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X세대의 여행산문집 사서고생기(2016, 칠레)
바야흐로 때는 4일전, 칠레 W트레킹을 가는 날 아침.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에 낼 입장료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뿔. 사.
전날 3박 4일 트레킹을 하면서 먹을 음식을 구매하고 캠핑 도구들을 빌리느라 가진돈을 탕진해 버린 것이다.환전소에 가긴 했는데 문을 안열었길래
'산에가면 돈 쓸일도 없으니 괜찮겠지.'
하고 별 생각 없이 돌아왔는데 출발하기 직전에 입장료가 생각났다.
급한 마음에 숙소직원에게 50달러를 보증금으로 쥐어주며 3박 4일간의 W트레킹 후에 다시 이 숙소로 돌아오니까 그때 갚기로 하고 20,000페소(28,000원 정도)를 빌렸다.
그리고 오늘 W트레킹을 마치고 다시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돌아왔는데,
숙소에 도착하니 내가 돈을 꾼 직원은 일주일 있다가 출근한다고 한다.
What?
아.. 22,000원 뜯겼네..
어쨌는 내일이면 이 도시를 떠나 푼타 아레나스로 간다.
딱히 할 일도 없고 버스터미널 위치나 알아둘 겸 버스터미널로 산책을 나갔다.
난 아주 심각한 길치다.
공간감각에대한 능력치가 아예 제로라고 해야할까?
공간감각과 눈썰미는 한 세트 인건지 눈썰미도 없어서 친구한테
"머리했어?"
라고 물으면
"3개월도 더됐어."
라는 말을 듣기 일쑤이다.
하도그러니까 이젠 섭섭해 하기는 커녕 오히려 맞추면 신기해 하고
그냥 본인을 알아봐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한다.(물론 자랑은.. 아니다.)
이렇게 공간감각도 없고 눈썰미도 없어서 그 건물이 그 건물 같은 나에게 지도어플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템이다.
그런 주제에 돈아깝다고 로밍도 안하고 용감하게 혼자 남미여행을 간 것이다.(2016년임)
숙소 와이파이로 다음 날 어디갈지 검색해서 필요한 지도만 캡쳐하면 될 줄 알았다.
메타인지가 매우 부족했던 셈이다.
나의 길치력을 어떻게로 보고...
다시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돌아와서 버스터미널은 숙소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걸리는 멀지 않은 곳이었다.
사실 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도 이 버스터미널을 통해서 들어왔고
W트레킹을 갈때도 돌아왔을때도 모두 이곳을 이용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산책 겸 확인겸 답사를 다녀온 것인데 푼타 아레나스로 가는 날 아침.
길을 잃었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이른시각이라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버스시간은 다가오고 마음은 급하고 캐리어 바퀴는 고장난 상태여서 마음은 바쁜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어쩔줄 몰라하는 게 온몸으로 드러났는지 차를 타고 지나가시던 분이 멈춰서서 물었다.
“어디가니?”
“버스터미널 가요.”
“이거타.”
그러더니 친히 내려서 트렁크에 내 캐리어도 실어 주시고 터미널 앞까지 데려다 주셨다.
우와.. 이렇게 친절하실 수가.. ㅠㅠ
내가 예매한 차는 9시. 현재 시각 8시 55분.
감사한 마음에 드릴 건 없고 남미가서 완전 꽂혀서 매일 한개씩 먹고 있던 초코칩 쿠키를 선물로 드렸다.(남미 여행 내내 가방에 레이 감자칩과 초코칩쿠키는 항시 대기중이었다.)
오늘도 부산스럽고 땀 삐질나는 하루의 시작이 친절한 아저씨 덕분에 잘 마무리 되었다!
라고 해피앤딩이었으면 좋았겠지만 터미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버스가 안온다.
연착될 수도 있지뭐.. 하면서 기다리다가 결국 9시 10분쯤 매표소에 가서 물으니 이미 9시 버스는 떠났고 지금 시간이 10시란다.
응? 내 시계는 이제 9시 10분인데?
아직까지도 이 미스테리는 해결되지 않았다.
어차피 늦은 걸 아침부터 길찾느라 피말린걸 생각하면.. 으~~
그래도 길 가다가도 아니고 차타고 가다가 관심갖고 도와주시는 멋진분을 만났다.
난 칠레 사람들이 좋다.
아! 내돈 22,000원 가져간 직원 빼고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