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 가방
"엄마, 손 줘봐. 선물이야!"
출근 준비로 정신없는데 딸아이가 다가와서 고사리 같은 손을 내민다. 내 손바닥에 전해진 것은 레몬 사탕 한 개였다.
며칠 전 오랜만에 온 가족이 가까운 근교로 나들이를 나섰다. 독감으로 이 주간 앓아누웠다가 모처럼 바깥세상을 구경하기 위해 길을 떠난 것인데,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꼬마가 말을 걸었다.
"엄마, 사탕 챙겼어?"
"아니."
"내가 여러 개 챙겼는데 하나 줄게."
무심하게 말을 하며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레몬 사탕 한 개를 꺼내서 내게 줬다.
녀석의 이런 준비성은 누굴 닮은 걸까?
유난히 손에 뭔가를 들고 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최대한 가벼운 몸으로 생활해 왔다. 어디를 갈 때도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챙겨서 다녔었다.
다른 엄마들이 커다란 기저귀 가방에 필요한 것들을 잔뜩 담아서 다닐 때도 난 작은 에코백에 여분의 기저귀, 여행용 물티슈, 1회 분량의 분유가 담긴 젖병, 보온병만 넣어서 다녔었다. 아! 가끔 간식을 위해 쌀과자도 한 봉지 들어있었던 것 같다. 작지만 알차게 꼭 필요한 것만 넣고 다녀도 외출하는 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내 가방은 한껏 더 가벼워졌다. 더 이상 챙길 것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차 안에서 음식을 먹던 꼬마가 옷에 떨어뜨린 것이다. 차 안에는 항상 물티슈가 있었는데 그날따라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어떡하지? 물티슈가 없는데..."
"엄마! 나한테 있어. 잠깐만 기다려봐."
꼬마는 가방 속에서 꼼지락 거리면서 물티슈를 찾았다. 대체 저 작은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했다. 마치 무엇이든 말하면 다 꺼내서 줄 것만 같았다.
녀석의 만능 요술가방은 어느 무더웠던 여름날에 더욱더 빛을 발했다. 둘레길을 산책하자며 가벼운 차림으로 동네에 있는 산을 찾았었다.
"아차! 모기기피제를 챙긴다는 걸 깜박했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딸아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엄마! 내가 챙겼어. 여기 있어~~!"
대체 너의 가방 속엔 뭐가 들어있는 거니? 아니 그보다 이런 걸 챙겨야 한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언제부턴가 집에 물건이 없어지면 딸아이를 찾았다. 평소 눈썰미가 좋은 녀석은 집안 곳곳에 물건들이 어디에 있는지 잘 봐두었다.
"꼬마야~~ 마데카솔 어디 있지?"
"아이참.. 여기 있잖아!"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딸아이가 챙겨주는 것이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해맑게 사탕을 내 손에 쥐어 준 딸아이는 소리 내어 웃으며 거실바닥 위를 빙글빙글 돌며 멀어져 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사탕을 꺼내서 입에 넣었다. 상큼한 레몬향이 입안 가득 맴돌았다.
문득 녀석의 티 없이 맑은 미소를 오래도록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의 웃는 표정과 웃음소리를 잊어버리지 않게, 지금 이 순간을 평생 동안 고이고이 잘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