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
세스 고딘이 이런 말을 했다.
"린치핀이 되어라.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돼야 성공한다."
처음엔 무슨 소린가 했다. 자동차 부품 이름인가 싶었다.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회사든 사회든, 이 사람이 빠지면 뭔가 어긋나 버리는 '핵심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 말 듣고 좀 혹했다. 그래,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했다.... 근데 방향이 잘못됐다.
대체불가능한 인간이 되기 위해 나는 회사에서 나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하게 만드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내가 쌓은 노하우는 철통같이 숨겼다. 누가 물어보면 "아 그거... 음... 좀 복잡한데" 라며 얼버무렸다.
자료는 내 USB에만 있다. 공유폴더? 웃기고 있네. 신입이 들어오면? 그래 어서 와! 하지만 넌 복사기랑만 친해져라.
"차장님, 이건 어떻게 합니까?"
"그거? 야, 다른 거부터 해. 그건 아직 할 때가 아니야."
그렇게 나는 후배들이 크지 않기를, 내가 돋보이기를 바랐다.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웃기다. 아니, 한편으로는 슬프다. 그땐 몰랐다. 이런 방식으로는 나도 회사도 성장하지 못한다는 걸.
그땐 그게 똑똑한 줄 알았지.
"내가 있어야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
이 얼마나 미련하고 꼰대 같은 생각인지, 지금에야 안다. 더 웃긴 건, 시간이 지나니 나도 똑같이 당하고 있다는 거다. 회사를 이직하고 어느새 내가 '신입' 입장이 되었다. 누군가는 나를 견제하고, 정보는 또다시 꽁꽁 숨겨진다. "그건 아직 네가 몰라도 돼." 어라, 어디서 많이 듣던 대사인데...?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쩌다 이리됐을꼬? 대한민국 조직문화는 과연 뭐가 다를까?
일류기업은 다르다. 사람이 없어도 시스템이 돌아간다. 누가 퇴사해도 일은 계속된다. 매뉴얼이 있고, 매뉴얼대로 하는 사람이 이끈다. 개인의 천재성이 아니라 조직의 집단지성이 빛난다. 근데 우리 회사는? 아니, 우리 사회는?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을 붙잡는다.
사수가 퇴사하면, 일이 끊긴다. 누가 어디에 뭘 뒀는지도 모르고, 갑자기 자료가 증발한다. 신입이 뭐 하나 물어보면, 대답보다 눈치부터 본다.
"그걸 왜 지금 물어봐?!"
... 대한민국 많은 회사가 이런다.
이류기업은 천재가 회사를 지탱하고, 일류기업은 바보도 시스템 안에서 일하게 만든다. 우린 왜 아직도 천재를 고문하고, 바보를 방치하는 걸까. 한두 명이 모든 걸 껴안고 터질 듯이 일하면서, 그게 성실이고 헌신이라고 착각한다. 그 헌신, 사실은 비효율이다. 그 비효율이 조직을 썩게 만든다.
그러니까, 나도 그랬던 거다. 한때는 내가 회사의 중심이라고 착각했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지만 이제는 안다. 정말 중요한 사람은,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자리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진짜 무서운 건,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거다. 대한민국 사회가 전체적으로 정보는 권력이라는 구시대 마인드에 갇혀 있다. 회사는 나눔보다 독점을 장려한다. 그 결과는?
서로서로 밥그릇 싸움만 하다가, 젊은 인재는 지치고 나가버린다. 업게 전체가 낡는다. 시스템은 업데이트되지 않는다. 대체불가능한 척했던 인간들도 결국 도태된다.
린치핀? 이젠 진짜 의미를 알겠다. 정보를 나누고, 함께 크고, 내가 없을 때도 조직이 더 잘 돌아가게 만드는 사람. 진짜 대체불가능한 사람은 없으면 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없어도 잘 굴러가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나도 이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녹슨 볼트 말고, 윤활유 같은 사람.
끼익 거리던 조직을 조용히, 부드럽게, 반짝이게 만드는 사람 말이다. 언젠가, 나 없이도 잘 굴러가는 회사를 보며 흐뭇하게 웃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