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실천] 인생의 매력은 알 수 없는 순간들의 향연
바야흐로 20세, 2003년도부터 시작된 해외여행. 무엇이 나를 그렇게 끌고 갔었는지, 한국을 떠나 또 다른 나라 속 풍경과 삶의 모습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유도, 계획도 없이 마냥 음악 교수님의 추천으로 나는 항공권을 사는 데 동의하고 사인까지 완료!
여름 방학 때 1달 동안 합숙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헝가리 음악가 ‘코다이(Zoltán Kodály)*’의 음악과 동유럽의 문화 및 역사를 공부하면서 여행도 다녀올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부다페스트로 향했다. 처음 작곡 교습을 클래식으로 공부를 했었던 터라 서양음악에 대한 관심도는 최고조인 상태였고, 짧은 여행 속이더라도 문화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
*코다이(Zoltán Kodály 1882-1967); 헝가리의 작곡가이자 민족음악 학자이며 교육가.
어린 나이라 큰 것이 아닌 새로운 것에 대한 야망이 생겼다고나 할까? 무엇이든 새로운 지식이든 처음 보는 상황이든 마냥 신기하고 흥미로워서 관심을 가지곤 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를 때가 제일 쉽고 재미있을 때라고 하시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으로 부모님의 곁을 떠나서 모르는 분들과 함께 홀로 여행을 떠나는 계기가 되다 보니 뭔지 모를 두려움이 먼저 앞섰지만, 그 뒤엔 희한한 신비로움의 미소가 내 입가에 번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무도 부푼 가슴을 안고 태어나서 처음 떠나 본 해외여행이니 말이다.
작곡, 이론, 합창 등 2주간 음악 수업 활동을 잘 마무리하면서 중간마다 가끔 홀로 부다페스트 시내를 돌아다녔던 적이 있다. 넓은 하늘이 보이도록 만들어진 낮고 오래된 역사적인 건물들, 가는 곳마다 너무 아름다워서 그냥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마구 찍기만 했던 것 같다. 지나가면서 만나는 헝가리 아이들의 웃는 모습,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어른들의 바쁜 나날들, 그리고 한국에서는 느끼기 어려웠던 여유로운 풍경 등 뭔지 모를 또 다른 세상에 들어와서 또 다른 인생을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도 한글과는 다른 헝가리어, 이 언어는 영어랑은 또 다른 억양과 색깔을 가지고 있었고, 왜 ‘세계여행이다!’라고 이야기하는지 좀 더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여행은 나에게 신세계를 알려주었다. 내가 ‘한국인’이지만 또는 ‘세계인’으로 이 지구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좀 더 과감히 접해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혼자서 나름대로 떠올리게 된 인생 구상은 바로 ‘괜찮은 세계인이 되어 보는 것!’. 지구인으로 태어나 세계인이 되었고, 그 속의 작은 한국인이라는 사람이 태어났으면 이 세계에 이로운 것 하나라도 남겨두고 가야겠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또, 왠지 지금 이 ‘헝가리’라는 나라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나라가 있을 지구 일터. 비행기든 배로든 그것을 타고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보자’라는 신비로움이 가득한 행복 리스트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고, 그것이 나의 작은 인생 속 버킷 리스트가 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인생의 매력은 알 수 없는 순간들의 향연
10일간의 음악 수업을 마치고 1주일의 시간은 함께한 분들과 다 같이 버스 한 대를 전세하여 여행을 떠나기로 하였다. 오스트리아 빈의 쉰브룬궁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프랑스 작은 마을까지 주요 도시는 아니지만 작은 도시들을 하나씩 구경하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는 것에 광대한 의미를 둘 수 있었다.
지금 다시 되새겨보면 이젠 즐거운 추억 하나 남겨진 것이니 그냥 미소가 번지고 만다. 한국에 있었으면 못 겪을 텐데 해외에 나가서도 난리부르스를 칠 줄 아는 ‘나’라는 것을 알게 되니, 괜스레 더 신이 났던 것인지도 모른다.
청소년 때부터 평범하다는 말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의외로 정반대의 의미인 ‘특이하다’, ‘개성 있다’라는 의미에 초점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똑같지 않고 자신들 만의 색깔과 느낌을 가지고 태어나서, 다시 그 인생 속에서 경험하고 받아들이며 이색적인 모습과 독특한 향기를 내뿜는다. 누구도 그것을 따라 하기란 어려운 ‘개성’이라는 단어를 가지게 된다. 그 이름표를 가지는 순간, 이때까지는 보지 못했던 자신의 이념과 인생관이 펼쳐지기 시작하고 끝없이 넓고 높은 곳을 향해 날아간다. 그 분위기를 진취적으로 느낄 수 있는 때가 바로 ‘젊음’이라는 수식어를 포함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후, ‘여행자’에서 다시 돌아와 ‘대학생’이라는 옷으로 갈아입고 살아가면서, 매년 방학 때마다 해외로 날아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나를 찾아볼 수 있었다. 학생 때는 이탈리아 베니스, 프랑스 니스, 스페인 바르셀로나, 일본 도쿄, 필리핀 세부, 중국 상하이, 태국 방콕 등으로 다녀온 뒤 졸업을 하고서 가족들과 친한 친구 및 직장 동료들과도 해외여행을 위해 발버둥을 쳤다.
