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커다란 파도를 만난 순간 속 비타민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시끄럽게만 들리던 잔소리*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가깝게 지내다가 갑자기 멀리 떨어지게 되거나, 현실적 이동으로 인해 멀어지게 되는 상황. 미처 알지 못했던 익숙함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지내다가 그 울림이 줄어들거나 끊겨버리면 나 자신도 모르게 그 메아리의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그리움을 만나게 된다.
*잔소리;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음.
그리고 캐나다에서 남편과 지내게 되면서 멀리 떨어져 지내는 가족들이 그리울 때면 그 잔소리를 되새기곤 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잔잔히 음악을 듣는 것처럼 마음은 편안해지고 미소가 동반되면서 그때의 재미난 상황이 다시 재생된다. 분명히 그 상황에서는 듣기 싫어서 귀를 막거나 들리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리기 일쑤였지만, 이젠 그 분위기 속 온화한 공기가 그립기만 하다.
엄마의 잔소리, 아빠의 잔소리, 친한 친구들의 잔소리, 선생님의 잔소리 등… 수많은 잔소리의 종류 중에서도 엄마의 잔소리는 지금도 여전히 가장 강하다. 그 잔소리의 데시벨을 아직 측정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엄마’라는 이름처럼 엄청날 것 같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잔소리 데시벨의 음높이는 갈수록 낮아지기 시작했고 내가 귀가 먹어가는 것인지, 엄마의 목소리에 힘이 없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로 그 음량을 조절하는 것인지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간혹 왜 그렇게 잔소리가 그립고 예전 같지 않은 데시벨인지 다시 확인해 보면, 아마 엄마도 아빠도 많이 늙으셨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도 지금 40대를 걸어가고 있는데, 부모님의 인생 시간도 같이 흘러가고 있으니 말이다.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는 그대로 일 텐데, 우리가 느끼는 그 인생 속 시간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는 듯하다. 잡고 싶어도 붙잡히지 않는 마법에 걸린 구름처럼 그냥 그렇게 시간은 우리를 보지도 않고 막 흘러가 버린다.
그것이 화두였을까, 엄마의 잔소리 데시벨의 높이가 점점 더 낮아지고 아버지의 잔소리 빈도수도 줄어들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 잔소리를 지금까지 들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들을 수 있는 청각에 별 이상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더욱더 감사할 수밖에 없다. 만약 장애라도 있었으면 그 감격스러운 잔소리마저 듣지도 만나지도 못했을 법도 하다. 잔소리를 들었고 그 경험을 통하여 왜 잔소리를 듣게 될 수밖에 없는지 하나씩 헤아릴 수 있기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물론 어릴 적엔 잔소리라는 라디오 같은 볼륨이 켜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스트레스받는 건 당연지사.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엄마로서는 걱정이 되고 안돼 보여서 그렇게 이야기를 전달한 것인데, 그 말씀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스트레스로만 받아들이면서 들으려 애쓰지 않았던 나에게 반성하라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그래도 30살 전까지는 기본적인 잔소리를 바탕으로 자식으로서 떼쓰지 않고 부모님의 의견을 따르며, 내가 갈 길을 위해 하염없이 걸어 보았던 것 같다. 다행히 별 탈 없이 서로의 의견을 수용하면서 잘 흘러온 나날들.
그런데 내 나이 30살이 되면서 혼자 자취생활에 찌들어 버리고 외로움에 허덕이며 나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던 시간을 보낸 뒤, 나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부모님께 전해드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리 혼자 이겨내 보려 해도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지만, 부모님의 걱정이 먼저 떠올랐는지 내색조차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은 메말라가고 자신감과 정신력은 바닥을 치고 있었으며, 의지하고 싶은 부모님에게 괜스레 폐 끼치기 싫어서 아무 말도 전달하지 못했다.
커다란 파도를 만난 순간 속 비타민
그래서였을까? 몸이 안 좋아졌단 이야기를 들으시곤 부모님은 나를 혼자 두지 않으시려 했고, 모든 짐을 정리하고 고향 집으로 되돌아갔다. 이유는 많을 터, 하나씩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아 보였을 것이고 혼자서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새삼 느끼셨는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참 많이도 울었다. 우선 부모님께서 왜 그렇게 아팠던 것 같고 어떻게 지내고 싶은지 내 생각과 일상들을 물어보기 시작하셨다. 그 관심에 두려웠던 것인지 아니면 평소에도 속 말 없던 내 모습에서의 마음 열기의 시초라서 놀랐던 건지 나는 그냥 눈물밖에 답을 드리지 못했다.
