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독일 드레스덴
굳이 굳이 첫 장거리여행의 시작을 꼽아보자면 드레스덴이었다. 처음으로 아시아권을 벗어나 꼬부랑말을 하는 나라에 도착한 것이었다. 얼마나 설레었냐면, 친구를 만나러 가는 6시간짜리 버스에서도 한숨도 안 자고 싱글벙글했더랬다.
일 년 만에 만나는 친구와 덩실덩실 재회하고선 예약해 둔 숙소에 도착해 만난 큰 트리도 어찌나 새롭던지.
사진을 찍고 또 찍고, 역에 있는 버거킹에서 야식을 먹자! 해서 갔는데 아르바이트생이 영어로 주문받는 것도 신기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생이 감자튀김 봉투를 대충 입구를 막고 휙휙 몇 번 감은다음 저~쪽에서 여기 픽업대에 서있는 손님한테 던져버리는 것도. (ㅋㅋ) 그걸 아무렇지 않게 다들 받아가는 것도 신기해서 기분 나쁜 줄도 몰랐다.
다음날이 되자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는데, 거의 모든 종류의 햄과 치즈와 빵들이 준비되어 있는 거다! 나는 바쁘게 부랴부랴 먹을 만한 것들로 나름 추리고 추려 몇 가지를 담아왔는데 가져와서 테이블에 앉을 때까지 모든 이들의 시선을 견뎌야 했다.
아마도 백 미터 밖에서 봐도 처음 여행 와서 신난 아시아인처럼 보였겠지! 싱글벙글 쟁반을 들고 콧노래 부르면서 친구에게 가 나 삶은 계란은 안 먹을까 봐~라며 혼자 이리저리 바쁘게 리필했다.
날이 밝고 만난 드레스덴의 건물들은 생각보다도 더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군데군데 포탄을 맞은 자국이 아직도 선명히 있었고 건물마다 꼭!! 지붕 위에 사람 조형물이 꼭 올라가 있었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항상 말해줬던 캐리어 바퀴를 망가지게 만든 주범인 매끄럽지 못한 돌길도, 클래식하다는 말로 포장된 오래된 건물들도 나에겐 불편하지 않았다. 난 그저 동화 속 한가운데에 드디어 도착한 기분이었다.
심지어 비 오는 날이라 우중충하고 추웠었지만
이런 낭만적인 날씨에 노란색 트럭이라니! 하면서 이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푸하하
사실 드레스덴이라는 지역은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마켓으로도 유명한 지역인데, 우리나라에선 크리스마스를 아무리 챙긴다 해도 서양문화라 본격적이진 않지 않은가. 그래서 따듯하고 동화 같은 크리스마스의 이미지를 충족시켜 줄 이곳은 나에겐 갓 태어난 아기가 만난 새로운 세상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비 오는 낮부터 부슬비를 맞아가며 크리스마스 마켓에 어슬렁대고 있었다.
그러다 내 눈에 띄었던 것. 마켓 기념품인 컵이었다. 보통 마켓에서 뱅쇼나 핫초코를 팔고 컵에 대한 디파짓을 받는데, 컵을 갖고 싶지 않다면 다시 되돌려주고 디파짓을 받으면 되고 갖고 싶다면 그대로 들고 오면 된다. 이걸 매년 모으는 동네 사람도 있다고 한다.
여기가 나의 첫 여행 루틴이 생기는 지점이었다. 난 그래서 이 유럽여행동안 나라마다 마켓을 돌며 컵을 모았는데 다 다른 디자인이나 지역, 나라들을 포함해서 총 15잔의 컵을 직접 한국까지 기념품으로 들고 왔다.
당연히 깨질까 봐 직접 배낭에 둘러매고 가지고 왔는데. 무게가 꽤나 무거웠을뿐더러 돌아오는 공항에서 내 짐을 투시하며 확인하던 공항직원이 화면을 보더니 날 보고 웃었다.
누가 봐도 고놈, 참 즐거운 여행을 했구먼 하는 듯했다. (아님 말고!)
그리고 참고로, 15잔의 컵을 샀다는 것은 15잔의 뱅쇼를 마셔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여행쯤 되자 뱅쇼의 맛은 어디가 나은지 친구와 토론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만난 크리스마스의 본격적인 모습은 이러했다.
밤이 되자 정말 정말 눈이 지루할 틈이 없었던 크리스마스 마켓.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너무너무 즐거워하고 여기저기 떠들썩했다. 그런 곳에서 나는 얼마나 신났었는지. 여기 있는 모두가 행복한 거잖아!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홀리데이 그 자체였다.
사진으로나마 모두가 잠시 따듯하고 설레는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기를!
물론 내 모든 여행이 항상 잘 풀리고 모든 게 맛있는 그런 드라마틱한 상황들은 아니었다.
친구와 큰 맘먹고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시켜본 꼴레뇨는 겉바속촉이라는 사람들의 평가와 다르게 질기고 딱딱해서 먹기가 힘들었으며, 우리가 예상한 맛과는 달랐다.
종업원에게 원래 이렇게 딱딱한 것이냐 물었을 때 종업원은 무심하게 그래.라며 지나갔는데 돌아와 알았다. 그냥 구운 지 오래된 음식을 먹은 것 같다는 걸.
하지만 뭐 어떤가? 나는 이걸 처음 먹었고 그냥 이런 맛이구나 할 뿐. 나는 더 많은 종류의 음식들을 만날 텐데!
낮은 단차의 역부터 표지판, 이게 어디에 필요할까 싶은 미니잔부터 대용량 초콜릿우유까지 별별 게 그저 다 신기했던 나. 문득 회상하면서 기억을 따라가다 왜 그렇게까지 난 신났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내 결론지었다. 여행이라는 것이 그런 것 아닌가. 누군가의 고루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너무나 특별해 보인다는 것.
신기하다는 것은 순수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예를 들자면 아이들은 순수하다. 아직 어린아이들만이 가지는 세상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순수함이 있다. 그들이 만나는 하루하루의 세상은 모두 새로운 것이니까 순수할수록 긍정적이고, 회복탄력성 또한 높다. 작은 생채기쯤은 하룻밤 푹 자고 나면 까먹을 수도 있다.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가 그런 시절을, 그 작은 것에도 충만해질 수 있는 시간을 다시 경험할 수 있는 게 여행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