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르시시스트에게서 도망친 임상심리사입니다.
Prolog
나는 임상 심리사이다. 심리학을 전공했다. 사람의 심리를 분석하고 치료하는 사람이다. 심리학에 빠져 전공을 바꿀 정도로 내 직업에 진심이다. 한결같이 이 길을 가고 있다. 직업에 대한 사명감도, 자부심과 자신감도 넘친다. 하지만 그 자신감을 한동안은 오만과 교만이었다며 자책했다. 왜냐 하면 나는 나의 나르시시스트를 구원 할 수 없었고, 애초에 그 사실조차도 몰랐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불안정 애착 유형 정도라고 만 생각했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누구나 될 수 있는 흔한 애착 유형 중에 하나 이기 때문이다. 내가 심리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무섭다’와 ‘신기하다’이다. 속 마음을 들킬 것 같아 무섭다고 하거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자 같다며 신기해한다. 둘 다 틀렸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알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 한다. 병원을 찾은 환자의 경우도 정확한 심리검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상담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어야 한다. 그럼 겨우 그 사람이 들고 온 문제점에 대한 한 두 가지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상담을 할 때는 뇌를 거의 풀 가동한다. 온전히 집중을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런 상태를 일상생활에서 계속 유지한다면 머리가 터져 나가거나,내가 환자가 될지도 모른다.
쉽게 말하면 사적인 생활에서는 별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관계에서는 임상적 진단을 하지 않는다. 분석하지 않는다. 한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심리학적 용어를 사용해 머릿속에 떠올리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그것은 일종의 직업병이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언어 일 뿐, 그 부분을 크게 염두하지 않는다. 내 환자가 아닌 이상 누군가 불안 애착 유형이라고 한들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른 인간관계에서와 똑같이 대한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리고 정확히 7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나르시시스트라는 확실한 용어를 찾았다. 병원이 아닌 사생활에서 만난 사람에게 진단을 내린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반드시 이 관계를 끊어야 한다’
그 후 나는 원래 하던 공부를 멈추고 나르시시트 연구에 몰두했다. 연구를 하다 보니 나르시시스트를 성격 장애 어느 한 영역에 넣기에는 그 경계가 애매모호했다. 나르시시스트라는 진단명도 없기 때문에 나는 결국 성격장애 모든 부분을 다시 공부했다. 그리고 전공 서적, 에세이, 유튜브, 블로그, 심리학 강연까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모든 매체를 동원했다. 거의 매일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 썼다. 그렇게 1년 2개월을 투자해, 겨우 나의 나르시시스트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불이 뜨겁다는 걸 아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는 것만 알지만,
불에 데어 본 사람은 그 뜨거운 감각과 느낌을 안다.
지식과 사례를 통한 간접적 경험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한 가지를 알았다. 나르시시스트와 정서적으로 가까운 관계에서만 느끼는 실제적인 감각이다. 이 감각을 느낀 후 이 전에 만났던 몇몇 나의 내담자가 떠올랐다. 나는 아마 제대로 공감해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익명의 나르시시스트 피해자들을 상담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나르시시스트를 구원하지 못했지만, 당신은 구원하고 싶다. 내 환자가 아니라면 나는 나르시시스트에거서 또 도망 칠 것이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에게 상처받고 있는 당신은 내 환자가 아니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당신의 그 힘든 여정에 나의 경험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