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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 증후군이 오지 않는 사람도 행복할 수 있을까?

업글할매 행복한 노후

by 업글할매

한 폭의 그림 앞에서 사람이 쓰러질 수도 있다는 걸 처음 들었을 땐, 솔직히 조금 의아했다.


“에이, 감동이 좀 과한 거지, 설마 기절까지 하겠어? ”


하지만 이게 실제로 존재하는 증상이라니, 그리고 그 이름이 “스탕달 증후군”이라니,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다.


이야기는 19세기 프랑스 작가, 스탕달에게서 시작된다.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하던 스탕달은 산타 크로체 성당에서 르네상스 예술에 압도되어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다리에 힘이 풀리는 이상한 경험을 한다.


그 아름다움에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단다.


이 극적인 경험은 “나폴리와 피렌체”라는 여행기에 자세히 기록되었고, 1980년대 이탈리아 정신과 의사인, 그라지엘라 마케리니가 이를 연구하며 이름을 붙였다.


“스탕달 증후군”


말하자면 이 증후군은, 너무 아름다워서 아픈 병이다.


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또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일반적인 병은 아픔이나 고통에서 비롯되지만, 이 병은 ”아름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피렌체의 미술관이나 성당을 찾은 관광객들 중 일부는 실제로 이 증상을 겪는단다.


chatgpt에서 만든 이미지

두통, 어지럼증, 흐릿한 시야, 때로는 눈물을 흘리거나 기절까지도 하는 이러한 증상은, 단지 피렌체 미술관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요즘은 오히려 아이돌 공연장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다.


BTS 무대가 열리는 순간, 조명과 음악이 폭발하듯 시작되면, 객석 여기저기서 울고 웃고 기절하는 팬들이 나타난다.


어쩌면 그들에게 무대 위 아이돌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보다도 더 압도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예술이라는 건 원래 사람을 움직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울게 하고, 웃게 하고, 때로는 숨을 멎게도 한다.


하지만 스탕달 증후군은 그 감동이 도를 넘는 경우다.


그 감정이 너무 커서, 잠시 자신을 잃는 순간이다.


현실과 감정의 경계가 무너지고, 가슴 깊은 곳에서 격류처럼 무언가가 밀려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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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벌써 팔십 대 중반인 우리 남편.


요즘은 감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듯한 모습을 자주 보여서 은근히 걱정이 된다.


가끔 같이 바닷가를 걸어도, 넘실대는 파도에 새파란 하늘이 펼쳐져도, 나는 “와, 저 바다 좀 봐, 가슴이 탁 트이네~~” 하면, 남편은 “그냥 바다네, 뭘 그리 유난을 떨어?”라며 무심하게 대답한다.


길가에 피어난 꽃을 보고 “어머, 예쁘다~~” 하면, 남편은 “그냥 꽃이잖아. 뭘 그렇게 난리야.”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그러니, 이젠 내가 감탄할 때마다 괜히 옆을 슬쩍 보게 된다.


뭔가 감탄할 타이밍에 검열을 당하는 기분이다.


아니, 세상에 아름다운 걸 보면 감탄하는 게 정상이지, 그걸 왜 혼나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슬쩍 걱정이 든다.


감정을 잃는다는 건, 어쩌면 삶의 아름다움을 하나씩 잃어가는 일은 아닐까…


꽃이 예쁘고, 바다가 고요하고, 하늘이 멋지다고 느끼는 순간들이야말로, 살아 있음의 징표인데 말이다.


여행도 싫어하고, 외식도 싫어하고, 그저 집에만 있으려는 이유도, 어쩌면 이 감정의 마비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chatgpt에서 만든 이미지

하지만, 이러한 우리 집 양반한테도 조용한 스탕달 증후군이 숨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종일 피땀 흘려 가꿔온 작은 정원, 그 속에서 하루하루 자라나는 나무와 꽃들 앞에서는 무언의 감탄이 남편의 얼굴에 번진다.


화려하게 “예쁘다”말하지 않지만, 자신이 정성 들여 심은 나뭇가지에 싱그러운 잎이 돋을 때, 하루가 다르게 피어나는 꽃송이를 바라볼 때, 우리 집 양반은 묵묵히, 그러나 분명히 흐뭇해한다.


눈빛이 달라지고, 발걸음이 느려지며, 어느새 그 앞에서 한참을 머무른다.


세상 모든 감동을 닫아버린 듯했던 남편의 마음에도, 자신이 일구어낸 생명 앞에서는 그 아름다움에 한없이 행복해한다.


이런 모습을 바라볼 때, 나는 비로소 안심이 된다.


“아, 이 사람한테는 이런 것이 바로 스탕달 증후군이구나…”




스탕달 증후군이라는 것이 꼭 거창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의 일상에도, 조용히 숨어있다.


가끔은 오래된 책 속 문장 하나에서, 햇살 가득한 창가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에서, 아니면 누군가의 해맑은 웃음소리 속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나는 지금 과연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일까?


감정이 무뎌진 시대, 나는 여전히 감탄하고 싶다.


삶은 때로 지치고 각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조각의 감동에 가슴이 뛰는, 그런 노인으로 남아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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