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탄. 나는 누구인가?
자신만의 프로그램을 구상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의 지금 상태 확인하기’이다. 나도 나 자신을 되돌아보려는 순간, 막상 시작하려니 괜히 귀찮고 수줍어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왜 이것을 해야 할까? 도움이 되긴 할까? 하고 나면 내가 바뀔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하지만 시작하는 찰나를 지나니 이미 습관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지금은 그 시작을 기점으로 매일 마음 상태를 확인한 뒤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을 잡고 일정을 추진한다.
물론 매일 그 일정을 맞춰 놓은 대로 똑같이 이뤄내기는 벅찰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습관을 만들기 전에는 지금의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오히려 미래의 상황을 미리 상상한 뒤 이뤄낼 수 있을 것이란 과대망상에 빠진 적이 있다. 현재 내가 뛰어들어야 할 일은 내팽개쳐 두고 엉뚱한 상태를 생각하며 겨우 거기에 맞춰서 현재를 질질 끌고 갔던 것이다. 그때 나의 상황을 되돌아보면 어이가 없을 수도 있다. 뭔가 이뤄낼 것은 보이는데 현실과 맞지 않았기에 공허함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 속내의 원인에 대해 좀 더 과감히 살펴본 결과, 나를 살펴보는 것조차 두려웠던 것. 나의 속마음을 살펴보면 일단 부끄럽고 알기 싫은 것도 있을 것이고, 지금은 이뤄지지 않고 막연히 꿈만 꾸던 잡다한 것도 있을 텐데, 살펴본들 걱정거리로만 가득할 것 같았었는지도 모른다. 혼자서 그것을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확고한 답을 찾을 수는 없었고, 이뤄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허나 가만히 있기는 싫었는지 넌지시 생각 보따리를 풀어보기 시작했다. 얼마나 꽁꽁 싸맸는지 매듭을 푸는 데도 시간은 오래 걸렸고 작은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무거워서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해졌다. 20대를 어두운 동굴 속에서 지냈던 흔적이 하나씩 느껴지고 암흑에서 나오지 못하는 용기와 긍정의 기운이 그제야 빛을 보기 시작하였으며, 숨겨두고 감춰 두기만 했던 귀한 마음(mind)이 나와 대면할 수 있었다.
그 순간,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목이 메이고 어디서부터 살펴봐야 할지 몰라서 난무했다. 신기하게도 그 매듭이 하나씩 풀리고 그 속을 살펴보니 별건 없었다. 일상적인 과거의 사건들과 조그맣게 바라는 미래의 소망이나 현재의 나에게 좀 더 필요한 계기 등 이뤄내지 못할 만큼의 값어치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살펴보면서 깨우친 건 ‘나도 사람이구나’라는 것이다. 너무 욕심을 내세우거나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상상력이 아닌,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바람들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살펴보지도 못한 채 그냥 머물러 있었던 것뿐이다.
그래서 오픈 마인드(open-minded)*라는 단어와 연관이 되었고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열 수만 있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발화점이 되어 다양한 아이디어를 경청하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정도로 마음의 문이 오랫동안 꽉 닫혀 있었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고 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오픈 마인드(open-minded); 다양한 아이디어를 경청하고 수용하려는 마음.
문을 연다는 것은 어떤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이치 일 듯하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인데 마주 보고 있는 두 창문이 있다고 가정하에, 양쪽에 문이 닫혀 있으면 바람 소리에 시끄러울 테지만 한쪽 창문이라도 빼꼼히 열어둔다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은 채 그냥 선선한 바람만 집 안으로 들어온다. 거기다가 반대쪽 창문도 같이 열어둔다면 선선한 바람은 들어와서 안에 있던 나쁜 공기나 먼지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준다. 자연의 이치도 이렇게 주고받으며 왔다가 가는 순리를 가지고 있는데 자연 속 사람이라고 그런 모습 없을까?
가끔가다 사회생활이나 사람들에게 치여서 그 이치는 맞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내세울 때도 있었다. 그다음의 좋은 상황은 만나보지 못했을 때의 말이다. 만약 그런 어려움에 치여서 방황하거나 아무런 방편을 마련하지 못하였다고 해도 괜찮다. ‘모든 경험은 피가 되고 살이 된다.’라는 어른들의 말씀처럼 그것 또한 하나의 귀중한 인생 경험이 되었고 그것이 반복되어 더 힘들어지기보다는, 더는 그와 똑같은 경험을 하지 않기 위한 뚜렷한 방안을 마련하는 게 시급한 것이다. 걱정하기에 앞서서 근거를 통해 발생한 연유를 들여다보고 그렇게 문을 열 수밖에 없었던 취지를 명확하게 밝혀내야 한다.
