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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렐레 Jul 29. 2024

27시간 눈물의 공항 체류기

어느 X세대의 여행산문집 사서고생기(2016, 아르헨티나)

어제 공원에서 새똥 맞았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아! 그전에 숙소에서 자전거 빌리려고 했는데 다리가 안 닿아서 실패한 것부터가 시작이었나?



2016년 4월 13일 수요일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엘칼라파테로 넘어가는 비행기를 타는 날이었다.

공항버스를 타는 터미널이 있는 곳까지 일단 시내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해야 했는데 숙소에서 조식을 먹고 8시쯤 집을 나서니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다시 들어와 캐리어에 커버를 씌우고 우비까지 입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버스를 탔다. 



30분이면 도착해야 하는데 출근시간과 억수로 내리는 빗줄기 거기다 시위대 행진까지 도로가 꽉 막혀 있었다. 그래도 여유롭게 나왔으니 괜찮겠지... 싶었는데 1시간 정도 지나서 버스기사가 더 이상 못 간다고 그냥 다 내리라고 해서 강제하차(?) 당했다. 일단 내리긴 했는데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그 당시 난 로밍을 안 해서 숙소 와이파이만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구글지도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버스 안에서 바라본 시위대



영어도 잘 안 통하는 이곳에서 핸드폰으로 캡처해 놓은 공항버스정류 이름과 사진을 보여주며 아에로푸에르토(공항)를 외쳐댔다. 15분 정도 걸어서 가야 한다고는 하는데 도대체 어디로 얼마나 걸어야 할지를 모르겠다. 가리키는 방향으로 무작정 직진하다 또 물어보고 또 그 방향대로 직진하다 물어보고를 반복했다.



설상가상으로 캐리어 바퀴 하나가 고장 나서 무거운 캐리어를 빗속에서 들다시피 하면서 뛰어다녔다. 비행기 시간이 임박해 오니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구나... 

그러다 구세주 다니엘을 만났다. 마찬가지로 버스정류장 이름을 보여주기 위해 핸드폰을 들이미니 다니엘은 핸드폰 들고 있으면 사람들이 훔쳐간다고 주머니에 집어넣으라고 계속 말했다. 

난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다니엘은 공항버스 터미널까지 직접 안내해 주었지만 이미 내가 타야 할 버스는 떠난 후였다. 고마운 마음에 줄 건 없고 내가 남미에서 꽂혀서 항상 들고 다니는 과자가 있길래 그걸 선물로 주면서 연거푸 그라찌에(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헤어지면서도 핸드폰 집어넣으라고 잔소리(?)를 하면서 갔다. 



12시 5분 비행기인데 12시에 공항에 도착했다. 언제부터인가 비는 그쳐있었다. 구름 낀 하늘로 솟아오르는 비행기를 보며 저게 내 비행기려나...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공항에서 환불도 안된다고 해서 결국 25만 원 주고 다음날 새벽비행기를 예약했다. 

갑자기 생겨버린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의 반나절. 

숙소도 없고 새벽비행기라 하루종일 공항에 있기도 아깝고 숙소를 구하는 것도 아깝고...



얼마 전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된 이곳에서 유학 중인 친구 J에게 연락해서 그의 추천 맛집인 Las cabras에 가기로 했다. 저녁약속이어서 가게가 있는 팔레르모 근처 시간 때울 곳을 찾다가 동물원이나 갈까 하고 그곳으로 향했다. 고장 난 캐리어를 끌고.

어제도 이 동네를 지나갔었다. 굳이 이 돈 내고 동물을 보나.. 싶어서 안 갔었는데 오늘 가려고 그랬던 건가.

아주 돈지랄의 날이다. 

(동물원 이름 알아보려고 검색해 봤는데 지금은 무료입장이라고 한다. 8년 지났는데도 억울하네 ㅋㅋ)



그냥 동물이 돌아다니는 팔레르모 동물원



동물원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짐 맡길 곳이 있어서 편하게 구경할 수 있었고 사람은 거의 없고 거위, 공작새 등이 울타리 없이 돌아다니는 게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길에 똥들이 널려 있어서 피해 다니느라 좀 힘들긴 했지만 산책을 하면서 '이런 게 여행이지.. 내일 출발할 비행기가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 하는 긍정회로를 돌렸다.



저녁에 만난 J는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하루 정도 같이 여행한 사이라 오래 보지는 않았지만 참 바르고 괜찮은 청년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꿈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고 얘기해 주고 싶었는데 뭔가 오그라들어서 말을 삼키고 배 터지게 먹기만 하다가 공항으로 다시 돌아왔다.



공항 한 구석에서 노트북을 꺼내 일기를 쓰다가 새벽 2시에 보딩패스를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5시 비행기였는데 안개가 심했다. 바로 앞 비행기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설마.. 괜찮아지겠지. 괜찮아지겠지.'

창밖만 바라보며 주문을 외웠지만, 계속 출발시간 지연되었다는 표시등만 깜빡이고 있었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언젠간 가겠지 싶었는데 오전 8시가 되었는데 비행기가 그냥 취소가 돼버렸다.



에? 누구 맘대로? 다들 이 안에 있는데?



숫자가 적힌 종이하나 주면서 여기로 전화해서 바꾸란다. 헐랭

나 스페인어는커녕 영어도 못하는데?

오늘 못 가면 W트레킹에 일정을 맞춰야 해서 엘칼라파테 건너뛰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항의했지만 뭐... 어쩔 수 없이 일단 종이를 받아 들고 다시 수화물을 받아서 나왔다. 

어제까진 그럴 수 있다 쳤는데 연속으로 비행기 이슈가 터지니 타격감이 씨게 왔다.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에 남자 친구에게 영상통화를 걸어서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굳이 영상통화로. 나 힘들다고 봐달란 건가. 지금 생각하면 좀 부끄럽다. 



전화를 끊고 일단 어제 만난 J에게(내가 아는 유일한 스페인어 가능자) 아까 받은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어떻게 하면 될지 물어봐 달라고 부탁하고 수화물 기다리면서 만난 같은 처지의 한국인과 항공사 사무실을 찾기 위해 공항을 헤매었다. 사무실 앞에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고 다른 방법이 없던 우리도 맨 뒤에 섰다. 그리고 결국 당일 3시에 출발하는 비행기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이 비행기는 진짜 출발할 수 있는 건가? 

그래도 뭔가 해결이 되니 그제야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 문제를 해결한 동지와 함께 아점을 먹고 다시 수화물을 부치고 다시 보딩패스를 받아서 들어갔다.





이렇게 3시 비행기를 타고 저녁에 엘칼라파테에 도착했는데 비행기가 착륙하자 승객들이 갑자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무사히 왔다는 기쁨, 같이 탄 모두가 고생했다는 위로의 박수겠지?

다르게 생기고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과 같은 편이 된 것 같아서 왠지 좀 기분이 좋았다. 





전날 12시에 공항에 와서 다음날 오후 3시비행기를 탄 눈물없인 들을 수 없는 공항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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