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서 버려야 할 것은?
‘버리다*'라는 어떤 마음일까? 가지거나 지니고 있을 필요가 없는 물건을 내던지거나 혹은 쏟거나, 못난 성격이나 나쁜 습관을 없애거나, 품었던 생각을 스스로 잊는 등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가졌던 것을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가끔 머리핀이나 귀걸이 하나 없어지면 바로 안절부절 난리부르스를 치고 있을 텐데, 어찌 그 많은 것을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버리다; 가지거나 지니고 있을 필요가 없는 물건을 내던지거나, 품었던 생각을 스스로 잊다.
더 많은 재물을 얻고 더 많은 귀중품을 소지하려고 직장 다니고 경력을 쌓는 것일까? 더 좋은 집 사고 더 고가의 차를 마련하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일까? 그건 아닌 듯하다. 살기 위해선 그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가지거나 마련할 수조차 없다는 건 안다. 그래도 마음이 안정된 상태로 살아가기 위해, 그 살아있는 공간을 조금은 품위 있고 여유롭게 만들어 가기 위한, 어제보다 좀 더 노력하는 것이지, 오로지 더 많은 것들을 가지기 위해 버티는 것은 아닐 듯싶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우리. 올 때는 그렇게 와놓고 갈 때는 무엇을 그리 많이 가지고 가려하는가? 누구에게 전달할 것이며, 쌓아두면 무엇이 나올지 궁금하다. 물론 통장에 쌓인 이자나 뿌듯함 등의 겹겹이 옆으로 달라붙는 것들도 있겠지만, 그것만 한 가치로 만족할 것인가 묻고 싶다.
직장을 다니면서 일하고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는 등 생계유지를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배우고 있지만, 그것이 제일 기본적인 밑바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 더 뿌리로 갖춰져야 하는 마음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하여도 거기에 답답한 마음을 느끼지 않고 바로 무엇인가 도전하거나 변화를 시도해 보려는 마음가짐 일 듯하다.
돈에 치우쳐 전전긍긍하는 시간을 가끔은 나에 관한 공부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의미한 시간을 나만의 특기나 실력을 만들어 가는 시간으로 만들 줄 아는 힘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명품을 사거나 더 많은 것을 감추기 위해 돈에 허덕인다면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나에게서 버려야 할 것은?
지구도 겉에는 나무, 동물 그리고 우리가 살고, 속에는 여러 가지 지각이나 암석, 마그마 등이 움직이고 있으며, 나라는 사람도 겉으로는 웃고 있을지라도 속은 어떤 마음과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매 순간 달라진다. 아무리 겉치장하거나 화려한 옷이나 가방으로 나를 감추려 해 봐도, 속마음의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잃어버렸거나 놓치고 있었다면, 정말 다시 한번 더 나를 살펴봐야 할 때이다.
그 순결한 마음은 어린아이만, 또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자신을 잘 돌본 사람들의 마음에 그대로 장착된 보호 장비이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몸소 깨닫고 느끼면서 갈고닦은 비법 등을 통해 자신을 잘 가꿀 줄 알고 몸소 이겨내면서 자신의 속마음을 자주 들여다볼 줄 아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하지만 편하게 마음먹은 대로 잘 안될 때가 많은 이유나, 나 자신에게 직접 다가가기 꺼려지는 이유도 자주 해보지 않았고 아프거나 상처받은 내 모습을 직접 관찰할 때 다시 그 감정이 전달될까 봐 두렵고 무섭기 때문이다. 또 그 흠집을 발견하게 되면 기세가 약해지거나 숨고 싶은 마음에, 더는 보기 싫을 때가 많다.
