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허무한 줄 알았다

잠 못 이루던 시간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by 강현주



힘든 일들 견디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지쳐버린다.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번아웃 증후군’으로 빠질 염려가 있다. 그것조차 내가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시간이다 보니, 나와의 시간이 허무해지고 마치 ‘무언증*’이란 병에 걸린 사람처럼 자책하기 시작한다.


*무언증 無言症(함구증); 입을 딱 다물고 말을 전혀 하지 않는 상태.


tempImageyCqO5R.heic


내 인생에서도 최악의 순간들이 존재했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을 만나게 되거나 희한한 일을 겪으면서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지?’라며 혼자 고개를 갸우뚱거리기까지 한다. 나에게만 이런 일들이 막 밀려오고 쏟아지는 듯 내 손으로 막아보려 하니 어림도 없었다. 자꾸 가슴속엔 상처라는 것들로 인해 겹겹이 계속 피멍이 들기 시작하고 그 상처의 범위는 넓어져서 주체할 수조차 없는 커다란 웅덩이에 빠지듯 가라앉아 버리고 만다. ‘왜 힘든 일은 나에게만 일어날까?’, ‘내가 무슨 잘못을 그렇게 많이 지었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러서는 그냥 나는 스스로 아무 말 못 하고 가만히 넋 놓게 된다. 나와의 시간도 누구와 함께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정신과 혼은 완전히 나가버렸고,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에 목이 메기 시작한다. 목이 메면서 쌓였던 서러움과 놀랐던 내 마음은 눈물을 토해내고 그냥 이불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베개를 부여잡고 엉엉 소리 내며 울다가 나도 모르게 곤히 잠에 빠져든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새로운 오늘을 시작하고 반복된 일상은 끝없이 이어지는데…



시간이 흐른 뒤, ‘그 반복된 시간을 왜 그렇게 힘들게 버텨왔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음 안정이 좀 되었기 때문에 한 번 더 되뇌어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당시엔 그런 생각조차 할 수도 없었고 방법이라도 발견하거나 깨달았다면 다행이련만, 아무런 해결책을 찾지 못한 20대 때의 내 모습은 무참할 정도로 고통 속이었다.



부모님이나 가족들에게는 괜히 걱정 끼치는 딸내미가 되기 싫어서, 혼자서 악을 쓰고 그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 보려 노력했다. 그런데 고마운 것은 내 옆엔 늘 소중한 친구들이 있어 주었다는 것. 그들과 만나서 각자의 이야기 주고받으며 서로 다른 환경 속이지만 먼 타향살이를 통한 그리움과 정에 대한 미련은 끊임없이 고팠다. 공감대가 형성되고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언젠간 잘 될 거야’란 아주 작은 희망으로 버텨왔다. 그 희망, 그리고 쏟아낼 수 있었던 그때의 소중한 이들이 있다는 것에 지금도 늘 고맙다.



‘젊음’이라는 시간을 지나는 중이라서 더 그랬던 것일까? ‘청년’이라는 이름표를 목에 걸고서 험한 사회생활을 어떻게든 이겨내고 그 어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악을 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도 혼자서 해결해 보겠다는 자신감과 대담한 포부가 내재하여 있던 젊음의 피가 흐르던 시간이라서 그랬던 것일까?



지금도 그때의 나에게 다시 한번 더 물어보고 싶다.
어떻게 그렇게 잘 버텨냈느냐고.



뒤돌아보면 다시는 되돌아가지 못하는 과거의 시간이다. 20대라는 시간 동안은 나 자신과 둘이서 손잡고 어떻게 해서든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직접 발로 뛰어 보고, 걸어 보고, 넘어져 보면서 피가 나고 멍이 들어봐야 그제야 ‘아, 세상이란 이런 곳이구나’하고 조금씩 세상과 만날 수 있었다. 만약 그 길을 걸어가지 않고 포기만 했다면, 지금의 나를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나 자신과 내 가족, 내 친구 등 소중한 사람들 덕분이다. 내가 살고 있고 함께하는 이들이 같이 숨 쉬고 있다는 걸 매일매일 깨닫기 위해 노력했으며, 내 삶이 나 하나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 소중한 이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견뎌낼 수 있었다. 물론 어려움이 넘쳐나던 시간 속에선 지워버리고 싶은 추억이나 경험도 있겠지만, 그 어두운 추억만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두운 추억 뒤에는 늘 밝고 미소 짓게 만들어 주는 따스한 추억이 뒤따라와 주고 있었다.


