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체코 프라하
도착한 프라하는 여기저기 시끌시끌했다. 유럽은 원래도 크리스마스시즌에 [크리스마스 마켓]이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즐기는 터라, 12월에 여행을 하다보면 여기저기 화려하게 장식해놓은 트리와 오너먼트들에 혹해 크리스마스에 흠뻑 취할 수 있다. 가보자!하고 무작정 오긴 했는데 너무너무 낯선거다. 체코? 체코하면 난 흑맥주밖에 모르는데!
숙소에 도착하니 키가 말썽이었다. 예약한 에어비앤비 숙소는 오래된 집을 간단한 리모델링 후에 운영하는 집이었고, 열쇠는 아직도 (리모델링을 대체 어딜 한 걸까.) 중세시대에나 볼법한 열쇠였다. 나 이런 열쇠 처음봐....아니 이것은 열쇠라기보단 걸쇠에 가까웠다. 친구와 낑낑거리며 시도하다가, 유물, 그러니까 그 열쇠를 망가뜨릴까봐 걱정스러운 마음에 스탭에게 달려가 손짓 발짓 다해가며 도움을 요청했다.
영어인지 체코어인지 모를 말을 쓰며 스탭이 열심히 설명해주었으나 우린 체코여행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이 열쇠에 조금 익숙해질 수 있었다.
며칠 전 유럽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말했다. "예약된 일정이 있어서 시간맞춰 나가야했는데 문이 도저히 열리지 않는 거야. 그래서 1층이니까 테라스로 뛰어내려서 담을 넘었어."
그렇다. 유럽의 에어비앤비에 묵었다면 누구나 문이나 열쇠에 에피소드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여하튼 우리도 크리스마스 기분내러 나가보자. 어차피 크리스마스엔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대!
친구가 인터넷을 뒤적이며 말했다. 겨울의 동유럽은 매우 춥기에 우리는 일어나 내복을 챙겨입고 두툼한 양말을 발목까지 끌어당겨 신었다. 그리고 골덴 바지, 니트, 패딩, 목도리, 비니, 장갑까지 빠짐없이 입었다. 겨울에 여행하다보면 길거리의 외국인들이 비니를 쓰고 있는 걸 쉽게 목격할 수 있는데 장담하건대, 이건 살려고 그러는 거다. 살려고.
모자를 안쓰고 나오면 이마가 시리다못해 뇌가 뻐근해지는 경험도 할 수 있다. (!)
우리는 여행이 무르익을 수록 추위를 이기기 위한 옷입기 메뉴얼이 상당히 발전했다. 나는 어떤 날엔 아우터까지 5겹을 입은 적도 있으니까.
이것은 아주 얇은 것부터 두꺼운 것까지 꽤나 치밀한 계산이 필요한 일이었다.
아무튼 우리가 숙소에서 나가자마자 바로 앞 길목에 그것이 있었다. 장난감가게 햄리스(Hamleys)!
우리가 어떻게 이곳을 지나칠 수가 있겠나, 친구와 나는 홀린듯이 들어갔다.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어린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프라하에 있는 모든 아이들은 다 온 것 같았다.
아직 마음만은 어린이인 우리들도 아이들 틈에 섞여 자동차를 조종해보고 레고판에 대한민국이란 글자를 조립해놓기도 하며, 우리가 탈 수 없는 장난감 카트를 기웃대며 동심의 세계로 빨려들어갔다.
그러다 발견한 산타할아버지! 우린 저분은 이 가게에서 고용한 알바생이며 일정 시간이 되면 수염을 벗고 퇴근할 분이란 걸 이미 아는 어른이었지만,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다. 왜냐? 여긴 프라하의 햄리스니까.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친구와 긴 줄을 섰다. 우리의 앞과 뒤엔 모두 아이들 손을 잡은 부모님들이었다. 한국이었음 "하하 애기들 좋아하겠네." 라며 지나쳤을텐데 우리는 이곳에서 아이들이 되었다. 다행히(?) 산타 할아버지는 감탄하며 수줍어하는 우리를 웃으며 반겨주었고 차례로 사진을 찍었다. 친구를 찍어주며 김치!를 하다가, 함께 웃는게 좋을 것 같아 쓰리,투, 원 치즈를 외쳤다. 치-즈!
