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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찔찔이 Nov 27. 2023

2. 그쪽도 김 박사 님을 아세요?

대머리 아저씨와의 소개팅에서 냉동난자까지, 나의 모태솔로 탈출 분투기

 자만추.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자고 만남 추구. 여러 의미가 있다지만 나에게는 그게 뭐든 ‘자연스러운 만두 추가’ 말고는 영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소개팅해주겠다는 사람들도 사라져 갔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주변 친구들에게 어렵게 부탁을 해도 이제는 정말 소개해 줄 사람이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김 박사에게 문자가 왔다. ‘소개팅할래?’     


 그 하나의 문자로, 말로만 분투 중이었지 실제로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미한 노력들만 하던 나의 인생은 뒤흔들려버렸다. 김 박사는 누구인가? 아내와 딸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다정한 아버지이자 팔척장신에 기골이 장대하고 많은 머리숱을 자랑하며 예수님과 같은 단발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외모를 가진 그는 박사학위가 있지만 딱히 연구나 강의를 하진 않고 그저 동네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술을 좋아해 매일 누군가와 어울려 술을 마시는 사람이다. 그와 자주 술 먹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나였고 그 자리가 즐거웠기에 그의 지인이라면 왠지 나와 비슷한 사람이 나올 것 같아 설레는 마음으로 알겠다고 답을 했다.

  

 실로 오랜만의 소개팅이다. 몇 년 전 소개팅이라고 하기에도 머쓱한 그런 자리가 하나 있었다. 주선자가 동석을 하여 무려 두 번이나 만났지만, 당시에 영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는 전화번호도 교환하지 못한 채 멀어졌다. 훗날 주선자인 친구의 결혼식에서 그를 보았지만 머쓱해서 눈을 피하고 그 대신 식장에서 홍진영의 <엄지척>을 축가로 신나게 불러댔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남자랑 단 둘이서는 마주 보고 말도 잘 못하면서 친구의 일가친척과 직장 동료들 앞에서 흥에 취해 뽕-짝을 부르며 백년해로를 기원하는 사람. 이후 그 친구 말고도 나를 짠히 여기는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었지만 만남까지 성사되지 못한 몇 번의 소개팅 시도가 있었다.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나는 입으로만 분투하는 아가리파이터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절박해졌다.

 

    

 김 박사는 내게 ‘20년 전 방식으로 할래?’라고 물었다. 나보다 열 살이 많아 어느덧 사십 대 중반인 그는 자신의 20대 시절 소개팅 방식을 권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상대가 원한 방식이었다. 그도 40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년 전 방식이란 무엇인가? 주선자의 동석은 기본에 주위 사람들이 소개팅이 이루어지는 자리에 찾아가 껌을 판다던가 뒤에서 신문을 보는 척 구경을 하면서 도움 아닌 도움을 주는 방식이라 했다. 아니 요즘 누가 껌을 팔고 다니는가...... 지난 소개팅비스무리의 경험이 있던 나로서는 그러면 될 일도 안 될 것 같아 요즘 식으로 하겠다고 했다. 동시에 소개팅을 상상했다. 분좋카(분위기 좋은 카페)의 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온다. ‘그쪽도 김박사 님을 아세요?’ 어색함을 풀겠다며 개다리춤까지 추는 오바 쌈바는 하지 말아야지 결심했다.     


 그렇게 내 번호가 넘어갔다. 나도 그의 번호를 받았다. 우선 나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점검하고 그의 번호를 저장했다. 바로 후회했다. 나는 내 얼굴을 대뜸 까버렸는데, 그의 프로필 사진을 열어보니 눈 속에 빼꼼 얼굴을 내민 족제비가 있었다. 하, 족제비? 상대가 만만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그럴수록 도전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보름 동안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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