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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낫띵nothing Oct 27. 2024

<나도임> 그것은 나의 오만이었다 1

나는 나르시시스트에게서 도망친 임상심리사입니다. 

나의 나르시시트에거서 벗어나니 홀가분했다. 일상이 평온했고 마음도 편안했다. 할 일도 많았다. 이제까지 미뤄놨던 일들을 하나씩 처리했다.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도 다녀왔다. 나르시시스트를 공부하느라 놓고 있었던 다른 공부도 시작했다. 일상은 평온했고 마음도 편안했다. 하루하루 바쁘게 보냈다. 적어도 내 폰에 나르시시스트의 번호가 뜨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날 이후 2주가 지난 시점이었다. 발신자를 확인하자마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두근 거림은 마치 도로를 운전하다가 갑자기 사람이 뛰어들어, 급 브레이크를 밟고 사고를 겨우 모면했을 때 뛰는 심장의 두근거림과 비슷하다. 아니면 어두운 밤길에 귀신의 형체를 보고 놀랐는데, 그것이 비닐봉지가 나뭇가지에 걸려 흔들리는 모습을 착각한 걸 알았을 때 느껴지는 두근 거림과 비슷하다. 순간적인 공포와 안도를 동시에 느낀 기분이었다. 전화는 받지 않았다. 끊어질 때까지 기다린 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서 보세요]

"전화 왔어"

[누구? 나르?]

"응"

[받았어?]

"아니"

[잘했어. 미친 x 왜 자꾸 연락하는 거야!]

"근데 나.. 안심했어."

[안심이라.... 그.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내가 오만했나 봐"










나는 괜찮을 줄 알았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오만이었다. 정신과를 찾아오는 환자다양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우울증, 공황장애와 다르게 성격장애의 환자의 경우 증상이 의사나 상담사를 공격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환자의 증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감정적인 동요는 일어나지 않는다. 나르시시스트의 구원자 역할만 안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증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쾌한 상황은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대다수의 일에서 이성과 논리로 해석해서 감정적 소모를 최소화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그 증상에 대해 분석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큰 타격이 없을 줄 알았다. 나의 전공에 대한 자부심, 직업적 스킬 그리고 나의 기본 성향만 믿고 오만했던 것이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저 전화 한 통으로 편안한 마음이 불편해졌다. 공포와 안도를 동시에 느끼는 양가감정으로 인해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이제 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이 매일 같이 떠올랐다. 이미 이론으로 왜 그런지 다 아는 나르시시스트의 말과 행동에 의문을 던지며 혼자 화를 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지?' '진짜 이해할 수가 없네!' 분하고 억울했다. 욕도 했다가 저주도 했다가 반성도 했다가 후회도 했다. 나는 임상심리가가 아닌 그저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참아왔던 감정을 다 터트렸다. 그렇게 한동안 임상심리사로써의 자아와 보통의 한 사람으로서의 자아를 오락가락하며 나르시시스트를 이해하면서도 이해 못 할 방황의 시간을 가졌다.


익명의 상담을 할 때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어느 내담자 분이 계셨다.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에서 대처도 잘하셨고 행동력도 좋으셔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다. 매일 바쁘게 지내며, 운동도 일도 열심히 하셨다. 주기적으로 상담도 받으면서 잘 버티고 계셨는데 어느 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상태로 상담을 요청하셨다. 이제까지 상담을 받으면서 물어봤던 질문들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일 테지만 나는 설명해 드렸다. 그리고 다시 질 문 하셨다. "근데 나한테 왜 그랬을까요?" 왜 그러냐 물었더니 자신이 괜찮은 줄 알았는데 전혀 괜찮지 않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뭐가 가장 힘드냐고 물어보니 나한테 왜 그랬을까 생각하다 보면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록 화가 나거나 괴롭다고 했다. '나한테 왜 그랬을까요?' 이건 질문이 아니라 원망이다. 가끔 나도 까먹을 때가 많은데, 이해한다고 반드시 괜찮아야 하는 건 아니다. 감정은 반드시 느껴야 한다. 


그 당시에 온전히 못 느꼈다면 지나고 나서라도 반드시 그 감정을 경험해야 한다. 감정을 이성으로 컨트롤하는 건 잠시 미뤄두는 정도만 할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감성이 풍부하고 사람중심적인 사람의 경우도 나르시시스트를 만난다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항상 나르시시스트의 감정을 살펴야 했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할 때 느끼는 감정은 모두 그들의 것이다. 타인의 감정은 무시하고 잘 못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나르시시스트의 특성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게 된다. 가스라이팅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부정하거나 억압해 버리기도 한다. 그저 이 불쾌한 상황을 모두 뭉뚱그려 괴롭다로 결론짓고 넘어가 버린다. 


이성적인 사람도 감성적인 사람도 나르시시스트를 만나는 동안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는 일이 계속 미뤄두게 된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와 헤어진 사람들은 단순히 슬픔 혹은 그리움 같은 주 감정이 한 가지가 아니다. 다양하면서도 서로 양가적이 감정을 동시에 강하게 느낀다. 



그리고 나의 두 번째 오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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