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겠지만 서울대생들 사이에서는 서울대 입학이 네 인생 최고의 성취가 되게 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저는 대학을 다니는 내내 고민했습니다. 서울대 입학보다 대단한 성취가 무엇인지 모르겠어서요. 제가 영어를 모어 화자처럼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된다 한들, 엄청나게 유명하고 큰 기업에 들어간다 한들 어쨌든 서울대에 입학하기 위해 들인 노력만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일 텐데 비교가 가능한지 모르겠어서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서울대 입학이 더 대단한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읽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삶이 이렇게 불안하고 슬프고 괴로운데도 저는 살아있는 것을 선택했다는 사실을요. 태어난 것은 제 의지가 아니지만, 살아있는 것은 제 의지라는 것을요.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서울대 입학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제 인생의 가장 큰 성취임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면서도 삶을 선택했다는 것. 어쩌면 이걸 압도하는 성취는 제 인생에 다시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깨달음을 얻고 제 진로는 물론 제 삶에 대한 확신을 얻었기 때문에 올해를 이렇게 행복하게 보내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승의 날 선물로 무엇을 드리면 좋을지 생각을 해보았는데 제가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만큼 선생님께 기쁨이 되는 선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말씀 올립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언젠가 다음에 뵐 때 카네이션 꽃다발 들고 가겠습니다. 뒤늦게라도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장미가 피고 하늘이 맑은 계절이 온 만큼 선생님께서 마주하시는 매일의 풍경이 아름답기를 소망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그럼 또 연락 올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