지금도 확실치는 않지만 그렇게 눈물을 많이 흘려본 건 처음이다 보니 잠시 정리를 해보자면, 어릴 적 부모님 앞에서 아프거나 안 좋은 일 있으면 꼬박꼬박 이야기하면서 울고 달램을 받고 했었지만, 타향살이를 시작으로 이젠 부모님을 떠나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해낼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싸여서 참고 또 참았다. 그러므로 20대 이후로는 부모님 앞에서 눈물을 잘 보이지 않던 내가 그제야 부모님에게 들려드릴 수 있는 시간이 왔다는 것에 놀랐고 감격했었는지도 모른다.
거의 1년 동안 부모님에게 전해드린 적 없던 내 마음을 하나씩 토로해 내기 시작했고 부모님과 나는 매일 같이 눈물바다에서 헤엄치고 다녔다. 서로의 쓰라린 감정과 마음 아픈 순간을 눈물로 해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도 기적이었는지, 그 뒤 엉클어진 감정을 깨끗이 씻고 비우고 나니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보이기 시작하고, 무엇인가 훨훨 날아갈 것 같은 나비로 변해왔다. 그전까지는 분명히 ‘바깥세상이나 눈도 뜨지 못해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애벌레’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엄마의 자궁 속에서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그렇게 온 힘을 다 쏟아붓듯이, 이제 젊은 청춘이라는 시간을 지나 좀 더 성숙의 단계로 향하면서 예쁜 나비처럼 아름다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발돋움이 조금은 길었던 것은 아닐는지. 늦었더라도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을 지나왔던 것도 나의 인생이고, 나의 선택과 인생의 골목길을 따라서 이리저리 둘러 왔다고 하여도, 지금은 그 시간이 아깝지도 버리고 싶지도 않을 만큼 소중해졌다. 그 길을 돌아오지 않았다면 아직도 눈물이 넘치는 눈물 바닷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는지도 모르니 말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부모님과도 서로의 마음을 들어보고 되새기고 나니 훨씬 더 개운해지셨는지 이젠 딸 걱정을 먼저 하기보다는 딸의 인생을 스스로 하나씩 잘 일궈 나가고 있음에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계신다. 그것이 나의 인생 속 비타민처럼 나를 다시 일으켜 주는 에너지 드링크 같은 것이니 좋다.
그뿐만이 아니다. 외할머니, 친구들, 선생님들의 잔소리도 만만치 않은 울트라 비타민이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내가 날 때부터 주말마다 만나서 함께 할 수 있었고, 늘 외할머니댁으로 가는 길은 나의 천국 같은 곳이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사랑 덕분에 그렇게 더 환하고 밝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아닐지. 가끔가다가 그리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떠올리며 감사할 수밖에 없다. 그때 나 혼자 타향살이했을 땐, 내가 걱정되셔서 나를 돌봐주시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와 주셨고 늘 통화하면서 외할머니 안부를 물을 때면 이젠 내가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넘쳐나게 된다. 그래서 때론 엄마보다 더 친한 외할머니랑 잘 지낼 때면 질투하는 엄마 모습에 괜스레 미소 짓게 되고, 이런 행복한 모습으로 다 같이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의 은사님들과 지금까지도 계속 안부를 여쭙고 있고, 다양한 지식과 지혜 등을 배우면서 이렇게 머리도 커지고 마음도 넓어졌다는 것은 나에 대한 발견을 위하여 혼자서 하지 못하던 공부라는 것을 모든 은사님의 가르침 덕분에 이뤄낼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분들의 친절함과 따스한 배려가 포함된 시간에 참여하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혼자서 하는 공부도 있겠지만, 더 넓은 생각과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삶의 이치와 교양을 전달해 주셨고 때문에 ‘강현주'라는 사람이 지금 이렇게 글로서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다.
또, 친구들의 걱정과 배려, 조언 덕분에 내 인생의 다리를 하나씩 견디며 걸어올 수 있었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난 아마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 잠시 스쳐 갔던 인연이라도 그들과의 소중한 추억은 아직도 내 인생 속 영화에 간직되어 있고, 늘 함께 웃고 눈물 흘리면서 서로의 걱정과 고달픈 속내를 내비칠 수 있었음에 항상 고맙다.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로 속마음을 털어낼 수 있는 좋은 시간인데, 그 이상의 따스함과 미소 전달을 통하여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들과 조화로운 화합으로 끈끈한 우정을 심어서 뿌리 깊게 잘 자라도록 안아줄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가진 각자만의 특징과 성격이 있지만, 그것 또한 모두 다 다르므로 누군가의 것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따금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그 속에서는 서로 닮은 부분도 닮아가는 부분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을 사회성이라 부르고 그들을 통해 나의 사회성이 발달하였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소중한 이들의 잔소리가 그리운 오늘 밤. 그들의 안부를 물어보면서 잠시나마 그들과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고 싶은 날이다. 이젠 잔소리는 나에게 독이 아닌 진정한 처방 약이 되었고, 앞으로도 소중한 잔소리를 주고받으면서 살아가려 한다. 지겹도록 놓치고 싶지 않은 이 ‘잔소리’의 귀중함에 한 번 더 흥분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