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애매함

붉은 달

무력함과 명징함

by 류성

선명하게 떠오른 달이 붉어질 때마다 목청이 찢어질 만큼 울부짖었다. 그렇게라도 소리를 질러야만 내가 달 아래에서 초라해지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죽음 앞에서 몸집을 부풀리는 짐승처럼, 나에게 무력함을 각인시키며 다시금 울음을 터트린다. 나를 지켜줘야 했을 눈물이 볼을 지나 턱까지 흘러 서늘하게 식는다.


절규는 나의 유일한 일과가 되었다. 모든 걸 잊은 채 절망에만 집중하는 소중한 시간. 세상의 잘못을 나에게 전부 돌려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오만의 시간. 이 시간들이 나를 부쉈다. 하지만 그렇기에 난 더욱 깔끔히 깨졌다. 나를 표현해야 했을 목청이 무너져, 목 바깥으로 붉은 색깔의 물이 흘러내린다.


숨 멎음은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안도감을 가져다준다. 달이 전해주는 끔찍함이 자각을 앗아갈 때면 스스로 숨을 참곤 한다. 내 안에서 말이 되지 않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순간, 비로소 내가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살이 찢어지고, 비명이 멈추지 않아도, 숨 멎음이 나에게 선명한 아픔이 된다. 나를 살아가게 해야 했을 숨이 멈춰 불안정한 호흡이 귀를 가득 채운다.


귓가에 울려 퍼지는 고요한 이명은 내가 부서지는 소리를 피하게 한 은인이다. 듣기 싫은 목소리, 숨을 쉬지 못하는 불쾌한 멎음, 달 아래 흐느낌 모두가 이명에 의해 잠시 멈추는 시간이 존재한다. 나는 이명이 들리는 시간이 와서야 달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달은 더 이상 붉지 않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하지 못했다. 다시 절규가 들리기를 염원했다. 나를 느끼지 못하게 해야 했을 이명이 들리지 않아 아픈 감각이 되살아난다.


나는 결국 달에게 실패한 언어를 내지른다. 달은 붉지 않고, 밤하늘을 다른 색깔로 물들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목을 긁어내며 말을 토해낸다. 이렇게라도 해야만 달은 나에게 진실을 새겨 넣어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죽음 앞에서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나에게 명징함을 각인시키며 다시금 울음을 터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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