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X세대의 여행산문집 사서고생기(2016, 칠레)
'파타고니아' 하면 가장 먼저 뭐가 떠오르는가?
대부분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인 '파타고니아'를 떠올리지만 나에겐 W트레킹이다.
(사실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도 여행 정보 찾아보다가 알았다. 친환경적인 좋은 기업이더만.)
파타고니아는 칠레와 아르헨티나 남부 지역을 의미하며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에서 3박4일 코스인 W트레킹과 7박8일 코스인 O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둘레길은 좋아해도 산은 왜 가는지 도통 이해 하지 못하는 나였지만 이왕 거기까지 간거 3박 4일 코스인 W트래킹을 계획했다.
보통은 국립공원 안에 있는 호텔들이 비싸서 캠핑장을 이용하지만 내가 간 시기는 겨울이고 캠핑이란 걸 해본 적 없는 나는 한국에서 호텔을 예약하고 갔다. 말이 호텔이지 게스트하우스다.
토레스 델 파이네를 가기 전날, 베이스캠프 격인 푸에르토나탈레스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삽질을 시작했다.
삽질1(라이터 이슈)
푸에르토나탈레스 숙소에 짐을 맡긴 후 곧바로 길을 나섰다. 바쁘다 바뻐.
토레스 델 파이네로 향하는 버스표를 예매하고 3박4일동안 먹을 장도 보고 버너도 빌리고 환전도 해야 했다.
하루종일 싸돌아다니다 숙소에 도착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비흡연자이니 버너를 켤 라이터가 없는게 아닌가? 아.. 귀찮다. 그래도 2박3일간 깡생수만 마실수 없으니 다시 길을 나섰다.
라이터는 도대체 어디서 팔지? 편의점도 없고 마트에도 라이터가 없다고 하고 혹시 길거리 좌판에서 파는건가 시내를 삥삥돌다 결국 버너 구매한 곳으로 가서 사정얘기를 했더니 주인장 왈,
"버너 주머니 안에 라이터가 같이 들어있단다."
허 허 허
삽질2(스파게티 이슈)
왜 버너를 열어볼 생각을 못했을까. 허탈한 마음에 숙소로 돌아와 저녁으로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그때 당시 내 나이 36살이었지만 라면 물도 잘 못맞추는 요알못이라 내인생 첫 스파게티였다.
면 끓이고 소스 섞어먹으면 될거 같아서 식비도 아낄겸 낮에 장볼 때 샀다. 그렇게 공용주방에서 스파게티 면을 삶고있는데 숙박객 중 한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스파게티 처음만들어 보는거야?"
"응"
음.. 면만 삶았는데도 티가나나? 심각하군. ㅋㅋ
그러더니 본인이 해주겠다고하면서 그 많은 면을 다 넣어버렸다.
에? 너야말로 처음만들어 보는거 아니냐? 1인분에 500원짜리 동잔크기만큼 넣는건 안해본 나도 아는데!!
아껴먹으면 일주일은 때울 수 있었는데.. 아까워라.
선의를 베풀어 준 분에게 이렇게 말 할수는 없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결국 남은 것은 요리해주신 분이 먹기로 했다.
이쯤되면 의도한게 아닌가하는 합리적의심이..
삽질3(민폐 이슈)
아침 7시반 차를 타고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을 가야한다.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자는 숙소 주인을 깨워 짐을 맡겼다.
그리고 버스터미널로 가던 중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다.
앗! 여권까지 맡겨버렸네.
호텔 들어갈때 여권 확인 할 수도 있을텐데...
너무 죄송했지만 다시 자러 들어간 주인을 또 다시 불러내 가방을 뒤졌다.
그런데 여권이 없었다.
헉. 버너 빌릴때 보증금 대신 냈구나.
버스 출발 30분 전. 미친듯이 뛰어 버너 빌린 곳으로 갔지만 역시나 문이 잠겨 있었다.
급한 마음에 문을 두드리고 벨을 누르자 눈을 비비며 주인이 나왔다.
역대급 민폐다.
사정 설명을 하고 여권을 받고 대신 보증금으로 100달러를 냈다.
그리고 다시 버스터미널로 뛰었다.
겨울인데 땀이났다.
삽질4(맥주 이슈)
3박4일간 캠핑용품에 음식까지 이고 지고 산에 오르려면 짐을 최소화 해야한다.
나의 경우 식재료를 들고다니기 힘들어서라기 보단 어차피 할 줄 아는 요리가 없기 때문에 아침은 누룽지에 물 넣어 끓여 먹고 점심은 걷다가 배고프면 빵 뜯어먹고 저녁은 전투식량에 끓인 물 부어 먹기로 했다. 요리도 간편하고 짐도 가볍고. 혹시 나 천재?
그렇게 짐 줄인다고 서울에서 부터 누룽지와 전투식량 챙겨와 놓고 전날 짐을 싸면서 맥주 6캔을 가방에 넣었다. 6캔의 산출근거는 하루 2캔씩 3일 밤.
그 당시 여행기간동안(50일) 매일밤 맥주를 마셨기에 포기할수 없었다.
더구나 산속에서 마시는 맥주라니. 캬~~
어찌 거부할수 있을까?
물론 무게때문에 아주 잠깐 고민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한 일이었다. 혼자 걸을 줄 알았던 트레킹은 코스가 다들 동일하다보니 자연스레 한국사람 동행이 만들어졌고 그건 나에게 정말 다행스런 일이었다. 내 성격에 함께 다니자는 말도 못했을거고 아마 마지막날 가야하는 삼봉은 혼자라면 절대 절대 못갔을 테니. 새벽3시 출발이라 길이 어두워서 표지판도 안보이고 뭔 깡인지 로밍도 안해가서 지도도 볼 수 없는데다가 눈보라까지 쳐서 시야가 흐렸다. 분명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왔을텐데 일행들 덕분에 삼봉에 오를 수 있었다.
이 분들과의 저녁식사에서 내가 보답할수 있는 건 맥주 뿐이었다.(먹을것도 다 변변치 않아서 ^^;;) 그곳에서 파는 맥주는 엄청 비쌌기 때문에 맥주 한 모금에도 어떻게 이걸 들고올 생각을 했냐고 신기해 하면서 다들 좋아해줬다. 더 들고 올 껄 그랬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