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를 안타까워 한거였을까

1호선 민다팽이 이야기

일년 뒤, 김대리가 퇴사를 선언했다. 김대리의 퇴사 사유에 대해서 회사 사람들은 '결국 아이 때문에 퇴사한다' 라는 이야기를 입방아에 올렸다.

퇴사 하던날, 김대리가 이대리에게 차 한잔 하자며 이야기를 건넸다.

김대리는 어린이집에서 아이에게 틱장애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틱장애가 너무 심하다고 어린이집을 쉴 것을 권유했다고 했다.

그래서 퇴사한다는 김대리는 이렇게 아등바등 하다 아이가 아프게 되니 허탈해진다며, 그 때 참 미안했다고,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알고보니 워킹맘이었던 김대리 역시 워킹맘의 자녀였다고 했다. 그 당시 워킹맘 자체가 드물었기 때문에, 엄마 보다는 도우미 이모들이랑 보낸 시간이 더 길었고, 본인이 그런 경험을 해서 아이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본인손으로 키우고 싶었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이대리는 김대리가 더 짠하게 느껴졌다. 퇴사후에 편하게 만나보자며 인사하는 자리에서, 이대리는 생각이 많아졌다.

몇 달 뒤, 김대리가 이대리에게 '심심한데 시간 있냐'며 연락이 왔다. 밥 한번 사고싶다는 김대리의 말에, 이대리는 오랜만에 김대리와 아이를 떠올리며 약속을 잡았다. 청담동에 있는 무슨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오라고 한다. 자기가 대접할 거니까 부담 가지지 마라는 말과 함께.

고급 레스토랑에서 만난 김대리는 전보다 훨씬 더 여유있고, 행복해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회사에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반짝이는 액세서리들을 많이 차고 있었다.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김대리는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나 대치동으로 이사했어' 라며, 강남맘이 되었다며 웃었다.

김대리가 퇴사했다는 말에 친정에서는 대치동 주상복합 아파트를 증여하고 김대리가 '기죽지 않게' 도와주었다고 했다. 알고보니, 김대리의 친정은 업계에서 유명한 사업가 집안이었다.

김대리의 친정 부모는 사업으로 너무 바빠서 그간 손주를 봐줄 여력이 없었다며, 지금이라도 지원하겠다며 손주 이름으로 아파트를 증여해주고 김대리에게 마음껏 쓰라며 '엄마 카드'를 지급했다고 했다.

문득 돌이켜보니 김대리가 엄마보다 도우미 이모’들’과 보낸 시간이 더 길었지만 맛있는 요리를 해주셔서 좋았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대리 학창시절 부모님이 맞벌이를 했다는 친구들을 생각해보면, 잠깐씩 청소나 설거지 정도를 해주는 이모님 한 분이 있었다는 경우는 종종 들어봤던 것 같다.

그런데 이모’들’이라니…김대리 집에는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등 분야별 요리사분들이 상주라도 했던 게 아닌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쳐봤다.

이대리는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김대리에게 안쓰러움을 느꼈던 스스로가 좀 초라하게 보였다. 누가 누구를 걱정했던건지…인생은 참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남맘께서는 발렛 파킹을 맡긴 하얀색 고급 외제차를 타고서는 유유히 청담동을 떠났다. 김대리는 이대리를 지하철역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지만 그냥 혼자 가고 싶어서 거절하고서는 터덜터덜 언덕길을 걸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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