서 한국 문화를 접하고 국제학교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면서 다문화를 온몸으로 익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덕분인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즐기는 적극적인 아이로 성장했다. 지금도 아들은 어른이 되면 여러 나라에서 많은 경험을 하고 살아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반면 나는 대학 시절 교환학생 기회가 있었지만 겁이 많아 선택하지 못했고, 외국에서 살아보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의 해외 발령으로 전혀 계획에 없던 해외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 5년은 내 삶을 많이 바꿔놓았다.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홍콩, 미국, 일본 등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또 그 안에서 얼마나 다양한 사람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경험으로 중3아들은 세계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며 다양한 경험을 함께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던 중 작년 미국 여행에서 우연히 들렀던 플로리다 대학이 아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그 기억 때문인지 이번 도쿄 여행을 계획하면서, 일본의 대학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며 와세다대학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여행을 계획했을 때는 오전은 도쿄 해리포터 스튜디오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와세다대학을 돌아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도쿄 해리포터 스튜디오에서 계획보다 시간을 더 보내게 되어 늦은 오후에 와세다대학에 도착하였다. 학교를 돌아보기 전에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학교 앞 유명한 라멘집을 찾아갔다. 와세다 대학가는 한국의 대학가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화려한 번화가의 활기보다는 작은 식당들과 아담한 주택가가 조용히 어우러져 있는 차분한 대학가의 분위기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중 가장 붐비는 곳은 의외로 동네 우체국이었다. 우리는 왜 우체국이 이 동네에서 가장 분주한 장소인지 이야기를 나누며, 일본에는 우리와는 다른 생활문화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식당을 나와 학교 담벼락을 따라 걷다 보니 붉은 벽돌과 고풍스러운 시계탑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니 유럽풍 건축을 연상시키고 석재와 벽돌이 층층이 쌓인 웅장한 건물이 나타났다. 이 건물은 와세다의 상징 같은 오쿠마 강당이었다. 오쿠마 강당은 1882년, 오쿠마 시게노부가 세운 와세다 대학의 역사로 전쟁 속에도 버텨온 건물이라 와세다인들에게는 자부심이며, 기념비 같은 공간이라고 한다. 그리고 수많은 일본의 정치인, 문학가, 경제인이 이곳을 거쳐 갔으며 지금도 입학식, 졸업식, 기념식 같은 중요한 행사가 모두 이곳에서 열린다고 한다.

오쿠마 강당을 뒤로하고 캠퍼스안쪽으로 들어서자, 예상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12월 연말이지만 교정 길가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며 길 위를 덮고 있었다. 건물 사이로 곧게 뻗은 가로수길은 캠퍼스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듯했다.

일본 최고 수준의 명문대학이라 해서 규모가 크고 웅장할 것이라 짐작했지만, 실제로 캠퍼스는 생각보다 아담했다. 대신 그 안에서 느껴지는 공기는 차분하고 특별했다. 큰 유리창 너머로는 학생들이 모여 앉아 토론을 하거나, 노트북을 펴고 집중하는 모습이 보였다. 단순히 공부하는 장면이었지만, 캠퍼스를 채우는 분위기는 무게감 있게 다가왔다.

우리가 가장 기대했던 곳은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와세다 국제기념도서관)이었다. 이곳은 세계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모교인 와세다대학교에 기증한 자료들로 꾸며져 2021년에 문을 연 도서관이다. 건축은 구마 켄고가 설계했는데, 실제로 가보니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따뜻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가 느껴졌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천장까지 이어진 거대한 책장과 계단이었다. 이곳은 마치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안쪽 전시 공간에는 하루키가 집필 과정에서 사용한 원고, 노트, 인터뷰 자료, 레코드판 등이 전시되어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부터 최근작까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작품 연표가 정리되어 있어 흥미로웠다.

이곳은 단순히 전시를 관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반인도 자유롭게 앉아 책을 읽거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라 더 좋았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학생들과 일반 방문객들이 조용히 책을 읽거나 음악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도서관 밖에 작은 테라스가 마련되어 있어 잠시 쉬어가기에도 좋았다.

넓은 광장에 들어서자 두꺼운 겨울 옷을 입은 학생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변 건물들은 단단한 벽돌 건축과 현대적인 디자인이 어우러져, 전통과 현대가 함께하는 와세다대학교의 모습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차분하고 묵직한 분위기 속에서 공부할 성인이 된 아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하지만 현실 중3아들은 분위기가 생각보다 너무 차분해서 자신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말을 하면서도 낯선 대학 캠퍼스를 직접 걸어보는 경험이 신기하다며 웃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돌아오는 길, 이번 방문이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일본 대학 문화를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알찬 시간이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세상이 넓고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은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며, 함께 즐겨주는 아들의 모습에도 감사했다. 또한 이 여행이 아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소중한 추억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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