1탄. 나는 누구인가?
우선 복잡한 마음으로 정신이 없는 상태라면, 차분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 잠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앞에 누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지금 나에게 올인해 보는 것이다. 내 심장박동수는 평균치보다 좀 빠른지 느린지, 눈동자는 한곳에 집중하는지, 손은 가만히 있을 수 있는지 등 행동하는 신경세포들의 향연이 빠른 박자인지 느린 박자인지 감응해 보는 것이다. 가만히 있지 못하거나 가만히 있는 게 오히려 더 불안하다면, 지금 마음이 조금은 어수선하여 잡생각이나 걱정으로 가득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별 이상한 것도 못 느낀다면 침착한 정도지만, 되려 잠만 자고 싶고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은 정도의 귀찮은 마음으로 가득하다면 또 다른 방향의 어두운 모습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도 있다.
신체적인 움직임으로 자신의 마음 상황을 인지할 수 있고 그 동작의 빈도수나 방식에 따른 해석도 가지각색이다.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자신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몰입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하지 않고 지나치는 것보다는 의미가 있어서 실행해 보자는 것이다.
내 마음 상태가 ‘좋다, 모르겠다, 안 좋다' 등 ‘이 정도일 것 같다’라는 감이 잡혔다면 그 상태를 글로 적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글’이란, 잘 쓰고 못쓰고를 떠나서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일기장에서 살펴보듯 관찰하게 된다. 작성하면서 내가 나를 확인해 보면 무엇을 느끼고 어떤 것을 감지하는지 인식해 낼 수 있다.
그리고 일기장에 적힌 나의 모습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다시 한번 훑어본다. 자기 자신이 나에 대해서 제일 잘 안다고 안심은 하지만 그건 착각일 뿐. 자신에 대해서 정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선, ‘지금 내 기분이 슬프다면 이런 이유로 조금 쓰라릴 뿐일 거야’라는 작은 해석으로 관심을 종료해버리고 마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그 속을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안 보이던 또 다른 내 모습과 마음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언제 저런 마음이 생겨났고, 무슨 사연 때문에 이런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며, 누구와 연결되면서 오해가 생겼었는지 등 각양각색의 사실이나 사건을 지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전에는 미처 몰랐었던 내 생각이나 마음가짐의 패턴이나 스타일을 알고 해결할 방침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게 된다.
예를 들면, 어떤 친구에 대한 오해로 연락 빈도수가 적어지고 관심도가 낮아지면서 멀어지는 걸 느끼게 되었다면, 그 친구를 만나 오면서 계속 느끼던 꾸준한 감정이 얇아지고 서로의 이해도나 공감도가 낮아지면서 점점 닮은 부분이 줄어들었음을 확인하고는 ‘우리는 멀어지는구나’하고 오해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건 인간관계에 있어서 당연한 이치이지 누군가의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니다. 물론 누군가의 인위적인 잘못이나 계획적인 행동으로 인한 관계의 단절은 그 사람의 탓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인간관계는 오래 이어지는 것도 있고 짧게 끊기는 것도 있다.
그리하여 살펴본 내 마음의 내용을 일기장이든 자기 마음속에 하나씩 쌓아놓기 시작하면 각각의 사건이나 상황에서의 내 마음가짐과 행동거지의 반복되는 패턴과 방향을 결실하여 ‘다음부터는 이러저러한 상황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다가가거나 받아들이면서 행동하면 되겠다’라는 다짐하게 될지도 모른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누가 옳고 나쁜지 혹은 이 행동이 잘했고 못했는지를 떠나, 참된 나 자신을 확인하기 위한 시작이라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누가 나를 대신해서 인생을 살아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내 마음을 100%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이다. 나를 알고 나와 연결된 여러 고리가 얼마 정도 되는지 확인하면서 그것을 그냥 내버려 두기보단 다양한 상황 속에서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로 축소하거나 늘려갈 수 있는 마음의 힘을 키우는 데 의의를 둔다.
갈기갈기 찢긴 채 남겨두느냐, 많이 찢겼더라도 한 번이라도 토닥거리며 챙겨주느냐는 여러분들의 선택이자 몫이다. ‘마음 챙김’이란 좋은 말이 있듯이 사람이기에 자신의 마음에 대해 등한히 여기거나 무시해 버리는 습관이 시작된다면 나중에 그 습관을 다시 수리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고난이 뒤따른다. 그러니 미리 숙지하여 나를 잘 파악해 보는 것도 나를 위한 인생의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