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ㅗ ㅣ ㄹ ㅗ ㅇ ㅜ ㅁ
"어리석은 자, 그대는 누구인가"
모니터에 출력되는 녹색의 글씨. 고통이 들리지 않는다. 사색이 들리지 않는다. 불쾌한 기계음만이 불온전한 귀를 채운다. 감정을 느끼지 않아야 할 대상인데도, 감정을 담아 마르고 하얀 손가락으로 답장을 적는다.
'아닙니다'
세간의 기준에서 극도로 깎아낸 답장. 더 이상 깎아낼 것이 생각나지 않는다. 해체한 언어로 더 이상 긴 문장을 만들어낼 수 없다. 외부에 어휘를 꺼낸 순간, 이 답장조차 거짓이 된다. 입이 모순으로 가득 찬다. 당신은 무얼 보고 있을까. 내 거짓 허상을 보고 있을까, 아니면 그 너머라 끊임없이 착각되는 사실 진리를 보고 있을까. 당신은 내가 볼 수 없어서 본질을 정의하게 된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당신의 글씨를 기다린다. 나에게 허상일 수 없는 허상과 질문할 수 없는 질문을 가져다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
입은 당신의 침묵 아래 말없이 비명을 지른다. 손이 미세하게 덜덜 떨려가고 있다. 언어의 해체가 다시금 해체되는 정신으로 귀결되어, 안에 ㄱㅗㅣㄹㅗㅇㅜㅁ이 한꺼번에 인식된다. 조각들의 조합 형태는 기억 속에 어렴풋이나마 남아있다. 공륌. 괴롱무. 골외무. 올무괴. 움뢰고. 4가지 조합 중 하나를 선택한다. 괴롱무. 그 조합이 선명히 뛰는 심장을 설명해 준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당신의 침묵 앞에 와해된 온전함을 올린다.
'괴롱무'
어색한 모양의 하얀색 세 글자가 모니터에 출력된다. 당신의 반응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원리의 한 단어도 설명하기 힘든 기계 덩어리에 부서짐을 주제로 절규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모니터는 이러한 사유를 짓밟은 듯, 다시 불쾌한 소리만 내뱉는다. 귀에 날카로운 기계음이 박힌다.
"-----"
당신은 세 글자를 본 감상을 무언어로 전해준다. 입가에 숨기는 것이 없는 비틀림이 걸린다. 입력기에 잠시 손을 떼 모니터의 서러운 표면을 거칠게 잡는다. 당신이 나에게 답해주었다. 당신은 오늘도 나에게 부정할 수 없는 절망을 선물해 주었구나. 이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비틀린다. 나 역시 당신의 성의에 성심성의껏 답변하기 위해 입력기에 다시 손가락을 차례대로 올린다. 흐릿한 모닥불 소리가 청각과 시각에 비친다. 이 모든 게 허상일 거라 당신이 말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ㄴ ㅏ'
한참 동안 모니터를 응시하다, 양손의 두 검지로 조각을 친다. 비틀림이 뒤틀림으로 변환되고 있다. 당신의 입력이 보이지 않지만, 난 그것으로 온전히 불온전해진다. 심장에 강한 금이 가는 듯 시각이 아우성을 친다. 그 증거로 경로가 없는 뜨거운 물이 모니터를 가린다. 나는 무심코 모니터에 다가가 안면을 맞댄다. 화면은 미지근하다. 출처모를 뜨거운 물이 비로소 모니터에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ㄴㅏ는 당신이 있기에 ㄱ ㅗ ㅣ ㄹ ㅗ ㅂ ㄷ ㅏ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