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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Jun 28. 2024

아줌마 혼자 떠나는 첫 여행

ICN-HKG-LHR-ABZ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홍콩국제공항'이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억나지 않는다. 무언가에 쫓기듯 정신없이 탑승한 비행기는 나를 이곳에 내려주었다. 최저가 항공을 찾다 보니 경유지를 거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고 보니 혼자서 여행하는 것은 처음이다. 겁도 없이 3시간 만에 낯선 땅을 밟고 있는 기분은 묘했다. 아들과 오랜 시간 처음으로 떨어져 있는 중이다. 지금쯤 고 있으려나..? 니야, 벌써부터 생각하지 말자. 보름달 같은 아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을 애써 부인하고 공항 안을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참, 인연이 깊은 곳이다.


인도로 여행 갈 때 경유했던 곳이기도 하다. 뉴델리에 짙은 안개로 항공편이 지연되어 뜻하지 않게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었다. 긴급 바우처로 저녁을 해결하고 게이트 한쪽 구석에 앉아서 불안함과 설레는 마음을 다 잡으며 함께 간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났다.


잊고 있던 옛 생각을 하면서 걷던 중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났다. 맞다. 저녁시간이구나! 한 끼 해결하고 가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지나쳤을 텐데 굶주린 자의 본능은 나를 식당 안으로 등 떠밀었다. 큰 용기를 내서 볶음밥 하나를 주문하고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고 앉은자리가 어색했다. 갈 곳 잃은 나의 시선은 혼자 앉아서 밥 먹는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괜찮아.. 여기서는 혼자 밥 먹는 것이 당연하잖아?' 긴장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다.


조금 있자니 기가 좌르르 맛있게 볶아진 'Fried scallop & Egg white fried rice'가 나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 술을 떴다. 음~ 계란향이 풍기는 볶음밥 생각보다 맛있었다. 지금 내 기분은 쾌감, 그 자체의 자유다. 홀로 밥 먹는 것에 대한 긴장감이 서서히 녹아들고 있었다.


나의 첫 혼밥이다!


좋아, 잘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하면 되는 거야! 앞으로 여행하면서 밥도 당연히 혼자 먹어야 하니까.. 미리 연습했다고 생각하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혼자 밥을 먹는 그 처음은 성공적이었다.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다행히 창가 쪽 자리로 배정받았다. 홍콩까지 올 때는 일행으로 보이는 현지인들 사이에 끼여 앉아서 어수선한 분위기로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 좀 편히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무심코 창밖을 내다본 하늘엔 구름이 하얀 양탄자처럼 깔려 있었다. 그 사이에 동그란 무언가가 떠있었다.



"응? 저게 뭐지?"


한참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동그란 것의 정체가 '무지개'란 것을 알게 되었다. 흔히 아는 무지개는 분명 빨, 주, 노, 초, 파, 남, 보가 켜켜이 쌓여있는 반원 형태의 모습을 띄고 있다. 운이 좋아야 정확한 반원의 모습을 보는 것지 대부분 건물에 가려지거나 끝이 공기 중으로 사라져서 그나마도 짧게 뻗은 모습뿐이다. 


그런 무지개는 원래 동그란 모양을 하고 있구나..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설렘지수가 올라갔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존재이다. 동그란 무지개는 나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했고, 이런저런 생각에 점점 심오하게 빠져들자, 과부하가 걸린 뇌는 급기야 스위치를 꺼버렸다.



수다스러운 입국심사



음~~ 바로 이 공기야!


오랜만에 느껴보는 '히드로공항'의 공기.. 특별할 거 없는 평범한 공기지만 사연 많은 나에게는 달랐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있지만 런던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나의 첫 여행지는 바로 스코틀랜드!


최저가 항공을 타고 온 가로 두 번이나 경유를 해야 한다. 열심히 이정표를 따라서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작은 부스에 앉아 있는 직원이 보였다. 스코틀랜드로 가는 보딩패스를 어디서 받는지 물어보기 위해서 다가갔다. 마침 나를 발견한 직원이 바로 오라고 손짓했다.


의 사인이 통했구나! 단순히 인포메이션이라고 생각한 나는 한 치의 의심 없이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아버딘으로 가는 거죠? 영국엔 무슨 일로 왔나요?"


오랜만에 듣는 영국식 악센트가 귀에 명확하게 들려왔다. 비행기표를 보여주며 '를 위한 홀리데이'라고 신나서 대답했다. 집 떠나 온지  하루 만에 하는 대화였다. 이어지는 질문에.. 집에서 애를 키우는 아줌마이고 집안일과 육아에 지쳐서 잠시 쉬러 왔다고.. 나도 모르게 신세한탄 아닌 한탄을 했다.


영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여권에 입국 도장을 시원스럽게 찍어 준 직원은 보딩패스를 건네며 밝게 인사했다.


'아~~~ 이것이 입국 심사였구나..!'


정신을 차린 나는 그제야 출입국 관리소에 서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그레이션이 너무 생뚱맞은 장소, 그러니까 에스컬레이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바로 그 밑에 있었다.


단순히 궁금한 걸 물으러 갔을 뿐이었는데 얼떨결에 입국심사까지 마친 셈이다. 지금까지 거쳐왔던 경험 중 가장 편안했고 생각 없이 했던 인터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에 처음 왔을 땐 비자 문제 있는 경우가 많았어서 자칫하면 영국땅을 밟지 못하고 되돌아야 하는 일도 가끔씩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깐깐하고 어렵고 복잡한 절차였다. 물론 여행자의 신분은 다르겠지만..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나도 모르게 벗어던진  '내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게이트로 향했다. 긴 여정을 위한 마지막 행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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