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정책은 오늘도 시행 중입니다

완벽한 정책은 없다

by 기록습관쟁이

우리 집에는 나름의 정책이 있다. 이 정책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아빠주의'에 기반하고 있으며, 투표 없이 시행된다.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바로 발효된다.

손 씻고,

일기 쓰고,

숙제하고,

그다음에야 게임.

정책의 핵심 목표는 단 하나다.

"아들아, 게임은 하고 싶지만 하루를 날려먹고 싶진 않잖아?"

(물론 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이 일련의 행위들은 전부 '게임을 하기 위한 빌드업'이다. 피지컬이 아니라 멘탈 게임이다. "이 정도 했으면, 아빠도 인정하겠지?"라는 심리전. 물론 인정한다. 잠깐, 아주 잠깐. 한 판만 하고 꺼. (하지만 한 판은 두 판이 되고, 두 판은 갑자기 '10분만 더'가 된다.)

그러다 유튜브를 본다. 검색도 한다. 그리고 그림도 그린다. 그러다 또 잠깐 게임. 아니, 아까 끝냈잖아...?

"아빠, 이건 다른 게임이야."

게임의 종류는 무한하니까.


그래도 룰은 있다. 총 콘텐츠 소비 시간 1시간 제한. 그리고 반드시 휴식 시간 확보. 왜냐고? 자기 절제가 아직은 어려운 나이기 때문이다. 룰이 없으면 시간은 마치 비 오는 날 창문 틈으로 새어드는 바람처럼 새어나간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다 증발한다.


근데 가만 보면 나도 다르지 않다. 퇴근하면 초코랑 산책하고, 저녁 먹고, 아들 일기 봐주고, 이제 내 시간이다! 싶지만... 밀린 일 마무리하고 글 좀 쓰면 하루가 끝난다. 그제야 몰래 게임을 켜본다. 혹은 스포츠 하이라이트. 아, 오늘 한화가 이겼네? 보다가 댓글 구경하다가 시간이 훅 간다. 그럼 다시 다짐한다.

"내일은 콘텐츠 1시간만!"

... 근데 내가 만든 룰이라 내가 슬쩍 어긴다. 이런 걸 정치에서는 뭐라고 하더라?

아, 이중잣대.


룰 없이 사는 하루는 진짜 위험하다. 계획 없는 하루는 유튜브 알고리즘의 노예가 된다. '자기 주도 학습'이 아니라 'AI 주도 소비'가 된다. 그래서 나도, 아들도, 각자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정책이란 뭘까? 사전을 찾아보니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 방침'이란다. 우리 집에서는 '하루를 멀쩡하게 살아남기 위한 행동 방침'정도로 바꿔 부를 수 있겠다. 즉, '정책'이 아니라 '가책'? 아니면 스스로 만드는 '자책'? (... 죄송하다. 급 유머 욕심이... 정책적으로 반성하겠다.)


진지하게, 정책이란 참 묘하다. 누군가에겐 혜택이지만, 누군가에겐 불합리함이다. 모두가 박수 칠 수 있는 정책은 없다. 우리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들 입장에선 내가 독재자다. 나는 "너를 위한 거야"라고 하지만, 아들은 "아빠만 좋은 거 아냐?"라고 한다. (반박 불가다.)


대한민국도 다르지 않다. 윤석열 정부도, 지금 이재명 정부도 정책을 낸다. 누군가는 박수를 치고, 누군가는 뉴스 댓글에 분노를 담는다. 정책은 원래 그런 거다.

누구에게는 이익,

누구에게는 손해.

누구에게는 빛,

누구에게는 그림자.


그래도 우리는 오늘도 정책을 만든다. 아빠는 아들을 위한 정책을, 아들은 아빠를 피하기 위한 편법을, 그리고 둘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어쨌든 하루를 살아낸다. 완벽한 정책은 없지만, 진심이 담긴 정책은 있다. 정책이란 결국, 누군가를 위한 마음에서 출발하니까.


내일도 우리 집 정책은 계속된다. 게임을 위한 빌드업은 오늘도 열심히 쌓이고, 아빠의 정책은 또 한 번 수정될 예정이며, 정치와 정책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오늘도 하루를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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