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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낫띵nothing Oct 27. 2024

<나도임> 자기소개.

나는 나르시시스트에게서 도망친 임상심리사입니다. 

나르시시스트에게서 도망친 다음날 친구가 찾아왔다. 그날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털어놨다.

- 괜찮아?

"응"

- 어떻게 도망쳤어?

"걔가 하는 비난을 가만히 다 듣고, '너한테 나는 그런 사람이구나. 그럼 너는 좋은 사람을 만나야지. 우리는 그만하자'라고 했지"

- 알았다고 했어?

"아니 못나게 문을 막더라고"

- 미친 X, 그래서?

"앉아! 앉아서 내 말 끝가지 다 들어!라고 하더라고 그때부터는 눈 빛이 돌았어"

- 무섭다. 그래도 살아서 돌아왔네?

"무섭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는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차분하게 폰을 들고 112를 눌렸지. 왜 신고하려고? 하더라. 그래서 신고한다고 했더니 나 보고 x쓰레기라고 꺼지라고 하면서 보내줬어."

- 쫄았네.

"쫄았지, 잘 보면 겁에 질린 말티즈가 으르렁거리는.. 뭐 그런 느낌이었는데, 아무튼 경찰은 또 무서워하니까. 정확히 말하면 추악함이 드러나는 게 무서운 거지만.." 나는 한숨을 한번 크게 쉬고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니,  앞으로도 들을 수 없을 것 같은 비난은 다 들은 거 같다."

- 그거 자기소개 아니야? 면접 봤네 ㅋㅋㅋ 

"응! 자기소개 잘 들었고요, 저희 회사에 입사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는 면접관을 흉내 내듯 말했다. 

- 그래도 다행이다. 네가 알고 있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 말을 들었으면...

"엄청난 상처를 받았겠지.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최악의 경험을 했겠지"










나르시시스트인걸 눈치채지 못했다면 나는 저 날 어떻게 했을까? 혹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을까? 정서적 착취를 당하고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확실한 건 수치심과 공포스러움에 떨었을 것이다. 그리고 뭘 해서라도 나의 나르시시스트를 달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나르시시스트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인터넷에 각 종의 대처하는 방법들이 나와있다. 그 방법을 실제로 사용하려면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두려움이 사라진다. 두려운 상태에서 그레이락 (회색돌 기법), 노컨텍 (차단하기), 거리 두기, 자기주장 등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


특히 나르시시스트가 퍼붓는 비난은 알고 들어도 기분이 나쁘다.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그들의 비난은 상대방을 세상 가장 하찮고 형편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화나면 심한 말 좀 할 수도 있지'의 수준을 넘어섰다. 애초에 나르시시스트가 화내는 이유부터 납득할 수 없다.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시간도 없이 비난을 들어야 한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도 참아야 한다(회색돌 기법). 감정을 겉으로 내 비춰서는 안 된다. 억울하고 분해도 말싸움을 하면 안 된다. 비난에서 욕설과 폭력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어쩌면 상대방을 가해자로 만들고 피해자 역할을 자처할지도 모른다. 


나르시시스트의 비난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면 냉정한 면접관이 되어보자. 면접관의 입장으로 들어보면 스스로를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그래, 어디 뭐라고 하나 들어보자'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취약한 부분을 투사해서 상대방을 비난하다. 그들에게 타인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즘의 유래인 그리스 신화에서 보면 나르키소스가 연못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반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항상 앞에 있다. 그 거울 건너편에 있는 타인과 세상은 제대로 인지할 수 없다. 오롯이 자기 자신 밖에 볼 수없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비난을 하는 것도 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 비난을 듣는 상황은 괴로울 수 있어도, 그 말 자체에 당신의 가치가 무너지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어느 정도 자기소개가 끝났으면 면접을 종료해야 한다. 보통 면접관은 마지막에 이 두 마디만 한다. "네 잘 들었습니다. 차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이제 거리 두기를 위한 자기주장을 할 타이밍이다. 논리적인 대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대화를 끝내겠다는 의사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 '그렇구나, 일단 생각해 볼게' 혹은 '네 생각은 그렇구나,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라며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물론 여기서 끝나지 않고 물고 늘어질 것이다. 면접이 끝났는데 불 합격을 걱정하는 면접자는 면접관을 붙잡고 생떼 부리는 장면과 같다. 면접관은 어떻게 할까? '기다리시면 차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똑같은 말을 되풀이할 것이다.  그래도 계속 떼를 쓰면 그 자리에서 불합격시킬 수도 있다. 불합격을 받아 난동을 부리면 면접관은 112에 신고를 할 수밖에 없다. 이 순서 대로 나르시시스트를 대응하면 된다. 이 대화 목적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대처만 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것은 나의 오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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