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간도 하나의 순간이다

[후회보다는 계획] 눈시울이 붉어질수록 가벼워지는 마음

by 강현주



음악 덕분에 공부를 시작했던 한 사람. 하나의 모티브를 찾고 그것으로 새로운 악보와 음악을 만들기 위해선 큰 노력과 관찰 그리고 꾸준함이 필요하다. 어릴 적, 음악을 알기 전에는 음악 만드는 건 너무도 재미있고 쉬운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시작하고 현실에서 그것을 바라보기 시작하니 생각한 것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그 안에 잠재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곡을 만들기 위해 아무리 떼를 써봐도 정말 나오지 않는 순간이 허다했다. 쉽지 않은 난관에 부딪히면 나도 모르게 방황을 하게 되고 마음이 흐트러지면서 음악이란 굴레를 벗어나려 애쓰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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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영화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나는 두 음악가의 인생을 담은 영화 <아마데우스(Amadeus)><카핑 베토벤(Copying Beethoven)>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물론 음악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책도 읽어 보면서 그들의 전성기와 역사적인 순간들을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예술적으로 해석을 한 영화로는 처음으로 보는 것이었다.



<아마데우스>는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카핑 베토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음악의 거장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모차르트는 정말 어릴 적부터 절대음감과 음악에 대한 정확한 이해력을 통하여 스스로 피아노를 치면서 악보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하고 이후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남긴 음악은 너무도 많고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할 정도의 작곡 능력을 갖추고 있으셨다. 그리고 베토벤은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히 음악에 대한 신의를 버리지 않고서 귀먹을 정도로 음악에 늘 충실했으며 그 인내심과 탁월한 음악적 감각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곡을 남기셨다.



<아마데우스>는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카핑 베토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음악의 거장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모차르트는 정말 어릴 적부터 절대음감과 음악에 대한 정확한 이해력을 통하여 스스로 피아노를 치면서 악보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하고 이후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남긴 음악은 너무도 많고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할 정도의 작곡 능력을 갖추고 있으셨다. 그리고 베토벤은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히 음악에 대한 신의를 버리지 않고서 귀먹을 정도로 음악에 늘 충실했으며 그 인내심과 탁월한 음악적 감각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곡을 남기셨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독일의 음악가. <영웅>, <운명>, <합창> 등 여러 개의 교향곡과 오페라, 소나타 등 많은 위대한 작품을 남겨 ‘악성(음악의 성인)’이라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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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각자만의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이 있을 텐데, 내가 제일 좋아하고 존경하는 음악가는 베토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외에도 더 화려하면서 깊이 있는 음악을 전해주신 음악가들도 많지만, 그의 음악을 듣고 있을 땐 왠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게 되더라. 영화를 본 계기로 변화한 것은 아니지만, 작곡을 시작하면서부터 악보 공부를 통해 느껴진 음악적 깊이는 ‘베토벤’ 음악가에게 얻은 것이나 다름없을 것 같다. 이유는 확실히 그의 음악은 과하게 화려하거나 해석하기 어려울 정도의 곡은 아니라서 우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었고, 악보를 살펴봐도 그의 악보에는 예의와 배려를 기반으로 신중함을 포함하면서, 마지막에는 웅장 함이라는 커다란 폭죽을 터트려주는 듯 ‘기승전결’이란 음악적 흐름을 전해주었으며, 그것을 계기로 나만의 음악 스타일과 철학이 한둘씩 자리 잡아갈 수 있었다.



죽을 때까지 음악에 혼신을 힘을 다하여 노력하셨고 죽기 전 자신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신체적인 고통을 통한 힘겨움 속 노력의 결과로 많은 희열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직 그까지는 못 가본 나이기에 똑같이는 아니더라도, 어려운 고난을 자신만의 희열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은 언제든지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움켜쥐고 있다.


눈시울이 붉어질수록 가벼워지는 마음



고난이 닥쳐오는 순간에는 모르는 길로 도망쳐 버리고 만다. 만약 내일 당장 집을 잃어버리거나 소중한 사람이 사라져 버린다고 상상만 하더라도, 너무나 고된 시간이 이어질 수도 있으니. 대학교 때는 미래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못 한 채 방에서 방황하던 순간들, 사회생활 속에서는 진정한 나 자신을 찾지 못한 듯 외로움에 허덕이던 순간들, 좀 더 나이가 들어선 이젠 할 수 있는 것도 당당하게 보여줄 수 없는 듯한 쇠약해진 순간들처럼, 그렇게 후회로 넘칠 듯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땐, 10년 전의 과거 걱정과 10년 후의 미래 걱정을 매일 회상하고 상상하면서 보냈다. 분명히 로봇이 아닌 이상 생각에도 한계가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잡생각을 많이 했었는지 사실 지금도 궁금하다. 걱정을 많이 한다는 것은 그 정도로 앞이 잘 보이지 않거나 지금의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나 자신감이 그만큼 없기 때문이다. 의욕도 없고 만들고 싶어도 제대로 또는 원하는 대로 왕창 가질 수는 없는 상황이라 기대에 저버린 나날들이 이어지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계속 위축되고 움츠러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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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늘어난 것은 오직 한숨과 눈물뿐. ‘이별’이란 단어 앞에 눈물짓는다고들 했지만, 정말 내 탓만 하면서 계속 단점만 찾으며 눈물짓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거기서 조금만 더 고개를 돌려 나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쳐다봤었다면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을 텐데, 왜 그렇게 내 안이 아닌 나의 겉모습에 관심을 두며 외적인 성장에만 시선이 갔었던 걸까? 분명히 매일 아침 거울 속의 나를 보고 있었다면 내가 힘들고 지쳤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왜 한 번도 나에게 손 한 번 내밀어 보지 못했던 것일까?



