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옥중수상록, 새로운 백년의 문턱에 서서》을 읽고 5
■ 자녀교육과 학력주의 - 스킨십(skinship)을 타고 희망의 대학으로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의 일이다. 몸살을 앓았던 그녀를 모처럼 만나 단골 양꼬치 가게에 갔다. 뭉근한 화로에서 갈빗살이 노을처럼 익어갔고 꼬치를 하나씩 뒤집으며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옆쪽을 보라는 눈짓을 보냈다.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주인아주머니와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딸이 문턱에 걸터앉아 있었다. 딸은 엄마에게 부둥켜 안겨 볼을 부비고 뺨과 입술에 뽀뽀 세례를 했다.
“우리 집은 스킨십이 많이 없는 편이라 저런 모습을 보면 막 오그라들어. 언제더라, 엄마가 1남 3녀를 기르면서 다른 집 아이들처럼 딸을 보듬고 듬뿍 안아주며 키우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고 말했었어. 오빠 집은 어땠어?”
“글쎄, 비슷했는데. 그래도 난 엄마한텐 스킨십을 곧잘 하는 편이었어.”
“난 담에 아이 낳으면 스킨십을 많이 하면서 키워보고 싶어. 우리 집은 딸, 딸, 딸, ‘아들’의 1녀 3남 정말 치열했거든”
나는 어릴 때 엄마의 팔을 베개처럼 좋아했다. 엄마의 어깨와 팔꿈치 사이를 흐르는 보드라운 살결을 손등으로 부비면서 잠을 자는 것을 좋아했다. 여동생은 “저건 분명 애정결핍이야.” 놀려댔지만 난 몸에 열이 많아서 적당히 차가운 그 부분이 좋은 거라고 우겼다.결혼 후 우리는 딸과 아들을 낳았고 아내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거듭하다가 둘째를 가지게 되면서 퇴사했다. 하루하루 보름달처럼 차오르며 무거워지는 배와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첫째를 돌보느라 씨름하는 아내에게 늘 미안했다.
요즘 육아에 있어 가장 힘이 드는 일은 아이들을 재우는 일이다. 첫째가 내 당번인데 고민하다가 최근에 시도한 방식이 있다. 이른바 ‘침대놀이’. 패러글라이딩을 하듯 내가 바닥에 눕고 아이가 등을 대고 내 위에 몸을 포갠다. 물침대가 된 내 몸 위에서 아이는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배를 살살 문질러주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가 맨바닥이나 침대보다 체온이 느껴지는 살결을 좋아하는 것 같았고 이전보다 빨리 잠들었다. 다만 알고 있는 동화나 우화를 총동원해도 이야깃거리가 부족해 걱정이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고민이 늘어간다.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최대한 학업 부담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전공이나 직업과 관련 없는 책을 던져버리지 말고 아는 것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현실 세계에 나오면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은 비전형적인 상황이 많다. 그런 어려움을 맞닥뜨렸을 때 스스로 방안을 찾아나갈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 궁극적인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능력주의의 타락을 회복하자면 앞서 말한 것처럼 외부적 충격이 필요합니다. 혁명이나 전쟁과 같은 거대한 움직임도 그런 충격 가운데 하나일 것이고, 비교적 간단해 보이는 개혁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과거 군사정부가 시행했던 과외 금지나 고교 평준화가 그렇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차별을 금지하거나 비정규직의 경우 오히려 정규직보다 더 많은 임금을 주도록 제도화 할 수도 있겠지요. 원하청 사이의 불공정 거래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연한 학벌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대학을 평준화하는 것은 어떨까요? 언뜻 생각하면 지나친 공상처럼 보이지만 프랑스나 독일처럼 이미 그렇게 되어 있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하고 상상하고 행동하는 것이지요. (옥중수상록, 175-176쪽)
능력주의의 사촌인 학벌(학력)주의는 대학입시제도의 문제로 수렴된다. 저자가 말하는 ‘대학 평준화’는 충분히 실현가능한 방안이다. 우리나라는 고교입시과열과 대학 서열화를 막기 위해 3불 정책(고교평준화, 본고사폐지, 기여입학금지)을 도입하여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강남에 위치한 일부 명문 고등학교를 향한 불길은 과학고, 외국어고, 자립형사립고로 번졌고 여전히 명문대학 졸업장은 취업 시장에서 힘이 세다. 따라서 보다 파격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우선 국공립대학만이라도 추첨에 의한 학생선발을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내신이나 수학능력시험의 몇 과목(영역) 일정 등급이상의 성적을 지원 자격으로 정하고, 응시조건을 충족한 수험생 중에 추첨으로 학생을 뽑는 것이다. 스무 살도 안 된 아이들을 성적으로만 줄 세우고 그들의 잠재력을 단 한 번에 판별하는 것은 가혹하고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추첨으로 선발된 학생은 대학 입학이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만 이루어 진 것이라는 오만에 빠지지 않고 일정 부분 행운이 따라준 것이라는 자각을 하게 된다. 한편 떨어진 학생도 불합격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단지 운지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대학에 재도전 할 수 있다. 이는 능력주의를 완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일정한 수학능력을 갖추는 것을 조건으로 뽑는 것이므로 기회의 평등과 더불어 교육에 있어서 실체적 정의도 구현할 수 있는 방안이다. 이렇게 되면 중고등학교에서 명문대 진학을 위한 입시과열현상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어 공교육 정상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주4)
주4) 하버드대학 교수인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공정함이라는 착각》(원제 The Tyranny Of Merit, 와이즈베리, 2020) 288-90쪽에서 능력주의 폭정의 현상과 원인을 분석하고, 학력주의 철폐를 위해 SAT 의존도를 줄이고 ‘유능력자 제비뽑기’로 신입생을 뽑자고 제안하고 있어 참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