이 신나는 홀리데이에 식당들은 이미 만석이었고, 예약이 풀부킹인 탓에 우린 마트로 향했다. 그런데 세상에, 물가 실화니? 우리는 소고기와 술의 가격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고기와 술의 가격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낮았고, 자연스럽게 저녁메뉴는 고기와 술이었다. 한국인에게 빠질 수 없는 마늘은 돈없는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결정한 최고의 가니쉬였다.
저 스테이크는 비록 충분히 익지 않아 사진을 찍고 잘라서 다시 구워먹었지만 우리의 홀리데이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물론 냄새 빼겠다고 한밤중에 창문열고 니트를 흔들어댄건 비밀이었지만.
다음날,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은 우린 길을 나섰다. 연휴가 시작되어선지 길거리가 한산했다. 다들 집에서 가족들과 있는 걸까? 관광객들이 모이는 광장쪽을 제외하곤 숙소주변은 한산했다.
우리는 이국땅의 건축물양식에 빠져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며 다녔다. 그러다 막다른 공간끝에서 셀카를 찍고 있었는데 반대편 벽쪽에 어떤 남자 둘이서 굉장히 어색하게 서있는 걸 보았다.
정말 신경 안썼는데 (우리는 셀카에 빠져있었다.) 그 둘은 가만히 서서 서로를 몇분간 바라보고있더니 다짜고짜 악수를 시작했다. 뻣뻣하게, 아주 부자연스럽게, 아주 로.봇.처.럼. 악수로 맞잡은 그들의 손은 몇분동안 위아래로 흔들리지도 함께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닌 채 떨어질 줄 몰랐고, 힐끔거리며 그들을 지켜보던 우리는 무언가를 목격하는데.....
뭐야 왜저래? 그 둘은 정말이지 로봇처럼 삐걱대며 부산스러웠는데, 작은 뭉치의 무언가가 한 사람의 소매끝으로 내려와 맞잡고 있는 그 사람의 소매끝으로 옮겨갔다. 받은 사람은 그 뭉치를 소매에서부터 옷속으로 밀어올려 겨드랑이 쪽으로 올려 감싸안았다.
굉장히 의심스러우며, 매끄럽지 않은 거래였다. 저거... 그거(마약)겠지? 친구와 나는 소곤거렸다. 우리는 그 둘이 우리를 의식하기전에 얼른 빠져나왔는데, 소금이 아닌이상 우리가 본 것은 아마도.. 높은 확률로 예상한 바가 맞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마도 초짜였겠지. 대낮의 꽤나 넓은 공터같은 곳이어서 아무일 없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 그들이 소금이나 설탕을 주고 받은 거라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여행하면서 종종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서 조심해야할 필요성은 있었다. 거래할거면 차라리 서로 반가운 척 안으면서 주고 받았어야지! 이 바보들. 친구와 나는 눈에 띄지 않고 물건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자세를 피드백하면서 마저 걸었다. 살면서 그런 걸 본적이 있을리가 없는 난 마치 영화속 한명의 엑스트라가 된 기분으로 그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영화나 소설에선 꽤나 은밀하고 무섭게 그려지던 거래가, 이곳에선 일상처럼 다소 어색하게 이루어지는 걸 보니 여긴 정말 외국이구나?라는 새삼 일상생활의 모습 차이가 확 다가왔다. 물론 우리나라도 이제 안전하진 않지만, 6년전의 나는 길거리에서 이걸 볼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소금이나 설탕을 의뭉스럽지만 아주 소중하게 거래하는 걸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나와 내 친구는 아직도 그게 불법적인 그것이라 믿고 있다.
아무튼 영화에서만 보던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아니 근데, 이런 대사는 보통 로맨스쪽 아니야?
연인들이 걷는다는 카를교를 걷고나서 들린 기념품샵에선 가방에 스쳐 떨어진 마그넷. 가장자리가 깨져서 내가 당연히 사왔는데, 그랬는데 하필 그림이...맙소사다. 해골이 대마초를 피고 있는 그림이었다. 동화같은 그림의 마그넷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요 사진 속의 마그넷도 그렇게 나와 함께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친구는 하필 떨어트려도 고 예쁜 마그넷들 사이에서 이게 떨어지냐며 깔깔 웃었다.
지금 이 마그넷이 아직도 있냐고? 이건 스리슬쩍 남동생의 침대 머리맡에 붙여두었다. 아직까지 별말 없는 거 보니 딱히 별 생각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