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마실이라도 가듯 남편에게 말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점점 지쳐가다 못해 병들어 가고 있었다. 결혼과 육아는 내가 선택한 길이었지만 축복의 길이 지옥의 길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집안 일과 육아는 끝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잠시도 쉴 틈 없이 하루가 같은 패턴으로 돌아갔다. 브레이크 없이 계속해서 달리는 열차에 탄 기분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은 채 흘러가는 일상에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젊고 열정이 넘쳤던 나'는 사라졌다.
무기력한 몸으로 매일을 버텨내고 있었다. 자유롭던 영혼이 창살 없는 감옥에 꼼짝없이 갇힌 기분이다.
2살 배기 아들은 오늘도 목청껏 울기 시작했다. 밤새 울음이 멎지 않아 어디가 아픈가 싶어 응급실에 데려간 적도 있었다. 대낮부터 저렇게 울면 기본 두 시간을 훌쩍 넘긴다. 시간 맞춰 갈아주는 기저귀는 뽀송한데.. 배고픈 것도 아니고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고.. 대체 왜 우는지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그런 아들을 안고 펑펑 울었다. 초보엄마의 답답함이 눈물로 쏟아져 나왔다. 실컷 울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하지만 현실은 바뀌지는 않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일상을 반복해서 살아내야 한다.
이제 겨우 서른.
인생을 포기하기엔 내 나이가 너무 예쁘다.
젊음의 싱그러움을 다시 꽃 피우고 싶었다. 잊고 살았던 나 자신을 되찾고 싶었다. 예쁘게 화장도 하고 손톱에 매니큐어도 칠하고 화려한 옷도 입고 싶다. 하지만 24시간 어린 아들을 돌보는 아줌마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비행은 언제나 설렘
도망가고 싶다.
머릿속에는 온통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젊고 혈기 왕성한 남편은 회식이 잦았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안의 자유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새벽까지 강행되는 독박육아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지친 영혼은 핏기 없는 육신을 이끌고 컴퓨터 앞에 앉혔다. 분노의 광클릭을 한참을 하다가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최저가 비행기표가 뚝딱 예매되었다.
여행에 진심이었고 업으로 삼았던 나에게 이 정도 일쯤은 눈 깜짝할 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누구보다 자유롭던 젊은 시절의 나를 잘 아는 남편은 세상 착한 얼굴로 흔쾌히 다녀오라고 해줬다.
고마워~~!! 숨 쉴 수 있게 해 줘서..
그래! 떠나는 거야!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덩이들을 벗어던지고 훨훨 날아가는 거야. 안될게 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