tempImageBNoBLi.heic


잠 못 이루던 시간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인생의 앞일은 모른다고 했던가. 지나간 일들을 되새겨 보면, 어려움을 이겨낸 뒤엔 반드시 희망찬 일이 나로 하여금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잠시 어두움에 쌓여서 일어나지 못할 땐 그냥 숨고 싶다가도, 막상 그 시커먼 안갯속을 지나고 나면 나도 모르게 무지개 같은 그림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그 무지갯빛은 깊은 어둠 속에서 오래 있었다 보니 너무 눈이 부셨기에 아직도 못 잊겠고, 다시는 지워지지 않고 겪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해맑게 웃음 짓던 시간 속에도 그에 따른 이유와 의미가 있듯이, 잠 못 이루던 시간 속에도 그만한 가치와 숨겨진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어두운 면만 보인다면 지금 그대는 어두움 속에 자신을 가둬 놓은 것일 테고, 밝은 면만 보인다면 지금 그대는 청정함 속에 자신을 풀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잠시 어두움을 겪고 나서 그곳을 가게 된 이유와 그곳에서의 내 마음 상태를 확인하고 하나씩 되새겨 보면서 자신을 다시 밝은 곳으로 인도하는 게 내가 나를 위해 해야 할 의무다. 그곳이 어둡다고 모두 어두운 것은 아닐 것이며, 밝다고 모두 밝은 것은 아닐 테니, 진정으로 지금 나의 상황이나 마음이 어떤지 잘 되뇌는 것도 나에 대한 배려이고 의리다.



자꾸 눈물 나거나 잦은 고통에도 이유가 있을 테니 그에 따른 해결책이나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무턱대고 힘겨운 시간을 모른척하거나 무시해 버리면 그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나 자신을 언젠가 놓쳐버릴지도 모른다. 잡고 있던 손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선 그 힘겹던 시간 속 영화 같은 모습들을 다시 되감기 하여,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방향을 바꾸거나 새로운 행동으로 실천하면 무언가 조금은 더 나아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인생의 슬픔도 하나의 축제다.’라고 했었다. 그 슬픔이 있는 이유는 그 옆에는 늘 행복이 같이 붙어 있기 때문이었다. 행복만 가득하다고 영원히 행복할 순 없고, 슬픔만 채워져 있다고 영원히 슬픔으로 가득 찰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자신과 함께한 추억들을 되새겨 보며 나만의 발자취에 한 번은 푹 빠져서 감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슬픔의 눈물이 아닌 감동의 눈물로 퐁당 빠질 수 있도록 말이다.


tempImageiYAkma.heic


내가 정말 죽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 나 혼자 잘 해내다가도 무언가 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지쳐서 쓰러지고 싶을 땐 그냥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에 의해 내 목숨이라도 눈물처럼 흘려보내고 싶을 정도의 심정이 있었다. 그때, 내 소중한 사람들이 나의 눈물을 닦아 주었고 그들의 따스한 말 한마디와 위로의 손길에 의해 나는 그들의 손을 잡고 다시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설 수 있었다. 만약 그들의 따뜻한 배려와 진하게 농축된 듯한 뜨거운 마음이 나에게 전해지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 고된 시간 속에서 엄청나게 큰 사랑과 위로를 받아 봤었기에, 그만큼 내가 그들에게 전해 줘야 될 사랑은 아직도 무궁무진하게 남아 있다. 또 그들뿐만이 아니라, 내 인생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에게는 하나씩 온기 가득한 하트를 전달하는 게 내 인생 철칙이 되어 버렸다. 누구든 이 세상에서 소중하지 않은 이 없고 그들도 그들의 인생 속에서 열심히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기에, 나와 인연이 되어 잠시 스쳐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잠시나마 자그마한 향기처럼 마음속에 전달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모든 이들에게 어울리는 내가 아닐 수도 있겠고,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전하기란 어려운 것이 사람 마음인 것을. 자연스럽게 각자의 인생 속 작은 공간에 스쳐 간 인연으로 온기를 전하고 싶고 이 세상 많은 이들에게 속도는 느리더라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꽃잎 한 장이 되더라도 넓게 뿌려보고 싶다. 온 세상이 가지각색의 꽃잎으로 가득하도록 말이다.


tempImageUxdSVF.heic


tempImagekM2swV.heic


tempImageCuB8Km.heic


keyword
이전 04화나에겐 인연도 없을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