그래도 그 마음을 소중히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오로지 ‘나’이다. 누구도 대신해서 내 마음을 토닥여 줄 수는 없는 것. 손수 내가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그 곪아가는 마음을 방치하기만 한다면 언젠가 더 시간이 흐른 뒤에는 보지 못할 지경의 처참한 광경을 만날 수도 있다. 손으로 건드리지도 못할 정도로 아플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겉에 에워싸둔 방패 같은 것들은 이제 치워버리자. 걱정이나 근심 등 부정적인 화살이 날아오더라도 막으려고만 하지 말고 그냥 나에게 어떤 경험이 되는지 겪어보자. 좋지 않은 경험이라고 해도 괜찮다. 다음번에 또다시 날아와도 지금보다는 더 잘 견디거나 피해 갈 수 있는 여력이 생겨났기 때문에. 겉으로 싸인 것들은 유리 같아서 한 번 깨지면 그 순간 더 큰 충격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 속은 보지도 않고 겉만 보다가 그 안전망이 다치고 사라졌음에 놀라며 목메어서 눈물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허나 속을 먼저 살펴보면서 어떤 상태인지 인지했다면, 그것을 지켜내거나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한 작전을 변경하거나 방책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알밤을 살펴봐도 겉에는 무수한 바늘로 속에 있는 알맹이를 지키기 위한다고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봐도 속이 단단하지 않거나 꽉 채워져 있지 않으면 맛도 없듯이 속이 단단해야 맛도 나고 때깔도 고우니, 계속 ‘겉을 무장한다 해서 속도 똑같이 견고해지지는 않는다’라는 걸 명심하자.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면서 마음의 양식을 쌓는 이유도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과 글로 작성할 때의 느낌이나 의미는 정말 다르기 때문이다. 겉으로 아무리 행복해 보인다고 하여도, 미궁 속에 빠진 마음은 한탄하기에 바쁠 수도 있다. 순환이 되거나 전환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그 원인을 찾고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한다. 그 과정을 겪고 나면 이뤄지는 건, 내 마음과 내 모습이 하나가 되어 자신이 원하던 진짜 순수한 내 모습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억지로 만들면 더 전쟁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고 겉과 속의 모습이 너무 큰 격차가 날 정도로 방치하고 있다면 언젠가 오랜 시간 동안 넓디넓은 눈물바다를 만나서 허우적댈 수 있으므로 미리 방지해야 한다.
순식간에 모든 일이 완벽해질 수도 없는 법.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의 옷을 찾고 분위기 살리기 위해 이런저런 스타일을 만져보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나를 한 번 들여다보자. 무엇이 보이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보이며 변화된 내 모습을 어떻게 내가 원하는 분위기와 걸맞은 ‘나’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좀 더 신중해져 보는 것이다.
가끔 신중해지거나 진중한 마음을 가졌을 땐 큰 사건을 만난 듯 새삼스러움에 벌벌 떨고 있기 마련이다. 침대 이불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무엇인가 꿈틀대는 모습을 감지했다면 아마도 기겁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 속에 쥐 나 고양이가 숨어 들어와서 잠을 자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 정도로 내 마음을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라는 헝겊으로 오랫동안 방치하고 내버려 두었다면, 살짝 다가가 보자. 소중한 내 마음인데 뭐가 무섭겠는가? 보기 싫을 정도로 밉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일단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다가가 보라. 무엇이 꿈틀대고 있는지 눈이나 촉감으로 확인을 해봐야 내 마음 상태와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모두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본바탕에는 언제 어디서든 수시로 나를 되돌아볼 줄 아는 마음가짐이다.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로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 지금의 나로서 우뚝 서서 자신 있게 걸어가는 내가 나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거기서 힘에 겨워 지쳐갈 때쯤 잔잔한 위로나 제삼자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분명히 존재한다. 여기서도 알아야 할 것은 우선 내가 먼저 나를 토닥여 줄 수 있어야 한다. 그 단계를 거친 뒤 다른 사람들의 따뜻한 말이나 관심을 만나면 다시 돌아갈 필요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제일 먼저 ‘나’는 스스로 사랑받길 원하는 또 다른 ‘나’이기 때문이다.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닌 하나의 존재 속에서 ‘생각하는 나’와 ‘마음을 가진 나’로 섞여 있다. 그렇기에 생각나는 대로 바로바로 행동에 옮기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가만히 명상하면서, 또는 침착하게 멍하니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자. 마음의 컨디션에 따라 생각이나 행동이 달라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음의 모양에 따라 험악해질 때도 있고 내성적인 모습으로 변할 때도 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고 있음에 놀라울 따름이다. 그만큼 우리가 가진 마음의 모양은 가지각색이라는 것. 그로 인해 무차별적으로 변화하기에 급급하기보단 잠시 정신없는 내 모습을 내려놓아 보자. 더 편안해지는지 혹은 더 신경이 쓰이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를 위해 헌신을 다하는 나 자신을 체력적인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법.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드문드문 그냥 그렇게 놓아두는 것도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위이다. 그러고 나면 내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었고 견디고 있던 내 모습이 가련했었는지 알 수 있다.
애수에 빠져도 괜찮다. 서러움에 목이 메어도 괜찮다. 잘 이겨 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오늘은 그냥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무 생각 없이 우수에 젖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나'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