27세, 음악 교사로 교직 생활했을 때의 직장 선생님들과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이탈리아 배낭여행을 다녀왔던 적이 있다. 베네치아를 시작으로 베로나 - 친퀘테레 - 피사 - 피렌체 - 시에나 - 아시시 - 바티칸 시국 - 로마까지 버스와 기차를 이용하여 지역별, 도시별로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각 도시의 색깔이나 건물 스타일이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친퀘테레는 집마다 무지갯빛 벽 칠을 해놓았고 해안가 옆이다 보니 잡지에서 보던 그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를 직접 눈 속에 저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피렌체 대성당의 그 고풍스러운 섬세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으며, 로마는 이탈리아의 자랑인 콜로세움과 성 베드로 대성전의 깊은 역사적 의미를 몸소 보고 느낄 수 있었다는 것에 큰 기쁨이 되었다.
제일 잊히지 않는 작은 도시인 이탈리아 아시시. 그 속에서 만난 성 프란체스코 성당과 산 루피노 대성당이라는 세계 역사적 유산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이 작은 도시의 골목길의 풍경이 너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도시다 보니 하룻밤 머물고 다시 떠나야 했던 곳인데, 배낭을 메고 게스트하우스로 향하던 짧은 순간의 골목길은 아주 좁고 구불구불한 길의 특징과 건물 벽돌 색상이나 차분한 분위기에 매혹될 수밖에 없었다. 뭔지 모르게 성지순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처럼, 누군가가 편안하게 나를 안아주는 듯 내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으면서 ‘이탈리아 여행 잘하고 있다’라고 속삭이며 환희에 미소 지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또, 그 뒤로는 베트남 호찌민,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미국 뉴욕 버펄로 LA 캘리포니아 라스베이거스, 하와이 호놀룰루, 캐나다 로키산맥 캘거리 빅토리아 등 다양한 나라를 만나기 위해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마다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나의 작은 바람과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음악을 시작으로 세상으로 나아간 나는 음악 교사, 음악인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라는 사람의 또 다른 면모를 찾을 수 있었고, 그 시간을 통해 지금 ‘나’라는 사람이 나중에 먼 미래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계속해서 캐묻는다. 지금의 모습에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고 그렇지만 그것을 포기할 순 없음을 잘 받아들이며, 언젠가 나 스스로가 이룰 수 있는 것을 찾아서 꼭 하고야 말 것이라는 다짐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왜냐하면, 클래식과 국악을 시작으로 작곡을 시작했지만, 현실에서 이 음악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데 한국에서만 주저앉아 있느니, 차라리 좀 고생하더라도 한 사람의 예술인으로서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은 생각과 좁은 마음을 가지기 싫었던 나는 이 현실이 미울 때도 있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삶의 이치이기에 내가 받아들이고 수긍하지 않는 이상 더 큰 아픔만이 남겨진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견한 건, ‘한 번 사는 인생 아직 끝나지도 않았고 제대로 시작한 것도 아니기에, 나중에 제대로 시작할 수 있는 시기를 만나게 되면 꼭 그렇게 만들고 이끌어 가보자!’라는 약속과 함께 인생 사전 속에 저장해 놓고 계속 확인하면서 웃을 수 있는 ‘꿈’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겐 이 ‘여행’이라는 서사시 같은 세계지도를 너무도 소중하고 감사히 여긴다. 나에게 ‘세계’라는 넓은 공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도와주신 부모님께 제일 먼저 감사드리고, 그것을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고이 간직하고 있는 나에게도 고맙다. 그 속에서 ‘나’라는 작은 세계인이 이곳저곳 방황하면서 두리번거리며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은 내 인생의 ‘경험’이라는 여권 도장 같은 인생 사전 속에 담아둘 수 있는 소중한 추억 꾸러미를 잘 챙겨서 넣어두었기에 지금도 그리워할 수 있다.
‘가까이 가려면 혼자서 가고, 더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라고 했던가. 이 세상의 넓이나 우리 인생의 길이는 무궁무진하다. 정해진 시간이라는 것에 안타까움을 연발하게 만들지만, 그 시간을 얼마나 알차고 뜻깊게 선택하고 만드느냐는 우리의 몫이지 인생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손잡고 같이 갈 수 있는 나 자신이 있다면 언제 어디로든 걸어갈 수 있어야 하고, 항상 그 손은 놓지 않고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모두 의미 있는 순간들이니 잘 간직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