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체코 프라하
길을 걷던 우리는 성당앞에 작은 마굿간에 사람이 몰려있는 걸 봤다. 아무개에게 물어보니 당나귀에게 사료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소소한 체험에 빠질리가 없는 나는 서둘러 마굿간에 가까이갔고, 사람들을 비집고 가던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도 밥을 주고 있지 않았다. 그럼 대체 이 사람들은 뭘 보고 있는 거지?
맙소사. 그 가운데에 다다른 나는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당나귀가 옆에 부착된 사료기계를 조작해 스스로 자급자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 태엽을 슬쩍 밀거나, 사람들이 태엽을 돌려주면 사료가 나오는 구멍에 혀를 넣어 후르르 찹찹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신기해하면서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따듯한 크리스마스의 의미있는 체험을 기대했지만 순식간에 동물농장 장르로 바뀌었던 것!
하루종일 거리를 걸어다니다가, 숙소로 돌아와 녹초가 된 채 널부러져있던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의 이브를 잘 보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친구가 그때 말했다.
- 재즈바에 가보는 건 어때?
재즈바? 그게 뭐지? 친구도 여기 지역에 대해 검색할때 지나가듯 본 정보란다. 나는 바(Bar)라면 한국의 드라마속 재벌가가 고민이 있을 때 찾는 그런 곳이라고만 알고 있는 견문이 좁은 촌스러운 사람이었으므로, 친구에게 물어봤다. 우리 가도 돼? 안비싸?
우리는 인터넷을 뒤져 어느 한 블로거가 추천한 재즈바를 예약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엔 이곳의 재즈바들이 각자 캐롤을 연주한다고 했다. 세상에, 너무 로맨틱하잖아? 친구와 나는 패딩을 넣고 코트를 꺼내들었다. 에티튜드를 갖추자!
아이리쉬맥주와 흑맥주 한잔을 시킨 우리는 사람들과 섞여 어색하게 자리를 잡았고, 운좋게 맨앞에 내가, 바로 뒷자리에 친구가 앉을 수 있었다. 인사로 막이 오르고, 네 분의 할아버지가 연주하시는 곡들을 들었다.
친구와 나는 분위기가 좋다며 서로 눈짓을 했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재즈바를 즐겨본 적 없는 우리는 청음회에 온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정말 노래만 들었고, 우리의 집중력은 점차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집중해야한다는 부담감에 우리는 술을 마시긴 커녕 계속 정자세로 음악을 경청했다.
이 분들은, 분명 나이가 지긋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연주를 하셨으며, 그 캐롤들은 내가 아는 징글벨 같은 것이 아니었다. 모르는 노래가 (그것도 잔잔한!) 내 귀에 감미롭게 계속 들린 탓에 나는 스르륵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그만 좀 졸아!
친구는 뒤에서 내 등을 계속 노크하듯 쳤다. 난 정말 연주하시는 분들 앞에서 죄송해서 졸고싶지 않았지만, 여행에서 누적된 피로와 약간의 알코올, 생전 처음 줄기차게 듣는 재즈는 자꾸 날 졸게했다. 나는 미소를 유지한 채 허벅지를 꼬집고 손등을 손톱으로 찍어누르며 잠과 사투를 벌였다. 쉬는 시간이 안내되자 친구는 자리를 바꿔주었고, 나는 뒤로 가서 친구 등에 머리를 박고 그대로 잠에 들었다.
대체 몇부까지 있었는지 아직까지도 모르겠지만 한 타임을 난 통으로 잤고, 그 다음의 쉬는 시간에 깬 나는 술을 마시며 점차 이곳에 익숙해져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단 하나도 아는 멜로디가 없는 캐롤들을 다 듣고서야 집에 왔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여기는 현지인들의 단골 펍이고 우리가 들은 건 민요를 캐롤처럼 연주한 것이었으며, 우리가 아는 캐롤들을 들으려면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어느 펍을 갔어야했다는 것이었다.
친구와 나는 뭐야-하고 너털한 웃음을 냈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각자가 맡은 악기를 오랜 친구처럼 연주하시는 분들의 모습은 내 크리스마스를 충분히 특별하게 만들어주었으니까. 연륜이라는게, 음악에 녹아들 수 있다는 걸 처음 안 순간이었다.
그리고 난 그 뒤로 모르는 노래를 세곡이상 들으면 잠에 빠져버리는 저주를 받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연주회가 끝이 난 후, 강추위가 찾아든 자정의 길거리를 핫팩을 허벅지에 비벼대며 숙소까지 걸어갔으니 허기지지 않을리가 있나.
자정이 넘어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우리는 불닭볶음면을 집어들었다. 맥주만 마셔 속이 부대낀 탓이었을까, 코 시린 추위 끝에 먹는 따듯한 한식이어서 그랬을까. 그 날 허겁지겁 야식으로 먹었던 불닭볶음면과 불닭떡볶이는 아직도 그리워하는 추억의 맛이 되었다.
한국에선 이렇게나 맛있게 먹어본 적이 없었다. 이 순간만큼은 어느 파티요리 저리가라였으니까.
메리 크리스마스, 프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