잠시 생각해 보면 어리기도 했지만, 사랑을 받을 줄만 알았지, 진정으로 사랑을 잘 전달하는 방법은 찾아보지도, 해보지도 않아서 몰랐다. 책, 옷, 액세서리, 가방, 신발 등으로 겉모습에 치장할 수 있는 선물은 잘하면서 속 깊은 내적으로의 마음 선물을 자신에게 충분히 전달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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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아무리 비싼 액세서리나 가방을 선물로 받는다고 하여도 그때 잠깐의 만족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의 뜻깊은 감동은 다시 재현될 수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하지만 비싸거나 명품이 아니더라도 진심 어린 마음을 담아서 신중하게 작성한 작은 손 편지 하나의 가치는 큰 감동을 선사한다.



일기장, 편지 등으로 음악 시작하기 전 아빠 마음을 설득하기 위한 전략에 사용하거나 친구들과의 내적 소통을 위한 전술로 활용하였던 편지. 그 편지를 전달한 뒤, 되돌아오는 그들의 편지나 답변받았을 때의 희열은 감명을 전해준다. 이 작은 사람에게 그렇게 커다란 호의를 베풀어 주는 그들의 사랑에 지금도 가끔가다가 눈물이 맺힐 때도 있다.



자신의 위안이 필요하거나 안락한 상태를 마련하기 위해 어쩌다 한 번씩 그 봉투를 열어서 다시 편지 속 이야기들을 상기시켜 보면, 내 마음은 베이비 타월에 감긴 듯 부드럽고 아늑해진다. 그리곤 불필요했던 마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나를 이끌어 주려는 가뿐한 마음들이 나에게 다가와선 ‘힘내’라고 속삭여준다.



그 응원의 말 한마디가 귓가에 맴돌 때면 그에 따라서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하고 흘러내리는 눈물은 좀처럼 멈출 기세가 없어 보인다. 차갑게만 느껴지던 눈물도 그제야 너무도 어진 존재였음을 또다시 알아차리고, 그렇게 유유히 그들이 할 몫을 다하듯 나의 안위를 걱정해 준다.



글보다는 말이, 말보다는 행동이 의미 전달력은 강인하다.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그 속내를 알기 어렵듯이, 내 속마음의 사정을 나 자신도 잘 못 읽을 때가 많은데 이렇게 눈물이 흐르는 때면 ‘많이 힘들었구나’라고 즉각적인 해석이 가능해진다. 그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사막인지 호숫가인지, 아니면 꽁꽁 얼어붙을 시베리아에서 차디찬 얼음처럼 굳어 있는지, 찾기 시작한다.



베일에 싸여서 그 형체는 드러나도 보이는 생김새만으로는 내막을 알 수 없듯이, 눈물 한 번 제대로 터뜨려 본 적 없었다면 지금이라도 진탕 흘려보면 한결 가벼워진 마음을 재인식할 수 있다. 바로 명약을 만난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어떤 좋은 약이나 의술로도 그만한 효력을 가진 것도 아마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스스로 느끼고 눈물지으며 재해석해 나가려는 본심을 일으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슬프다고 노여워 말고, 끊임없이 눈물이 흐른다고 걱정하지 말라. 그만큼 애달픈 나에게 필요했기 때문이기에. 눈물 삼키며 애써 참아왔던 시간을 이제야 만나서 목놓아 울어보는 시간이다. 소리치며 울어도 괜찮고 같이 흘러내리는 콧물도 닦으면서 울어도 괜찮다. 그러나 너무 오랜 시간 많이 울어버리면 응급실에 실려 갈 수도 있으니 오늘은 그렇게 적당히 울어보자.



편하게 마음 터놓을 수 있는 해결책을 잘 찾았다. 찾아다니느라 고생했으니 이제 더는 눈물샘이 넘쳐나지만 않도록 유지하면서 간간이 눈물샘 적셔보는 것도 나를 위한 길이다. 내 속에 갇혀 있던 잔잔한 노여움들을 저만큼 멀리 흘려보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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