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 행복한 노후
밤이 가고 아침이 오는 것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하루가 잘 저물고 저녁이 오는 것
그보다 더 다행스러운 일은 없다.
앞에 앉아 웃으며 밥을 먹어주는
한 사람
이보다 더 소중한 사람은 없다.
( 아침 식탁 : 나태주 )
밤이 물러가고 아침이 찾아오는 일.
생각해보면 참 단순한 자연의 흐름인데도, 나이가 들수록 그 단순함이 하루하루를 지탱해주는 가장 큰 축복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첫 햇살을 보는 순간, “오늘도 살아 있구나”라는 다정한 인사가 세상으로부터 조용히 건네지는 기분이다.
해가 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 마음은 또 한 번의 기회를 선물 받고, 저녁이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무사히 마무리했다는 은혜가 내려 앉는다.
나태주 시인의 ‘아침 식탁’을 읽고 있으면,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눈부시게 귀한지 말없는 가르침처럼 가슴에 새겨진다.
늘 똑같아 보이던 아침 밥상, 늘 그 자리에 있던 사람, 늘 지나치던 햇살마저 모두가 작은 기적이었음을 이제야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크고 대단한 행복을 찾기보다, 이렇게 작은 것들을 다시 사랑하게 된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뜨거운 국 한 숟가락, “맛있어?”라고 건네는 한마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기만 해도 고마운, 한 사람의 존재.
이 모든 것이 반복되는 일상 같지만, 사실은 날마다 새롭게 주어지는 삶의 선물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앞에 앉아 웃으며 밥을 먹어주는 한 사람”이라는 선생님의 표현이 마음속 깊은 곳을 단번에 두드린다.
그 한 문장을 읽는 순간, 마치 오래된 마음의 창이 살며시 열리듯 내 안에서도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살아보니 알겠다.
나이가 들수록 밥은 ‘무엇을 먹느냐’보다 ‘누구와 먹느냐’가 훨씬 더 큰 행복이었다는 사실을.
그 옆자리에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람이 오늘도 나와 마주 앉아준다는 것, 그 단순한 사실 하나가 생각보다 훨씬 큰 위로와 안도감을 준다.
반찬이 조금 부실해도 괜찮고, 국이 싱거워도 상관없다.
오히려 그 맛을 함께 즐기면서 “오늘은 간이 왜 이러지?, 늙었나~~ ”하고 작게 투덜거릴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더 든든하고 더 고맙다.
사실 밥상 위에는 음식보다도 사람의 온기가 먼저 차오른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 가끔씩 서로의 접시에 반찬을 덜어주는 손길, 그 모든 것이 살포시 마음을 데워준다.
일년 365일, 하루 세 번의 식탁을 오가며 살아오다보니, 정작 그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지낼 때가 많았다.
밥 먹는 자리라는 것이 늘 당연한 풍경처럼 느껴졌고, 그 식탁을 지키는 마음의 노동 또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처럼 여겨져 고마움이 무너질 때도 있다.
가끔은 나만 부엌에 갇혀 있는 것 같아 “나도 좀 쉬자!”하고 혼자만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투덜거릴 때도 있었다.
그런데 나태주 선생님의 “아침 식탁”을 읽는 순간 그 투덜거림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이었는지를 조용히 깨닫게 되었다.
요즘은 혼밥, 혼술, 혼자 여행이 유행이라고 하지만, 막상 밥 앞에서 혼자가 되는 일은 어딘가 마음 깊은 곳을 스치며 왠지 모를 쓸쓸함이 스르르 번진다.
특히 나이가 더 들어 팔십, 구십이 되었을 때 옆에서 말 한마디 건넬 사람 없이 고독을 씹어가며 혼자 밥을 먹는 모습을 상상하면, 문득 가슴이 써늘해진다.
그제야 깨닫는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 밥의 힘이 얼마나 큰지…
나태주 시인은 이 지점을 아주 조용하지만 날카롭게 집어낸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대단한 성공이나 화려한 순간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평범한 일상의 따뜻함인 것이다.
그 옆자리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다.
삼식이 아저씨와 살아오며 하루 세 번의 식탁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돌아서서야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까지도 잘해왔지만, 앞으로 남은 여생엔 밥 한 끼라도 더 정성들여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아침 식탁’을 읽고 나서 더 깊이 자리잡았다.
비록 나태주 선생님처럼 마누라에 대한 끔찍한 사랑은 없는 양반이라도, 이 또한 겸허히 받아들이려고 한다.
함께라서 행복한 인생…
함께여서 더 맛있는 밥…
살아온 세월이 길어질수록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나태주 시인은 조용하고 정확하게 알려준다.
선생님처럼 마주앉아 웃어주지는 않지만, 그저 내 앞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같은 반찬을 나누고, 같은 국을 떠먹으며 함께 하는 그 순간들…
그 모든 것이 이미 오래전부처 우리 삶의 가장 따뜻한 기적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책과 삶”이라는 참 고운 유튜브 채널을 만났다.
그중 EP.42, <책과 사람> 나태주 시인 편은 마치 오래된 마음의 먼지를 털어주는 듯한 방송이었다.
아침마다 나태주 선생님의 목소리로 시 한 편을 직접 직접 낭독해주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어떻게 이런 호사를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지 듣는 내내 감사함이 차오른다.
새삼 유튜브라는 매체에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 시대에 나태주 선생님같은 이런 ‘좋은 어른’을 만난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말로만 따뜻한 것이 아니라 살아온 세월이 문장 뒤에 고요히 젖어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품어주는 진짜 어른, 나태주 시인은 그런 분이었다.
그 옆에서 방송을 이끌어가는 김재원 아나운서의 태도 또한 깊이가 있었다.
사람을 향한 존중, 말 한마디 한마디 배어 있는 품위, 오랜 시간 진행자로 살아오며 쌓인 노련함을 넘어서 좋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기품이 느껴졌다.
시인을 향한 그의 경외심과 진심이 화면을 통해 그대로 전해져 와서 내 마음이 더 푸근해졌다.
참 좋은 방송이었다.
오랜만에 영혼이 조용히 가라앉고 다시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태주 선생님의 목소리를 그저 듣고만 있을 뿐이었는데도, 내 마음이 부드러워짐을 느낀다.
요즘처럼 자고 나면 세상이 뒤바뀌는 듯한 정신없는 시대에, 단지 ‘글’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경이롭게 다가왔다.
많은 이들이 나태주 시인의 시와 책을 읽으며 얼마나 큰 위로와 감동을 받았을까?
그리고 나 역시 그 위로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저 한 편의 방송을 보았을 뿐인데, 오늘 하루가 조금 더 정갈해졌고 나 자신도 조금 더 따뜻해진 느낌이다.
이 보다 더 좋은 만남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