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섭(金利燮)을 알아갈수록 이중섭(李仲燮)이 생각났다. 1915년 안동에서 태어난 이섭과 1916년 평남 평원군에서 태어난 중섭. 이섭은 서울에서 고보를, 훗카이도에서 대학을 다니고 교사로서 아이들을 잠시 가르쳤다. 중섭은 정주의 오산고보를, 도쿄에서 미술학교를 다닌 뒤 원산에서 미술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이섭이 운영하는 새우 양식장의 풍경을 묘사한 구절을 읽으며 중섭이 서귀포에서 즐겨 그린 ‘물고기, 게와 뛰노는 두 남자 아이’를 떠올렸다. 둘은 한국전쟁을 전후로 남북을 오가며 거주지를 옮겼다. 가족과 생이별하고 그들을 그리워하며 불꽃(燮)같은 삶을 살다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유령의 시간’은 이섭이 쓰기로 마음먹은 자서전의 제목이다. 딸 지형의 목소리를 빌리면 “인생의 절반을 일제 치하에서”, “나머지 30년을 해방된 조국에서”(264쪽) 산 이섭은 “이 땅 어디서도 존재하지 못했던 유령.”(283쪽)이었다. 좌익 활동으로 수감생활을 했고 한국전쟁의 발발로 첫째아내 이진(李晉)과 자식들과도 소식이 끊겨 생사를 모르고 평생을 살았다. 이북의 실상에 실망하고 남으로 왔지만 남한의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하고 장인의 인맥에 의존해 제주도 목장, 충청도 새우 양식장, 서울의 가구 영업사원으로, 전전반측하며 남쪽에서이룬 가족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그의 삶에 드리운 그리움, 무기력의 원인은 전쟁과 권위주의 시대라는 역사적 비극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사회적, 정치적 환경의 특이점은 한국전쟁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뉴욕타임즈 기고문이 생각난다. “미국에서 전쟁을 말하면 한국은 몸서리친다.” 같은 천둥소리라도 파주 주민과 뉴욕 시민이 느끼는 공포는 다르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이 있듯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 있다. 대한민국의 공기 속에는 근원적인 불안이라는 이물질이 섞여 있어 우리는 매일 그걸 마신다. 7·4남북공공성명, ‘한국적 민주주의’(236쪽), 유신, 인혁당 사건, ‘사회안전법’으로 점철된 시대에 와우아파트는 붕괴되었고 광주(성남)대단지 사람들은 생존권 보장을 외쳤다. 이섭은 신원조회에 걸려 취직할 수 없었고 중섭도 야심차게 준비한 개인전이 당국에 의해 철거되어 좌절을 느끼고 정신이상으로 죽어갔다. “세상 누구보다 뜨겁고 격렬했지만 오랫동안 차갑고 어두운 곳에 갇혀버린 새우.”(283쪽)가 된 이섭은 삶이 헛되다며 불교의 공(空)이나 허무주의적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꽃(燮)이 혀로 어둠을 핥듯 한 줄기 빛이 남아 있다. 이섭은 ‘유령의 시간’을 탈고하지 못했지만 딸 지형이 희망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수치심을 극복하게 위해 노 젓는 법을 배우고 싶어 했던 지형이 이섭의 고스트라이터가 될 것이라 믿는다. 소설은 지형이 작가가 되어 방문한 평양의 고려호텔에서 끝을 맺는다. 이진(李晉)과 이복오빠 지형이 생존해 숙소 근처 아파트에 산다는 사실을 알고 전달여부가 불확실한 편지를 쓴다. 소설의 다 읽으니 이섭과 중섭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고개를 들면서 「황소」가 무언가 외치고 있었다.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이중섭의 시 부분, 1951년 제주 서귀포의 방 벽에 붙어 있던 것을 조카 이영진 씨가 암송하여 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